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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사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

by 이사비나

언젠가는 써야 할 이야기를 꺼내 본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하여 쓰지 못했다.

내 아이가 아니고 내 가족의 아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가을날이 되면 그날의 아픔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자꾸 눈물이 찬다. 이토록 아픈 이유를 곱씹어 보았다. 그 아이 역시 나의 가족이었기에 나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런걸까. 나와 고작 10살 차이도 안 나는 아이가 하늘나라로 정말 갑자기 떠난 날, 나와 같은 시절을 보내는 젊음이 너무 아깝고 슬펐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나는 그보다 더 강렬하고 지옥 같은 슬픔을 느껴야 했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고작 10년도 채 안 되는 아이를 키우는데도, 돌쟁이 아이를 품에 안고 키우는데도 그 깊은 사랑은 절대 낳아보지 않으면 모를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아이를 먼저 보낸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않을 만큼 자만했고 오만했다. 이 세상이 아이를 평생 내가 죽는 날까지 곁에 두게 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태어나는 순간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말도 못 하는 아이를 품에 안아보던 순간이 기억난다. 단 하루만의 인연에도 내 목숨을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는데, 그 아까운 20년의 자식이 세상을 떠난다니. 나는 그 부모의 모습을 차마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슬픔이라서.


아이의 부모는 연신 무너졌다.

"미안해 미안해"만 외쳤다.

조문객과 아이의 관을 싣고 떠난 버스 기사는 물었다. "점심은 안 먹냐고." 할머니를 보내드릴 때에는 "점심 먹으러 갔다 오지요" 하고 모두가 식사를 하러 갔었는데, 자녀상에서 그 누구도 밥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 콧물을 먹느라 배가 불렀다.


부모는 말했다.

내 아이의 친구 하나를 못 알아보고, 이름조차 모른다고. 너무 슬프다고.

그리고 또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 예쁜 아가를 20년 넘게 키워온 부부는 누구보다 성실히 키웠다. 아이를 위해 학군지를 찾아다니고 삼시 세 끼를 해먹이고 좋은 집에 따뜻하게 재우고 아이가 원하는 만큼 또 잘 커주었다. 건강히 아주 예쁘게. 내일의 계획이 찬란하게 있던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사고로 부모의 품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무엇을 잘못했을까. 무엇이 미안할까.



그 일은 나에게 아직도 마음 아픈 사건이다. 사건이라고 부를 만큼 치유가 되지 않았다. 이날의 강한 기억은 부모로서의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게 해주기도 했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는 게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는 것, 나를 위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순간에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 와도 정말 덜 후회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오직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아무리 다 해주어도 나는 아이에게 눈 감는 순간까지 미안할 거니까.


오늘도 잘해 먹였다.

잘 안아주었다.

화딱지가 나고 울분이 날 때에도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를 위한 정성은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 교훈이 나를 또 바지런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아직도 떠난 동생의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슬픔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눈만 봐도 내가 울어버릴 것 같아서 내 슬픔이 다시 또 그들의 슬픔을 건들까 봐 멀리 떠나 있다.


2025년 가을, 아직도 그 아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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