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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안 지내기로 했다

by 스토리

열흘 전 기제사를 지내고 올해부터는 명절 제사는 안 지내기로 나는 큰 용기를 냈다.

사별 후 십 년은 흔쾌하진 않았지만 꼬박꼬박 잘 지냈다.

첫제사를 지내면서부터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간에 딸들에게 의중을 내비쳤더니 어디서 상놈짓이라며 펄쩍 뛰는 바람에 그래 지인들과 제사음식이라도 나눠 먹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주변 지인들 보면 큰형님네만 제사를 지내는 형국이다.

그마저도 얼마 전부터 하나로 몰아버렸다.

최근 한 시간 거리로 이사를 했기에 그 제사에 아주 오랜만에 참석하고는 자정을 넘긴 심야에 제사음식으로 상을 차렸지만 한 가지도 먹을만한 게 없었다. 수박마저도.

울형님 싼 걸 찾아 먼 재래시장을 다녀온 보람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난 조카가 따라준 고급 양주 한 잔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점은 형님과 기장 해변을 돌아 아귀찜으로 맛나게 먹고 돌아왔다.

제사음식 고스란히 놔두고 이게 뭐람?

그렇게도 고지식하던 큰 형님도 변하는 모양이다,

어젯밤 대부분의 음식들은 둘째 형님네 다 싸주고 말았다.

내가 이처럼 큰 용기를 낸 것은 큰 딸네가 타 지역으로 대이동을 하는 이유가 컸다.

지아빠 제사만 없으면 거기서 만나면 서로 편하고 좋을 것 같아서였다.

흔히 말하는 역귀성으로 그들 넷이 움직이느니

나 혼자 가는 편이 홀가분할 것이라는 나의 안일한 발상이었다.

작은딸이 대뜸 언니에게 물어봐야 한다 하고 정작 큰딸은 엄마가 귀찮아서 편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대드는 것이 아닌가.

난 지들 편하라고 생각해 낸 묘안이 단숨에 박살 나고 말았다.

엄마고 자매라도 손님 치다꺼리는 딱 질색이라는 반응에 난 적잖이 놀랐다.

그래 그러면 하던 대로 명절은 친정인 내 집에서 맞기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럼 또 제사를 지내야 되겠구나 싶었다.

어차피 먹을 음식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좀 살아보니 시근이 들은 건지 이번에 큰 딸네는 안 오기로 했다며 과일들과 금일봉이 진작에 도착했다.

안 온다니 내심 잘됐다는 안도감이 일었다.

아직 아이가 없는 작은딸은 추석날 산소 가자며

음식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지들 자매끼리 모종의 결탁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의 시정을 알아준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

그러자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그들이 먹을 음식도 준비해야 하지만 제수용 장만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니 오늘 아침 난 이렇게 느긋하다.

편의점 커피를 들고 빵집을 들러 싫어하는 떡 대신 파운드케이크와 리코타샐러드와 브런치 바게트를 사들고 맞은편 놀이터 벤치에서 이렇게 글을 쓰는 여유를 갖는다.

동네 마트보다 빵집이 더 대목인 듯 케이크등을 사는 손님이 많아 보였다.

이젠 명절 음식 문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해야 마땅할 것이다.

선물용인지 파운드케이크 옆에는 롤케이크가 잔뜩 쌓였고 각종 샐러드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걸 보니 더 그렇다.

떡보다 케이크가 전보다 피자가 나물보다 샐러드가 대세다.

늙은 나도 그렇다.

오늘 오후에 도착하는 작은 딸네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맛난 거 사 먹자고는 하지만 장거리 운전해 오니 그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제 사다 논 갈비탕과 갈치는 굽고 밑반찬도 서너 가지 사 두었다.

요리에 손이 떠버린 내가 만든 것보다 나으니까.

실은 얘들은 짠 밑반찬은 먹지도 않는 편이긴 하지만.

장모로서 체면을 차리려면 그래도 구색은 갖춰야 하니까.

사위는 늘 장모님 브런치 먹으러 가요?

말했지만 명절에 음식도 있고 문 여는 곳도 없을 테니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난 찬성일 세다.

내일 아침은 새벽배송으로 미리 쟁여둔 함박과 양송이수프와 방금 산 샐러드와 빵으로 브런치를 먹이고 청도 산소로 갈 참이다.

거기도 과일과 마른 포. 유과. 빵을 준비했다.

제사에서 해방되자 자유로워졌다.

난 이순을 훌쩍 넘었지만 요즘 신세대 못지않게 편리하게 산다.

편리지상주의인 나에게 우리나라 새벽배송과 당일 택배 시스템은 최고 수준이다.

나의 손자 세대에는 아마도 제사 문화가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었지만 이미 더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거의 반 정도는 이미 정리된 듯 보인다.

좀 깨인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그건 다 정리 정돈하고 죽을 것이다.

단지 망설이는 이들은 후한이 두려운 것이다.

벌이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모든 것을 편리한 서양 자본주의 문물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데 말이다.

서양에선 성묘에도 꽃 말고는 커피도 가져가는 걸 본 적이 없지 않던가.

문득 나도 차라리 꽃을 들고 가는 편이 현명하다고 판단된다.

누가 먹는다고 음식을 가져간다니.

다음부터는 꽃으로 간단히 성묘 가리라 다짐해 본다. 생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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