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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아이의 등교준비로 번아웃이 왔다

내가 정말 어려웠던 건 이거였구나

by 이사비나

휴직을 하고 해외에 나와 온전히 ADHD 아이 둘을 보는 중이다. 10살 세모는 ADHD 진단을 받은 지 5년이 되었고, 여아인 둘째는 또 다른 모습의 ADHD 증상을 보여주는 중이다. 강력 의심 중.


워킹맘으로 살던 때에는 나의 감정이나 나의 지침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일을 쉬면서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아보니 이제 한계가 온 것인지 내 얼굴에 표정이 사라져 있을 때가 있다.


"Mom, are you sad?"

둘째가 묻는다. 굉장히 나의 표정과 기분에 세심한 아이다.

"No. I am fine."

차마 "happy"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침마다 내 얼굴은 표정을 잃는다. 미라클모닝을 하며 성경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러다 아이들이 일어나 학교 준비를 할 때면 나오려는 한숨을 매일 삼켜야 한다.


세모가 어릴 때에는 아이가 한 명이기도 했고 루틴을 잡는 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좀 더 몇 년이라도 어려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는 등교 준비 루틴에 익숙해졌다. 나 역시 지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둘째가 문제다.

아침에 일어나면 짜증이 가득한 둘째. 각성이 느린 아이다. 전환도 느리다. 한 가지에 몰입하면 일단 그걸 끝내야 해서 옷 입기, 밥 먹기, 양치하기, 스노팬츠 입기, 부츠 신기, 차에 타기 등 그 모든 단계에 버퍼링이 걸린다. 이 아이는 사실 느린 게 문제가 아니다. 느림에 감정이 얹혀 있다는 게 문제다.


"MOOOOOOOOOOOM!!!

엄마를 불러 그 기분을 쏟아낸다.

이 옷은 간지럽다.

그 밥은 먹기 싫다.

근데 배는 고프다.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양치는 이 화장실에서 하고 싶다.

아니 저 화장실 갈랜다.

스노팬츠 입으려면 한참이다.

이제 겨우 발 하나 넣었는데 잘 안 들어가서 짜증이 나시겠다.

부츠를 신는데도 시작은 엄마가 하랜다. 그러면 본인이 발을 조금 더 양보해서 쑥 넣어주겠다네.

차에 타는데 눈이 내렸으니 눈에 한번 누우셔야겠다.


이 모든 단계에서 "Nope. 그냥 해."

한번 단호하게 자르려면 또다시 감정 폭풍을 내가 견뎌야 한다. 시간이 많으면 좋겠지만 캐나다 학교는 지각하면 오피스에 가서 리포트까지 해야 하니 훈육의 시간은 사실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겨우 차에 타서 출발하면, 그때부터 늘 전쟁이 시작된다.

세모와 네모의 툭툭 시비 걸기 전쟁.

거기에 아빠의 폭발까지 시작되면 나는 그 사이에서 또 무표정으로 아이들을 중재한다.


6시에 일어나하는 미모닝은 딱 이 시간을 겨우 견디게 해 준다. 아이가 일어난 시간부터 딱 한 시간 동안 나는 오늘 받아도 넘칠 스트레스를 한 번에 받는다.


스스로 척척 해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 있다. 나도 그런 아이였으니까. 이젠 세모도 가능하니까. 둘째를 키우며 다시 ADHD 아이들의 특징을 돌아본다.

전환이 어려운 것

기분 조절이 어려운 것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일단 스트레스부터 받는 것

그리고 그 앞에 가장 기대기 쉬운 존재, '엄마'가 있으면 아주 쉽게 감정을 토스하는 것...


세모를 키울 땐 몸이 힘들었고, 네모를 키우는 건 마음이 힘들다.


나만 찾는 시절이 얼마나 가겠나...

이렇게 챙겨줄 날들이 얼마나 가겠나... 싶어 참아온 것들이 결국 번아웃이 되었다.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무표정을 선택했다.

그런데 무표정마저 아이는 아주 예민하게 캐치한다.

"Mom, are you sad?"

"No, I'm not."

"I wanna see your smile!"

내 감정을 체크하고, 내가 웃어주길 바라는 아이를 보며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지친 마음을 애써 이겨내고 그 미소 하나가 뭐가 어렵다고 그렇게 웃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예민한 둘째를 챙기다 보면

감정적인 소진도 감춘 채 웃어야 하는데, 이게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깨달았다.


과잉행동 충동형 ADHD 아이 세모와 불안 강박형 ADHD 의심되는 아이 네모! 그리고 성인 ADHD가 의심되는 '나'.


우리 잘할 수 있겠지...?ㅎㅎㅎ

감사한 일도 많고, 지치고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던 캐나다살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귀국. 어쩌면 이제 또 시작 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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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며 '나'를 알아간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의 일상을 책임지는 것은 또 다른 것이란 걸 깨닫는다. 나는 생각보다 더 내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다 해주어야 하는 영유아 시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내 기분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곳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아이 앞에서 내 기분을 자꾸 감추게 되고, 거짓 미소를 지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나 자신을 위해 조금은 건강히 내 기분을 아이에게 표현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좀 부족한 엄마여도 건강한 엄마가 최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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