바다가 된 내 친구야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친구가 흩어져 바다가 된 날.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 1994년.
나는 첫 직장에 입사하게 되었고
그 친구는 두 살 어리지만 먼저
회사를 다니고 있던 입사 선배였어요.
나는 영업, 그 친구는 기술 지원으로
현장을 누비고 다닌 2년. 일도 일이지만
난 그 친구를 나이트와 춤의 세계로 인도했고
그 친구는 날 베스트 드라이버로 조련했죠.
지금도 그 친구의 검은색 르망
가죽시트의 감촉이 생생합니다.
참 열심히 청춘을 불태우던 시절이었죠.
불행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요.
그 친구의 외가 쪽은 치명적인
유전병(?)이 있었습니다.
간 쪽의 질환인데 아마 간경화였던 거 같아요.
그 친구 어머니도 간경화를 앓고 있었고
슬픈 예감대로 그 친구에게도
유전이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앞으로의 진행 경과를
알고 있었고 또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짧을 거라는 운명을.
그래도 그 친구는 거무스름한 피부색과는 다르게 활기차고 늘 웃으며 긍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최소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곳에서는.
일은 물론이고 100킬로가 넘는 거구임에도
춤도 잘 추고(청출어람), 노래도 잘하고
술도 마시고(아주 조금),
담배도 피우고(아주 많이)
안색을 제외하면 아픈 기색은 전혀 볼 수 없었어요.
술과 담배는 그 친구의 시간을 연기와 함께 날리고 있었지만 주위의 만류에도 끊지는 못하더군요.
첫 만남부터 2018년 8월까지 그 친구는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지만
우리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잊지 못할 추억들을 무수히 쌓아갔습니다.
이루 말로는 다 얘기할 수 없을 만큼.
후회로 남는 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
2018년 여름이었습니다
부산 해운대 백병원에 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또 다른 친구와 병문안을 갔었지요.
로비로 내려온 친구의 모습에서
나는 오싹한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알았죠. 그게 죽음의 그림자였다는 걸)
많이 수척해진 모습,
거무스럼이 검정으로 찐해져 가는 안색,
간경화에 간암까지 덮쳐왔다고 덤덤히 말하는 그 친구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듯한 엷은 미소.
나와 또 다른 친구는 담배 사러 간다는
그 친구에게 봉투를 내밀며,
"OO아 몸조리 잘하고 우리 이제 간데이~
담배 참는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피고 싶으면 피라~"
"형~ 고마워 조심해서 가~"
그 친구는 쓸쓸한 웃음으로 우릴 배웅했다.
근데.. 근데 말입니다.
그 친구에게 했던 이 말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사무칠 줄은 그땐 상상도 못 했죠.
그 친구에게 건넌 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그 미소를 영정사진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그래도 시간이 조금은 더 허락될 줄
알았습니다.
우리의 병문안 후,
그 친구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긴 지 며칠 안 돼서
굴곡졌지만 의미 있었던 삶을 마감했어요.
장례식장에서 우린 보았습니다.
그 친구 어머니의 모든 건 나쁜 병을 물려준
당신의 잘못이라고 오열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계시던 넋 나간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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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친구는 생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아버지가 잠드셨던,
영도 중리 앞바다에 뿌려져 바다가 되었습니다.
한 동안 힘들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건넌 마지막 인사가
담배피라는 것이었으니까요.
근데 이젠 괜찮습니다.
제가 아름답고 거창한 인사를 건네지 못한 걸
자책하고 후회한다고 그 친구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제 시간이 다해 그 친구를 만나면
그때 용서를 구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이 가사를 밖으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건 이미 그 친구가 저를
용서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정말 뾰족하게 남은 감정은 일기장에도
쓰지 못하는 거 아닐까요
"OO아 형이 가끔 생각하지만 그때마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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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인기곡에
가사를 입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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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젠 울지 않을게
작사 : 감성반점
[Verse 1]
또다시 그날이구나. 네가 바다가 된 날
순백이던 널 내 맘에서 흩날려 보낸 그날
미치게 잡고 싶었던 마음을 쓰다듬듯
넌 바람에 실려서 나를 안아 주고 떠났지
[Chorus 1]
먼저가 잘 지내줘
더 이상은 아픔이 없는 세상에서
못다 한 꿈들을 맘껏 펼쳐봐
그곳에선 우린 잠시 잊고 잘 살아줘
이젠 울지 않을게
환하게 웃던 네 모습만 기억할게
그 웃음을 다시 보게 되는 날
널 꼭 안아줄게. 영원히 함께 할게.
[Verse 2]
모든 게 내 탓이라며 오열조차 못하는
어머니 모습이 사무쳤니
눈도 못 감을 만큼
[Chorus]
이젠 편히 내려놔
더 이상은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못다 한 꿈들을 맘껏 펼쳐봐
그곳에선 우린 잠시 잊고 잘 살아줘
이젠 울지 않을게
환하게 웃던 네 모습만 기억할게
그 웃음을 다시 보게 되는 날
널 꼭 안아줄게. 영원히 함께 할게.
여긴 걱정하지 마
남겨진 우린 어떻게든 살아가
각자의 세상에 머물다
다시 만나는 거야. 보고 싶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