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에 관해서

저거 좋은 건데

by jungsin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이상은,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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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지 알지 못한다. 불행한 사람만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안다. 이제 좀 알겠다. 그동안 내가 행복해서, 사랑하고 있어서 몰랐을 뿐, 삶은 처음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삶은 매일 열리는 연회와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형제에게 그렇게 집요하게 보자고 하다니. 그와 같은 일은 내 인생에서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주차 단속원 심은하에게 몽글몽글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 한석규가 동네 친구랑 회 안주에 한 잔을 걸치고, 이렇게 너랑 여유롭게 한잔을 기울이는 게 얼마만이냐며 싱글벙글 좋아하더니, 횟집에서 나와 2차를 가자고 친구에게 떼를 쓴다. 친구가 한사코 그만 집에 들어가자고 하니까, 친구의 귓가에 나 좀 있으면 죽는다?, 그렇게 속삭인다. 친구는 술이 더 마시고 싶으면 그렇다고 하지 하다 하다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 한다며 욕을 해 붙이고 그래 가자 가, 한다. 한석규는 친구에게 매달려 좋아하고, 둘은 곧 동네 담벼락에 노상방뇨를 한다. 한석규는 하루하루, 시한부 인생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었다.


참 힘든 하루였다.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 없는 일들이 나를 따라다닌다. 가족의 비밀의 숲을 하나님은 왜 만드셨을까.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수목원이다. 바람을 쏘이는 것에 목이 말랐다. 일로 바쁜 B에게 메시지를 걸어놓고 기다렸다. 결국 퇴근하는 직장 근처에서 만나서 걸었다. 만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언제나처럼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우린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B는 정말 나의 기이한 경험들이 웃겨서 그랬겠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정말 조커와 같은 피눈물이 섞인 웃음이 메아리치고 있었던 걸 B는 몰랐을 것이다.


걷다가 지난번에 눈여겨보아 두었던 길거리 떡볶이 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우린 엄청 고심한 끝에 메뉴를 정했고, 그런 우리를 빤히 보고 있던 사장님께, 내가 떡볶이 2인분 주세요를 너무 당당히 외쳤다. 들어가자마자 경쾌하게 외쳤으면 괜찮았는데, 떡볶이 2인분 주세요 앞에 그렇게 진지하게 장고의 고민을 했던 내가 민망했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리듬과 시의성이 있기 마련인데, 나는 애써 그런 걸 의식하지 않으려 하곤 했다. 네가 인생이면 인생이지 왜 내가 널 따라다녀야 해. 난 무엇이든지 쫓기듯이 허겁지겁 따라다니지 않을 거야. 내가 시간의 중심이자 중력이니까 너희들이 나에게 와서 꼭 달라붙어야지. 인생아. 친구들아. 여자야. 그러니까 인생 차트 자체가 역주행이었다고 할까.


2인분에 2500원. 대학교 다닐 때 한남역 앞 허름하고 지저분한 떡볶이집에서 먹을 때처럼, 우리는 별것 아닌 맛에 맛있다를 연발했고, 그렇게 작고 작은 떡볶이의 위로에 감동하면서 먹었다. 나의 감동에는 비밀스럽고 절박한 눈물이 조금 뒤섞여 있었다. 우리의 슬프고 작은 연회에는 닭꼬치와 어묵, 햄 핫바가 추가되었다.


다 해보지 않았어요? B가 말했다. 떡볶이집을 나와 한참 걷다가 어느 이야기의 대목에서. 언제나처럼 작고 소박한 설렘과 연애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정말 진하게, 열일곱 살처럼 한번, 싸이월드 때처럼 한번 매달려 보고, 편지 써보고, 울어보고 싶어. 더 깊은 지경의 사랑이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은 됐는데 누군가 한번 찌인하게 만나보고, 끙끙 앓아보고, 너를 지켜주고 싶지만 초라한 나에게 너는 너무 눈부신 사람이야 눈물을 머금고 그렁그렁 안녕- 헤어져 보는 그런 거 한번, 딱 한 번만 해보고 싶어.


더할 나위 없이. 실은 그때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는데. 두 번. 아니 세 번. 아니 네 번. 아니 중학교 1학년 때를 지나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치면 나도 꽤 되는구나. 아무튼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였는데. 사람의 마음이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마음이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느니 그런 말을 말하고 싶진 않다. 그건 얇고 불안한 감정 층을 가진 연약한 인간에게, 우리 모두 사람인, ‘사람’에게 혹독한 표현이다. 실은 너 나할 것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눈물겹게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인, 사람에게.


b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저번에도 보았던 마르고 키 큰 자매가 또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저번에도 저렇게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은데. 추룩추룩 비 오던 날 메마르고 생기 없어 보이는 키 큰 여자가 정류장에서부터 내려서까지 나를 힐긋힐긋 몇 번 보아서 기억하고 있었다. 다크한 아우라. 외롭고 힘들겠다. 그렇게 바라보는 본인은 더 그러면서. 배부른 걱정이 너무 과했지.


