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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un 17. 2023

ADHD 가면 뒤에 숨은 불안

ADHD는 불안마저 눈치채지 못하는 게 아닐까?

ADHD는 신경다양성 중 하나이다.

ADHD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양의 집중력을 갖고 있고 다 같은 정도의 과잉 행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지구에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 끝의 모양까지 똑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듯이 뇌신경회로 역시 DNA에 따라 (때로는 환경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ADHD라는 진단을 받으면 다 똑같이 소위 ‘정신없이 산만한 인격체’로 일반화시킬 수 있겠는가.


ADHD는 뇌의 문제이기에 미묘하게도 얽혀버린 신경 회로 탓인지 어떤 사람은 틱이 심하고, 어떤 사람은 폭력성이, 어떤 사람은 불안이, 어떤 사람은 강박이 함께 나타나곤 한다.


세모는 4살 무렵, 코를 킁킁 대는 틱이 왔었다.

‘비염 때문인가?’ 하고 오해했던 것이 '틱'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이비인후과 진료에서도 별 다른 문제가 없었고 비염 알레르기가 심해지는 계절도 아닌데 킁킁 댔었기 때문이고, 뭔가에 집중할 때 본인도 모르게 계속 킁킁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모가 ADHD 진단을 받고 나서야 이해된 부분이다.

‘틱도 신경다양성 중 하나구나.’


세모가 메디키넷, 콘서타를 복용해 오며 우린 ADHD의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각성 상태가 되면서 생긴 '불안증'이다.


"엄마, 빨리 차 문 닫아! 벌레 들어와! 빨리! 빨리!"

(이건 뭐... 강도가 우리를 쫓아오는 수준의 재촉이다.)


"엄마! 땅에 개미집 밟으면 어떻게 해!

개미집 잘 보고 피해서 걸어가!"

(도대체 개미집이 어떻게 생긴 거니...?)


"엄마, 갑자기 안 좋은 생각이 나.

내가 차에 치이면 어쩌지?"

(우린 인도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약물을 시작하기 전에는 자동차 따위 무서워하지 못했던 아이였다. 개미집을 마구 파헤쳐볼 때도 있었다. 곤충 채집 한다고 나가서 '벌'을 잡던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불안이 높아진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다 ‘각성제 때문이구나.‘ 하고 결론을 내렸었는데... 세모의 불안의 양상을 지켜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비 ADHD인 사람들도 적정량의 불안을 안고 산다.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도 어딘가에서 오토바이가 나를 칠 수도 있기에 주변을 살피고 걷는 정도의 불안, 낯선 사람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도 친절 뒤에 숨은 뭔가를 볼 수 있는 경계심을 가질 만큼의 불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내 다리가 부러질까 봐 차마 올라가지 못해 도전하지 않기로 결정할 정도의 불안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ADHD 약물을 복용하기 전, 날것의 ADHD 성향을 뿜뿜 뽐내던 시절의 세모를 생각해 보니, ADHD라는 가면 뒤에 숨은 '불안'을, 남들도 다 갖고 있을 만큼의 불안을 어쩌면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채로 생활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불이든 빨간불이든 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로 돌진하던 때에도, 낯선 사람이 친절한지 그 뒤에 무슨 의도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먼저 말을 걸어버릴 때에도, 높은 곳에 올라가 점프할 생각만 가득할 때에도 어쩌면 세모의 뇌는 ADHD가 다른 신경적인 것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불안'이라는 감정이 아무리 경고를 해도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닐지.


사실은 ADHD를 걷어낸 세모의 지금 모습이 진짜 세모의 뇌가 편안한 상태에서 '불안'이 제 몫을 해내고 있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불안'은 누구나 갖고 있다.

불안은 나쁜 것일까?

누군가에겐 힘겨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불안을 '안 불안', '편안'으로 바꾸기 위해서 사람들은 '통제'를 한다. 예측할 수 있도록 통제하여 자기만의 방어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런 과정에서 ADHD인들은 '자기 통제', '자기 조절'도 배우는 게 아닐까?


세모의 약물 복용 전에 감춰져 있던

그 불안이 이제야 보인다.


'세모 너도 내심 불안했던 것들이 많았구나.

너 자신이 그 불안을 보지 못했구나.

불안을 마주해오지 못했으니 얼마나 더 불안했을까.'


ADHD인들은 자신의 감정에 주의집중을 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더 표현하기가 어려웠겠다 싶다. 우울할 때 우울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불편해도 왜 불편한지 모르는 그 모습을 세모에게도 본 듯하다.


내 아이의 ADHD 가면 뒤에 숨은
 '불안'을 잘 읽어주고 싶다.
불안이 올라올 때면 알아채고
잘 다룰 수 있도록-


*사진 출처-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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