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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성적표

by 사부작



이 세상의 자영업자 분들은 매월 성적표를 받습니다. '월 매출'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크게 성적을 신경 쓰지 않는 사장님들이 계실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생존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첫 성적표를 받은 그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그 결과를 목도하니 생각보다 현실의 무게가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직장인으로서 매월 받던 급여를 작고 소중하다며 농담하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일이 적든 많든 월마다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주는 '경제적 안정감'을 그제서야 실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매출은 그 숫자 그대로 가게의 수익이라 볼 수 없는 표면적인 값입니다. 실제로 그 안에는 많은 비용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에 대한 월세부터 시작해 꽃을 사입하는 비용, 포장지 등의 여러 부자재들, 전기세/수도비와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 비용까지 꽃다발 하나에도 무수히 많은 원가가 녹아져 있습니다. 따라서, 매출에서 그러한 비용들을 제했을 때 남는 금액이 실질적으로 사장님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인데, 첫 달 아내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0원'이었습니다. 오히려 마이너스였죠. 상품의 가격을 산정할 때 원가를 반영하기도 했고, 예약 주문 방식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꽃 재고를 최소화했음에도 수익은 없었습니다. 일상생활에 드는 교통비나 식비 등을 감안한다면 더 적자인 셈이었습니다.

지인 효과도 오픈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긴가민가 했던 거 같습니다. 이게 맞는 건가? 싶다가도 생각해 보면 평균적으로 일반 사람이 꽃을 사는 횟수가 많아야 연(年)에 세네 번 정도인 걸 감안하면 그럴 수 있겠다고 위안을 삼기도 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그런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사업은 버티는 사람이 승자다.' '그래도 2-3년 버티어내면 안정기가 찾아오니, 그때까지만 버텨라.'라는 얘기들 말입니다. 자영업이라는 업의 특성을 말하는 거일 수도 있고, 동시에 그만큼 버티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습니다. 이제 시작이었지만 아내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장님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계산이 돌아가는데요, 이렇게 적자인 상태로 몇 달이 지나면 모아 놓은 돈이 사라지고, 이후에는 모아 놓은 돈은커녕 남편이 벌고 있는 돈도 저축하지 못하는 상황이 결국 오지 않을까라는 걱정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사실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었는데요, 적어도 일 년은 제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내에게도 자영업자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절차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겪는 사장님의 입장은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본인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함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소중히 쌓아왔던 자산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봐야 하니까요.




아내는 가끔씩 올라오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눌러가며, 꽃집이라면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대목' 시즌을 처음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지금까지 발생한 적자를 만회하고 고객들에게 본인의 가게를 알릴 기회로 삼으려고 했던 거죠. 내심 저는 돈도 돈이지만, 계속해서 낯선 상황과 마주하면서 여러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게 차라리 정신없이 바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런 생각을 한 저를 욕하고 꾸짖을 만큼 폭풍 같았던 가정의 달이, 그녀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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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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