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다짐이 아닌, 작고 아름다운 기대감이 가능하게 한 것
어느 아침형 인간의 습관 설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남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결연한 의지로 무엇을 시작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일을 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쁜 이름'을 짓고, '남들과 다르게 살거야' 또는 '거기 음악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무엇이든지 설레면서 하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이런 것들을 조합한 어떤 습관에 관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의 이름은 '모닝 바흐'이다.
매일 밤 잠들 때마다 찾아오는 그 느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였는데도 '소진되었다'는 허망함. 무언가를 열심히 했는데도 '충만하다' 라는 느낌을 가지긴 쉽지 않았다.
나는 이 허망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 매일매일의 삶에 아웃풋보다 인풋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적어도 매일 밤 잠들 때는 '오늘은 그래도 꽤나 충만했어'라는 뿌듯함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적인 독서 시간을 확보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컸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모닝 바흐'였다.
지난 브런치 글 '이름을 붙이면 삶이 달라진다('25년/07/20)'에서도 소개했지만, 이제 5주 정도 실천한 결과를 공유해보려 한다.
올해 7월부터 나는 새 아침 루틴을 만들었다. 5시에 기상해 약 1시간 동안의 이른 출근준비를 마치고, 6시부터 7시까지 1시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명상을 하는 시간이 그것이다. 그 시간의 이름을 무엇으로 부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모닝 바흐’라고 부르기로 했다. 실제로 6시부터 KBS 클래식 FM의 <새 아침의 클래식>을 틀어놓는데 이 프로그램이 바로크 음악 위주로 선곡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바흐 음악이 거의 매일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모닝 바흐'는 맥락 없이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정말로 '아침'에 '바흐'가 함께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매주 금요일은 '쉬는 시간'으로 설정했다. 무리하지 않겠다는 현실적 선택이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고생했으니 금요일은 달콤한 선물을 주어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만 모닝 바흐 시간을 갖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총 5주 동안 20회 중 단 하루를 제외하고 19일을 수행했으니, 목표 달성률 95%. 그리고 이 19일 중에서 독서를 한 날이 12일(63%), 업무 관련 학습을 한 날이 7일(36%)이다.
1-2주차에는 전날의 수면시간과 컨디션에 따라 기상시간을 5시 또는 5시 30분으로 탄력적으로 정했다. 그래서 모닝 바흐 시간도 30분 또는 1시간으로 달랐다. 하지만 4주차부터는 몸이 적응하면서 1시간으로 고정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5시 기상에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이 리듬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관이 없지 않았다. 4주차 후반부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기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몸이 긴장한 것인지 새벽 4시, 때로는 3시 50분에 눈이 번쩍 뜨여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대에 뭔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보니 5시까지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1시간 남짓 모닝 바흐 시간을 갖고 출근하면, 오후에 체력이 떨어지고 수면 부족으로 인한 예민함까지 나타났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4-5일간 이런 문제가 지속되었고 수면시간이 5시간이 채 안 되니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중단했던 잠들기 전 명상을 다시 시작했는데, 신기한 건 그날부터 괜찮아졌다는 것.
나에게 명상법을 알려주신 뇌과학 교수님은 첫째, 20분 이상의 명상할 것, 둘째, 명상할 때의 음악으로 '그레고리안 성가'를 권하셨지만, 나는 내 방식으로 조금 바꿨다.
시간을 10분으로 줄였다(즉, 최소한 10분은 하자는 것이었다)
음악도 그 주에 듣는 클래식 음악이 너무 격정적이지만 않으면, 클래식 감상과 명상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그레고리안 성가'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연주곡 및 성악곡을 들으면서 명상을 좀더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방식을 바꾸었다.
4일을 이렇게 실천해보니 확실히 다음날 5시 이전에 깨는 증상이 사라졌다. 깨더라도 다시 잘 수 있었고, 5시에 자연스럽게 눈을 뜰 수 있었다.
기존에 내 아침은 때로 활력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의 아침과 비교해보자면 확연히 달랐다. '아침이 되어서 가야 할 회사가 있으므로, 늦지 않게 준비해서 출근버스를 타러 간다'가 나의 아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아침을 내가 장악하는 느낌이 압도적으로 좋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하루의 시작부터 내가 선택한 것으로 채우는 것과, 해야 할 일에 쫓겨 시작하는 것의 차이. 그 차이가 하루 전체의 톤을 결정하는 것 같다.
그 1시간 동안 읽은 책의 어떤 구절이 마음에 스며든 채로, 출근버스를 타기 위해 걷는 10분의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었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한 문장, 한 문단이 발걸음마다 더 깊숙이 들어와 앉는다.
지난 5주 동안 『경험의 멸종』, 『료의 생각 없는 생각』, 『이어령의 말』, 『전쟁과 음악』 등의 책이 이 아침 시간을 거쳐갔거나 거치고 있다.
예전에는 주말에 몰아서 읽곤 했던 이 책들이,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나를 다르게 깨운다. 마치 새벽 햇살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 방 안 구석구석을 부드럽게 밝히듯, 책 속의 문장들이 아침부터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하루 종일 나를 은은하게 비춘다. 주말에 한 번에 몰아서 읽을 때의 급작스러운 깨달음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는 매일 조금씩, 천천히 스며드는 온기 같다고 할까? 그 온기가 아침부터 시작되어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숨쉰다.
모닝 바흐는 단순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하루에 대한 태도의 변화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나는 아침 5시에 일어날 거야'는 아무런 정서도 없고 그저 의무만 느껴진다. 하지만 '매일 아침 내겐 모닝 바흐가 있을 거야'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다. 이름이 가진 힘이 이토록 클 줄 몰랐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우연히 만난 그 성당의 '모닝 바흐'처럼, 나의 모닝 바흐도 이제 고요하고 경건한 시간이 되었다. 은퇴한 피아니스트와 지역 어르신들의 쿠키는 없지만, KBS 클래식 FM의 바로크 음악과 책 한 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고 이제는 회사를 가야 해서 집을 나서야 하는 7시가 되면 내 최애 라디오 프로그램 클래식 FM의 '출발 FM과 함께'가 시작되는데 그 첫곡을 기대하는 것이 내 하루의 가장 행복한 Moment이기도 하다.
5주가 지나니 이제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무엇보다 매일 밤 잠들 때 '오늘은 꽤나 충만했어'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정말 주효했던 것은 '아침 5시에 일어날 거야'라는 결연한 의지로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투지와 각오로는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대신 '내 아침은 바흐를 들으면서,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모닝 바흐 시간으로 시작해볼 거야'라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해보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일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해보니 가능했다. 어쩌면 그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다짐이 아닌, 작고 아름다운 기대감으로 맞이하는 아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