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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내 감정은 늘 회색빛

어둠이 디폴트가 될 때

by 이사비나

20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좀 더 늦게 할 걸 후회할 때가 있다.

주변에선 말한다.

"나중엔 네가 웃고 있을 거야."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ADHD 진단을 받고 모든 계획을 틀었다. 틀어졌다고 해야 맞을까? 꿈 많은 10대, 20대는 어디 가고 우주 끝에 가 있던 나의 꿈들을 붙잡아 지구에 발 붙이려 애쓰며 살고 있다. 가끔은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만히 있을 때 찾아오는 마음의 먹구름이 아주 짙어질 때가 있다.


믿는 만큼 큰다는데 내 믿음이 너무 작아 아이도 그만큼 자라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

무엇이 되든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정말 나 괜찮을 수 있을까 라는 자기 의심.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고 아이 약을 챙기는 피곤한 아침,

늘 반도 먹지 않는 아침 식사를 그냥 혹시라도 다 먹을까 하여 차리는 내 고집.

도시락을 싸면서도 메디키넷 약효에 안 먹어도 배부를 아이가 남겨올 걸 알면서도 빵 한 조각만 넣을까 하다 두 조각 넣는 내 집요함.

하교하는 아이를 보며 표정이 안 좋으면 또 오늘은 무슨 사고를 쳤을까 하는 철렁함.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일상들을 열심히 회피해 온 것 같다.

"여보가 가서 말해봐."

어느 순간 남편에게 그 자잘한 부침을 넘기면서 지내왔다. 그러다 남편마저 터질 땐 정말 이대로 나 혼자 호텔에서 묵어보는 상상을 하며 하루를 또 견딘다.


아이의 어려움을 알게 된 건 나에게 행운임은 분명했다.

괴로웠던 마음의 이유를 찾았으니 열심히 반창고도 붙이고 연고도 바르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피만 철철 흘릴 뻔했던 걸 이렇게나마 구제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책을 쓰고, 또 책을 쓰고 출간 작가가 되었다. 무엇이라도 이룬 것처럼 설레고 기뻤다. 또 다음 책을 쓰는 지금도 창작의 짜릿한 고통을 누리는 중이다. 그러다 자리에 누우면 지워지지 않을 영영 낫지 않을 것 같은 내 회색빛 구름들이 몰려온다.


이렇게 고단한 일상들을 매일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마냥 밝기만 하고 행복한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고? 이렇게 밝을 수 있다고? 그런 사람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나는 이제 무슨 색을 섞어도 검정 아니면 회색이겠구나. 서글픈 것일까 슬픈 것일까 아니면 우울한 것일까. 아무리 긍정적인 회로로 아이에 대해, 우리 가족에 대해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어려울 때가 있다. ADHD 아이 키우기? 그건 정말 실전이었다.



어쨌든 아이를 낳고 내 감정은 회색빛이 디폴트다.

오색찬란 꿈들을 강행하기엔 책임질 것이 너무나도 많아져서일까.


캐나다엔 눈이 내렸다.

갑자기 스노 부츠와 패딩을 꺼내 입어야 했다.

일단 오늘은 '날씨 탓'으로 돌려본다.



내가 여전히 꿈꾸는 것들-

해외에서 글 쓰며 살기

100명 앞에서 강연해 보기

유학 가서 공부하기

작가로 성공하기

아무 걱정 없이 남편과 해외여행하기

나 혼자 멕시코 호텔에서 한 달 살기

아이들 챙기지 않고 책만 쓰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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