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ADHD야?" 아이에게 비로소 알려주었다

운명적인 고백의 그 순간

by 이사비나

"세모야, 자?"

그날은 유독 마음이 바쁜 저녁이었다.

둘째가 얼른 자 주어야 하는 날이었다.

마침내 둘째가 잠이 들고, 세모의 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불이 꺼져 있었지만,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날이 아니면 또 미루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모야, 여기 앉아봐. 엄마가 해줄 말이 있어."

"뭔데? Am I in trouble?"

진지하게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당황했는지,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냐고 묻는다.


"엄마가 오늘 해줄 말이 있어."



11월의 마지막, 아이에게 ADHD 진단 사실을 알려주었다.

처음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ADHD인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고. ADHD는 슈퍼 파워라고. 그렇게 장점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난 아이에게 대단한 ADHD인들을 먼저 들이밀고 싶지 않았다. 마치 ADHD가 있기 때문에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ADHD의 어려움을 상쇄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끼는 건 싫었다. 그냥 ADHD가 있어도, 넌 또 열심히, 조금은 고되도 또 우리와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꼭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의 대화는 '뇌 과학'에서 출발했다.

우린 모두 다른 뇌의 모양, 크기, 기능을 갖고 태어난다고.

그래서 모두가 잘하는 게 있고 어려운 게 있다고.


세모와 나의 잘하는 점, 어려운 점을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학을 잘하고, 좀 생각 안 하고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세모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미 ADHD 때문에 어렵다는 것을. 다만, 그 이름을 몰랐던 것일 뿐. 아이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이미 알고 자라는 중이었다.


"세모야, 우린 이렇게 다 다르게 태어나. 그런데 에너지가 넘쳐서 계속 움직여야 하고, 집중이 좀 어렵고 자꾸 다른 것에 관심을 가져서 산만해지는 뇌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우린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ADHD'라는 진단명을 붙이기로 했어."


Attention 주의력이

Deficit 결핍되어 있어. 부족하다는 뜻이야.

Hyperactivity 과잉행동, 에너지가 넘쳐서 계속 움직이고 싶어 해.

Disorder 장애, 여기서 장애는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야. "잘 안 된다. 어렵다"는 뜻의 '장애'야.


"내가 ADHD야?"
"응, 너는 7살에 진단을 받았어."


아이는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아이의 반응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아, 어쩐지! 아까 내가 치약 가지러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동생 방에 가 있는 거야. 내가 왜 여기 왔지? 했다니까?!"

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ㅎㅎㅎ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이 이제 ADHD라는 단어 하나로 이해가 되었던 걸까?



이제 약물복용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우리가 눈이 아프면 어디로 가지? 안과에 가.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고. ADHD가 있으면 우린 정신건강의학과에 가."

"정신 건강?"

"뇌 건강을 봐주는 곳이야."

"우리는 거기서 약을 처방받아오는데, 매일 아침 먹어야 해. 이 약은 우리가 시력이 안 좋게 태어난 사람들이 안경을 쓰면 하루가 편안하듯, 학교에서 '조절'을 잘하도록 힘을 주는 약이야."

세모는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이 약을 먹으면 느낌이 어때?"

"난 별 느낌 없는데? 혹시 내가 세상에서 Best ADHD인 거 아냐?"

2차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ㅎㅎㅎ

정말 해맑구나 우리 아들.



"ADHD인 중에는 위대한 위인들도 있다?"

"잠깐만, 내가 맞춰볼게. 그그그그그그 장영실? 아인슈타인?"

온갖 과학자들이 다 나올 기세였다.

아이도 나름 그 호기심 많은 ADHD인의 장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한참을 자신이 ADHD여서 멋진 점들을 이야기했다.

역시 자존감 하나는 높은 세모.


"엄마 친구 사라 있지? 그분도 ADHD가 있어."

"말도 안 돼. 너무 조용한데?"

아, 아이도 ADHD에 대해 잘 모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ADHD인들은 다양해. 조용하지만 머릿속은 여러 생각으로 어지러울 수도 있거든. 엄마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어."

"난 우리 가족이 다 ADHD 같아."

"맞아. 우리 가족에게 있는 거야. 너만 ADHD는 아니야."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아이는 딱히 궁금한 점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평생을 살아가며, 삶 속에 자신에 대한 여러 질문이 떠오르겠지. 적어도 이 어린 나이에 혼자 감당하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용기 내어 갔던 정신건강의학과의 첫 진료, 오랜 시간의 풀배터리 검사와 약물 치료 적응기까지... 벌써 5년이다. 이 날을 위해 엄마인 내가 미리 아팠나 보다. 정신과, ADHD, 약물 복용 등 그 모든 편견을 감내하기로 결심한 순간순간이 다 이 날을 위해 있었나 보다. 그 결단으로 인해 아이의 모든 순간에 있던 '최악의 실패'들로부터 구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덕에 아이는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당부해야 했던 것이 있었다.

"ADHD는 자랑할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야. 대신, 이건 소중한 '개인적인 이야기'야. '개인정보'야. 친구들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직 어린 동생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



이 긴 대화 속에서도 아이는 웃기도 하고 다소 집중하기 어려워서 누웠다 일어났다, 갑자기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며 산만해졌다. 그 모습에 난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우리 아들.


ADHD,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고민이 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비로소 알려줄 수 있었으니까. 몇 가지 중요하게 당부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1. 부모가 먼저 수용해야 한다. 아이는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보다 부모가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전부다. 부모가 아이의 세상이다.

2. 돌려 말하지 말아야 한다. ADHD는 '과학'이다.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면 심플하다. 뇌 과학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진실만 있다.

3. ADHD 부모는 올바른 장애인식이 있어야 한다. 가끔 ADHD의 '장애'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장애'에 대해 어떤 편견이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잘못된 인식이 오히려 아이를 프레임에 가두어 보게 하거나 아이가 왜곡되게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엔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다름은 결핍이 아니며, 동정받아야 할 것도 아니다. 그냥 달라서 특별한 것이다. 그 존재의 고유성이다.

4. ADHD라서 대단한 것이다. 넌 이런 사람도 될 수 있다고 '위인'의 이야기만 하지 말자. 어렵지만 평범하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행복을 가꾸며 살아가는 ADHD인들이 더 많다. 내 아이는 위인이 되기보다 그 평범함을 갖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존재함,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자.

5. 아이에게 ADHD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의 증상에 '비난'을 멈추는 것. 앞으로 이런 말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대체 왜 그래?" "몇 번을 말해?" "왜 기억을 못 해?" "왜 이렇게 가만히 있질 못해?" 이런 말들은 아이에겐 존재의 비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넌 왜 ADHD야?!"라고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쉽지 않을 거야. 근데 괜찮아.
우리 가족은 또 함께 잘 나아갈 거야.
엄마는 최선을 다 할게.





초반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여기까지 해온 내가 대견하다.

지나고 나니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맞았다.

완벽한 선택은 없었다.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나의 최선으로 만들면 된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https://brunch.co.kr/@sabinalee/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