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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업장이 되기까지 - ②

by 사부작

공간까지 정해졌지만, 아직도 세상에 아내의 가게를 선보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인테리어, 오픈 일정/이벤트 계획, 상품 라인업 정하기 등 크고 자잘한 태스크들이 그녀의 액셀 파일에는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가게를 만든다는 건 영화감독이나 소설가가 하나의 인물을 만드는 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름(상호명)을 짓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의 외모(인테리어), 그가 구사하는 말투와 톤(상품 패키징), 그가 지닌 재주와 능력(상품 라인업) 같은 것들을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정의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창조된 그 인물(가게)이 대중들에게 매력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어야 독자나 관객(고객)들을 설득할 수 있고, 그 인물(가게)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가치가 왜곡 없이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겁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한 번도 가게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보니, 아내 앞에 놓인 새하얀 도화지에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될지 처음에는 난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인터넷상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꽃집의 정보들을 토대로 가게의 모습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빠르게 진행했던 건, 시간도 비용도 가장 많이 드는 인테리어였습니다. SNS에서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업체들을 찾아 미팅을 요청했지만, 미팅할 수 있었던 업체는 단 두 곳이었습니다. 다행히도 한 업체와 협의 끝에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무척 운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일정에 인테리어 공사가 가능해야 하며, 계획한 예산 내에서 원하는 인테리어를 구현해 줄 수 있는 업체를 찾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기 때문이죠. 사실, 이때부터 아내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임대차 계약을 맺었고 공간에 대한 월세를 지불해야 하니, 인테리어 공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익 없이 비용만 나가는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23년 1월에 시작한 인테리어 공사는 2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은 이러나저러나 영업이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세부 준비사항들을 마무리 지어야 했습니다. 사업자 등록부터 사업자 계좌 개설, 앞치마/거울 등 집기 구매, 명함 만들기, 쇼핑백 만들기, 브랜드 태그 만들기 등 자잘하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아내는 그 모든 것들에서 가게의 이미지와 매력이 결정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기 하나에도 공을 들여 맘에 드는 것을 기어코 찾아내고는 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가치관 때문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짧지 않았음에도, 인테리어 공사가 끝날 즈음에야 다른 디테일한 부분들도 마무리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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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객들을 맞이할 준비도 끝이 나고 세상에 이 가게의 첫걸음을 알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 당시 아내는 참 많이도 떨었던 것 같습니다. 저 같아도 그랬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간의 배움과 경험 그리고 수많은 고민이, 드디어 현실에서의 결과물로 탄생하는 순간이니 오죽했을까요. 그녀의 창업 하나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가게를 만든다는 것은 아이를 낳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중한 씨앗이 마음에 자리 잡고,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고민과 여러 배움의 과정들이 양분이 되어 씨앗이 발아하는 것 그리고 씨앗이 움트기까지 겪는 현실과의 진통들을 오롯이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 출산의 과정을 겪어본 적도 없는 제가 감히 이런 얘기를 해도 될는지 조심스럽지만, 그만큼 그녀가 가게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무척이나 험난하고 어려운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23년 3월 2일, 아내는 그녀의 꽃집을 오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까지도 지금까지 겪었던 과정들보다 더한 고난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음을,

그녀는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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