버스에서 내려서 터덜터덜 지하철역에 걸어 내려갔다. 막차 타는 승객은 승객도 아닌가. 에스컬레이터가 내려가는 방향만 꺼져있다. 도봉산행 당역 도착 표시를 보고 달리기 시작했지만 간발의 차로 놓쳐서 이제 태능입구까지 가는 지하철밖에 안 남았다. 애써 외면해 왔던 비밀의 숲과 이런 저런 일들로 불안한 감정은 그 자리에 그대로였다. 다스릴 수 없는 불안함을 안고 애써 읽던 단편소설을 마저 읽어나갔다. 강진아라는 작가의 ‘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라는 짤막한 작품인데, 소설 잡지 안에 들은 24페이지의 짧은 분량마저도 아껴 읽고 싶었다. 나는 진짜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다.


막차에 올라타 한산한 노약자석에 앉는데 맞은편 일반석에서 20대의 젊은 여자가 몸을 들썩이면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울먹이며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보니 우는 것 같다. 핑크 브릿지가 섞인 레드 파마머리, 핑크색 마스크, 겨자색 단화, 비둘기색 발목 양말. 마 소재 비슷한 재질의 엷은 한지 색 바지와 재킷, 비슷한 색의 에코백을 어깨에 메고, 휴대폰에 주렁주렁 달린 액세서리, 귀에는 에어팟 모양의 이어폰을 끼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스마트폰을 붙잡고 무언가를 쓰면서 울고 있다. 그런, 저렇게 옷차림처럼 앞날이 창창한 젊은 여자가 지하철에서 소리 내어 울다니.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가 일어나더니 다짜고짜 내가 있는 노약자석 쪽으로 거의 달려오듯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내 머리채라도 붙잡으려는 건 아니겠지. 옷 쇼핑을 잘했다. 여차하면 큼직한 탑텐 비닐 옷가방으로 막아야겠다. 힐긋힐긋 봐서 죄송해요. 그냥 너무 안 되어 보여서, 혹여 무슨 도움이라도 필요할까 하는 마음으로 좀 지켜본 거예요. 하지만 여자는 내 옆에 있는 출입문 쪽으로 달려와 내가 앉아있는 방향의 손잡이 기둥에 이내 얼굴을 파묻고 본격적으로 운다.


나는 열차의 칸과 칸 사이를 넘나드는 문 쪽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잠깐 오른쪽으로 돌리면 한 발짝 앞에서 모르는 여자가 철 기둥에 기대 엎드려 오열하며 우는 얼굴을 보게 된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래도 귀는 쫑긋 여자의 울음소리를 향해 있었는데,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연애 이야기다. 여자는 오열을 하다가, 다시 통화를 하면서 울다가, 지하철 문이 열렸을 때 내 오른쪽 방향의 일반석 왼쪽 자리 끝에 자리가 나자 가서 앉는다.


앉아서 하는 말이 약간 들리기에 몇 마디 좀 받아 적었다. 미안하게도 20대가 연애 이야기로 울면서 통화하는 거라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닐 것 같다고, 난 느끼고 있었다. ‘상처받기는 싫고, 근데 걔는 좋아. 사귈 때는 좋아했으니까.. 얘가 내 인생에 없는, 그런 거를 상상 못 하겠다니까..’ 꺼이꺼이, 엉엉.


문득 무심결에 혼잣말을 했다. 좋은 건데. 저거 좋은 건데... 좋은 때다... 물론 그녀가 저렇게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슬퍼하는 연애에 한창 참여하고 있단 사실도 부러웠지만, 그보다는, ‘저거 좋은 건데’의 바탕에는 인생에는 저런 차원도 즐거워 보일 만큼 너무 힘들고 불안한 시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는 물론 지금은 죽을 듯이 힘들 것이다. 오늘 밤에도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겠지. 하지만 인생 전체를 봤을 때, 저건 분명 어떤 빛나는 순간에 속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하철은 곧 종착역에 도착했다. 집까지 가려면 한번 더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로 갈아타 맨 뒷자리에 앉아서 잡지 안에 있는 다른 단편 소설을 펼쳐보고 있는데, 앞 좌석 의자의 윗부분 틈에 카드가 꽂혀있다. 누가 신용카드를 장난스럽게 그 틈에 꽂아놓고 있다가 잊어버리고 내렸나 보다. 하.. 왜 이렇게 오늘 하루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종점에 다 와가는 길. 버스가 빨간 신호에 걸렸을 때 좌석 점검 차 내쪽으로 오시는 기사님께 카드를 드리자, 그 시대의 바이브로 무슨 접선 장소에서 물건 건네 받듯이 데면데면 남자답게 받으신다.


SONG JUN OK. 카드에 적힌 이름을 되뇌면서 상상했다. 분명히 나는 4월과 5월에도 불행하고 우울할 것이다. 하지만 6월 즈음에는 무심코 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괜찮아질까. 안 그러고 싶다. 모든 생이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알록달록한 그림 위에 까만 크레파스로 칠한 것처럼 뒤덮여 있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까만 크레파스칠로 가득한 내 스케치북. 하나님이 이쑤시개로 긁어서 뭘 그리시든지 말든지. 그리타주 기법을 사용하시든지. 그리 하시든지 마시든지. 무슨 희망으로 살아 가야할지. 사람은 이 새까만 스케치북을 보면서 떠올릴 수 없다. 나는 사람이고. 사람은 사람이어서, 하나님처럼 그렇게 근사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정말 어떡하겠는가. 심은하처럼 하나님의 초원사진관 통유리창에 벽돌을 던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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