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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Feb 19. 2023

어머님, 육아서를 내려놓으세요.

ADHD 아이를 키우는 우리가 멀리해야 하는 것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나도 열심히 넷플릭스로 재방송을 보면서 정주행을 했었다. 오은영 박사님의 가정의 문제, 아이의 문제, 부모의 양육 문제를 바라보는 촌철살인 같은 진단과 솔루션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행동이나 말을 깊이 관찰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은영 박사님이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것 마냥... 아이의 모든 말과 행동을 판단하고, 나 자신과 남편의 양육 방식을 판단하느라 즐거웠던 일상생활이 미묘하게 달라짐을 느꼈다. 남편이 아이의 과잉행동을 참지 못 하고 버럭신이 강림하실 때 나는 남편을 앉혀놓고 '어떻게 말해야 할까' 육아서에 나온 듯한 말투와 행동들을 가르치면서 '당신은 형편없는 아빠야.'라는 메시지를 마구 내던진 적도 있다. 그때 남편이 한 말이 내 뼈를 때렸다.


"나 오은영 박사님이랑 사는 것 같아."

'헉!'

그렇다. 나는 그에게 아내도 아닌, 우리 아이에겐 엄마도 아닌 누군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ADHD 진단을 받은 세모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물론 ADHD 진단을 받았다 해서 모두가 같은 건 아니다.) 한 가지에 몰입하면 다른 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운 점, 처리 속도가 느려 1시간이고 수도꼭지 물을 틀어놓고 물을 받았다가 버렸다가 하며 놀 수도 있다는 점, 친구들의 거절을 눈치채지 못해 그들에게 계속 난처한 질문을 내던지는 점, 상황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과잉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점 등이다. 예를 들어, 세모에게 아침에 시리얼을 먹고 약을 먹고 양치하고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가라고 지시 사항을 알려주면, 세모는 시키는 대로 시리얼을 먹고 약을 먹고 양치하고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간다. 무슨 문제가 있냐고? 세모의 책가방은 고스란히 현관 앞에 놓여있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 아이를 이해하는 것이 1번이지만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버럭도 했다가 타이르기도 했다가 결국 우리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는 결론에 이르러 자책으로 끝나는 일이 많았다.

  또, 아이가 감각이 예민하여 편식을 하는 편인데 이유식이 중요하다는 어느 박사님과 육아 책을 읽었던 나는 '내가 이유식을 배달시켜 먹어서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가 학교에서 장난을 치고 유치원 시절 친구와의 트러블을 만들어 전화를 받을 때면 부모가 권위 있게 규칙을 가르쳐야 한다는 모 박사님의 말이 떠오르며 이 ADHD와 씨름하는 나의 노력을 먼저 보기보다 어디서부터 잘못 가르쳤던 것인지 나의 행동과 남편의 행동을 되새기면서 또 자책으로 끝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자책감.

이것은 정말 우리가 멀리해야 하는 감정이다.


  나의 자책감의 원인은 어디서 왔을까. 그 수많은 육아서와 오은영 박사님의 유튜브 클립들을 보면서 도움이 되는 것들도 많았지만 우리처럼 신경회로가 특별한 ADHD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오히려 바람직한 육아의 기준점에서 낙제점을 받는 듯한 감정만 들게 할 뿐이다. 대부분의 육아서는 말한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아이가 바람직한 이 기준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라고. 그 '바람직한 아이'라는 기준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이미 다르게 태어났다.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다. 보통 육아서를 읽는 이유는 자신의 자녀들이 어느 기준점에 있는 그런 모습의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ADHD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그 기준점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은 시작점부터 다르고 과정도 달라야 하고 결과도 다를 것이다.


이 아이들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이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에 보통의 육아서를 읽으면서 계속 FAIL을 받는 짓은 이젠 그만하길 바란다. 우리는 이미 다른 길을 가야 하는데 자꾸 비 ADHD아이들과 ADHD아이들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왜 그런 자녀를 키우지 못하는지 자책하지 말 것이며, 평범한 여느 엄마들이 꿈꾸는 육아의 기준점을 이상화하면서 자책하지도 말아야 한다.


난 육아서를 끊었다.

대신 내가 가장 집중하는 것은 ADHD라는 '특징'을 가진 우리 세모의 일상을 관찰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이 아이는 세계에 유일한 존재다. 이 아이에게 맞는 삶의 기준은 따로 있을 것이며, 이 아이가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육아법은 따로 있을 것이다. 아마 단 하나뿐이지 않을까. 세모를 관찰하면서 세모가 잘하는 것들, 그리고 어려운 부분을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는지 그 방법은 내가 직접 찾고 있다. 세모는 하나에 집중하면 밤이 될 때까지 다른 것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계속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난 세모에게 항상 타이머를 쥐어준다.

"세모야, 이건 30분 정도만 하고 독서 시간 가져야 해. 이건 약속이야. 이걸 잘 지키면 해야 할 일을 먼저 끝내는 거니까 세모가 좀 더 좋아하는 걸 더 많이 할 수 있고, 엄마랑 보드게임도 할 수 있어."

세모는 타이머가 아주 효과가 있다. 안 그럼 하루종일 종이 접기만 하거나 만화영화만 볼 수도 있는 아이다.

난 이런 식으로 세모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육아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귀한 방법들을 익히는 중이다.


어머님, 당장 육아서를 내려놓으세요.
육아에 대한 기준점들이 많아지면
이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답니다.
우리가 집중할 것은
바로 특별하게 태어난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공부해 보아요.
당신이 아이와 손 잡고 가는 그 길이 맞는 길입니다.



*사진 출처- png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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