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훌쩍 넘기고 ADHD를 알게 됐다

F코드를 받은 날

by 이사비나

<우리 아이가 ADHD라고요?> 책을 쓰고 아이의 ADHD로 인해 힘들었던 일상을 나누던 브런치에 이 글을 쓸 날이 올 줄 몰랐다.


사실 기억은 난다.

세모가 ADHD 약물 치료를 시작한 날, 주치의 선생님이 물으셨다.

"ADHD가 엄마 쪽인 것 같아요, 아빠 쪽인 것 같아요?"

그땐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유전이에요."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을 때까지.


첫 책에도 썼지만, ADHD 스러운 성향은 분명 있었지만 지금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휴직을 하고 아이와 해외 살이를 하면서, 나의 모든 루틴이 깨지고 환경이 바뀌고 나니 내가 얼마나 주의력이 약한지 매일 느끼게 되었다. 그냥 매일 공부하고, 수험 생활을 하고, 직장을 다니던 때와 달랐던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멀티 태스킹이 안 될 때, 그리고 일을 자꾸 충동적으로 벌이고 나서 미루고 또 완벽하지 못해 검열하고 나를 소진해 오는 악순환이 계속될 때였다.


귀국 전, 지인에게 추천받은 정신건강의학과를 예약했다.

초진에 뇌파 검사를 하고 여러 가지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ADHD가 의심되는 이유들을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 쏟아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모보다 심했네?... 엄마 아빠 진짜 힘들었겠다.'ㅎㅎㅎ

여아였지만 과잉행동과 충동성이 심했던 어린 시절.

남자 친구와 매일 문자를 몰래 수업시간에 나누다가 뺏기던 기억부터 멍 때리다 뒤로 나가 있어야 했던 날들도.


초진을 마치고, 1주일 뒤인 오늘, 지능 검사와 주의력 검사를 받았다.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나 생각보다 주의력 괜찮네?라고 생각했어요. 정답을 잘 찾은 것 같았거든요."


"종합해 보면 ADHD 성향이 확실히 있습니다."

애매한 듯 말씀하셨지만 세모의 진단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게 진단이라는 것을.


검사 결과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나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충동성도 강하고 주의력도 약하다고 나왔다.


지능 검사 결과를 보니 내가 ADHD가 있어도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늘 벼락치기를 해도 적당한 성적이 나왔다. 놀기 위해 공부를 했었다. 성적이 나오면 부모님이 놀아도 별 말을 안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영어과에 입학했고, 내가 좋아하는 영어만 공부했던 대학 시절에는 과 수석을 할 만큼 성적이 좋았다. 실컷 놀고, 벼락치기하듯 잠을 3시간씩 자면서 공부하면 성적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이게 ADHD 특성이라고 하셨다.

'꾸준히'가 안 되는 것.

이 정도의 지능, 잠재력이 있는데 그 지능을 가지고 매일 꾸준히 노력해 온 사람은 내 결과와 다를 거라고 하셨다. 같은 지능이라도 나는 ADHD가 있어서 꾸준히 하지 못 했고 벼락치기로 몰아서 바짝 하고 성적을 내는 식으로 이 정도의 결과를 낸 것이라고.


늘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느낌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지금 충동성이 많이 줄어들고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이유 역시,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사회화된 것 같다고 하셨다.

아이들 앞에 서는 책임감으로 ADHD 충동성을 누르고 검열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거라고. 그래서 강박 성향도 유의미하게 조금 높게 나왔다.


"아마 남들은 그렇게 바짝 긴장하고 생활하진 않을 거예요.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 말에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애써 웃음으로 포장하며 그 순간을 잘 넘겼다.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거예요."

ADHD 진단이 나와도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약물치료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가 조금 당황했다. 사실 모르는 것 아닌가? 내가 정말 괜찮은 상태인지. 그건 전문가가 말해주는 것이니까.


정신과를 나와 남편을 만났다.

ADHD인지 아닌지 묻지도 않는 남편.

문득 연애 시절부터 결혼까지 부주의하고 기분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나를 감당해 온 남편에게 미안하고 감사해졌다. 남편은 ADHD 아이를 키우는 걸 많이 힘들어하는데, 그 ADHD가 나에게도 있다니... 당신 정말 괜찮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여기 오기까지 정말 나 많이 애썼구나.

그리고 다행이야.

남은 날들을 나와 더욱 친해질 수 있다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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