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비나 Jun 14. 2023

ADHD, 이른 진단이 우리에게 준 선물 3가지

조기 진단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세모의 7살은 나에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ADHD 진단이 마치 '너와 세모에게는 이제 암울한 미래뿐이야.'라는 점괘라도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나와 세모는 어떤 것이 달라졌고, 어떤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생각보다 시간이 해결해 준 것들도 많았고, 매일 책을 붙잡고 나를 위로하던 날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아이의 ADHD가 무섭고 두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당최 그 ADHD라는 놈이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교과서 윤리 책에서나 봐서 알았는데 이게 인생의 진리라는 걸 나의 아이 세모가 가르쳐줬다.


   난 ADHD를 '질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아프게 태어났다던지 병에 걸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 선생님의 말씀 중에 기억에 남았던 것은 정신과에서 '진단'의 의미는 병이라고 아픈 사람이라고 명명하기 위한 게 아니라, 사람이 사회에서 생활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 힘든 점들이 있을 때 '치료적 도움'을 주기 위해 '진단'을 하는 것이라고 하신 부분이다.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ADHD 유전자는 저 오랜 원시 시대 사냥꾼 유전자라고 하기도 한다. 그 시대에는 ADHD가 환영받던 시대였겠구나 싶다. 충동적이고 과잉의 행동들은 먹을 것을 구하고 사냥하기에 아주 찰떡인 재능일 것이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주변을 산만하게 살피고 적응할 곳을 찾는 것 역시 유능한 점으로 꼽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ADHD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알 수 없는 어려움들, 낮은 집중력과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과잉 행동, 충분히 생각하기 전에 Go! 해버리는 충동성의 어려움들은 현대 사회에서 도태되게 만드는 증상들이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것은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고, 또는 모두가 선망하는 능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지.


   교사의 촉으로 세모를 데리고 정신과에 갔고, 1년을 머뭇거리다 약물치료를 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간다. 처음에는 동료 선생님께 세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내 동료 교사들은 '아이가 다 그렇지. 저 정도는 ADHD 절대 아니야.'라고 나를 안심시켰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난 'ADHD가 아니라면 난 왜 이렇게 저 아이를 키우는 게 버겁고 힘들까?'라며 자책의 늪에 빠지곤 했었다. 정상인 아이를 'ADHD'같은 두려운 진단명을 갖다 대는 나 자신을 미워했다. 이 시기를 거쳐 ADHD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는 내 인생이 좌절의 연속일 줄 알았다.

 

하지만, 고작 약물 치료 1년을 넘기고 단언하건대 ADHD '조기 진단'은 우리에게 선물과도 같았다.


   ADHD를 공부하고 편견이 사라지니 분명 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ADHD는 '완치'하는 것이 아니고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증후군이라는 것, ADHD 특징은 도전 정신, 적응력 등 강점도 많다는 것, ADHD의 어려움들을 걷어내고 나면 아이의 지능을 최대로 발현시킬 수 있다는 것 등...


   그런데 무엇보다, 날 힘들게 하는 것,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이 바로 요놈 "ADHD"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또래들은 쉽게 잘 해냈던 것들을 왜 우리 아이는 못할까 내 양육 방식의 문제인지, 아이가 날 무시하는 건지 화살이 나에게 쏠렸던 것들이 이제는 "ADHD"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 화살을 마침내 밖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자책하지 않게 됐다. 나를 형편없는 엄마로 보지 않게 됐다.


   또 하나의 선물은 바로 우리 세모가 해내는 일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받아쓰기 공책에 100점을 받은 것보다 내가 먼저 보는 것은 세모가 열심히 쓰려고 노력한 'ㄱ'의 가지런함, 'ㄹ'의 정성스러움이다. 또래라면 누구나 해내는 글씨 쓰기에도 내가 보는 것은 이 아이가 얼마나 '잘' 했냐 보다 얼마나 '노력'했는가이다. "준비물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음... 도화지랑 색연필이야."라고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는 아이의 노력을 칭찬할 수 있다는 점도, 학원에서 얼마나 집중해서 문제를 잘 풀었는지보다 학교를 마치고 놀이터에서 내내 생각 없이 놀지 않고 다음 스케줄을 기억하고 학원을 시간 맞춰 갔다는 그 사실에 감동하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항상 버럭 하는 엄마를 용서해 왔던 세모를 이젠 내가 더 많이 아이의 실수를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오자마자 옷을 벗어 뱅뱅 돌리며 날리는 모습도 이 아이가 내가 가르쳐준 규칙을 무시하려고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기에 한번 용서하고 지도할 수 있다. 숙제를 하다가 노래를 크게 부르는 것도 숙제를 하기 싫어서가 아니란 걸 알기에 그 노래에 칭찬을 날릴 수 있는 후한 엄마가 되었다.


ADHD 진단을 망설이는 부모들의 마음을
백번 천 번 만 번 이해한다.
나 역시 그랬기에.
이젠 그 부모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당신이 당신의 아이를 키우기 힘든 이유가
어쩌면 당신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자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지나고 나니 ADHD,
이른 진단은 나와 세모에게 선물이었다고.




*사진 출처- Freepik

이전 07화 ADHD 가면 뒤에 숨은 불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