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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의 시작

by 사부작

저의 아내는 7년 차 직장인이었습니다.

첫 취업 후 줄곧 한 회사에서 만 6년을 일했고, 22년 8월 퇴사 후 23년 3월, 꽃집을 시작했습니다.




취업 준비할 때는 누구나 그렇듯, 북적이는 업무지구의 직장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들이 목에 맨 사원증을 한 번 걸어보는 게 소망이었고, 그 사원증이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됐음을 승인하는 증표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내 직장인들이 그렇듯, 현실이 된 직장 생활은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일도,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도 아니었죠. 직장에서의 10, 20년 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더 이상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직장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인 3-4년차부터 그녀는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푸드 스타일링'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녀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그녀의 '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하루, 식기구와 식자재가 잔뜩 들어있는 큰 비닐백을 어깨에 메고는, 버스를 타고 푸드 스타일링 클래스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흥미롭게 클래스를 수강하는 것 같더니, 어느 날엔가는 어두운 얼굴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푸드 스타일링은 광고주 혹은 이미지의 소유주가 '원하는 콘셉트에 맞게 음식과 식자재를 보여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본인이 좋아하는 식(食)으로서의 본질에 집중하는 일은 아니라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식품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그 식품에 담긴 맛을 탐구할 수 없는 일들이 그녀에게는 그리 즐겁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푸드스타일링 클래스가 끝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다시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꽃',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사물을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그녀가 새로이 관심을 가진 주제였습니다. 퇴근 후 피곤했을 텐데도, 그녀는 참 열심히였습니다. 플라워 클래스를 가는 날이면 들뜬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꽃을 만지고, 만드는 게 재밌다던 그녀는 그 이후로도 여러 플로리스트분들의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사실, 플라워 클래스는 플로리스트분의 노하우, 팁, 꽃 자체의 사입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그녀는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꼭 듣고 싶은 수업이면, 몇 달을 돈을 모아 결국 수강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직장인'과 '수강생'을 왔다 갔다 번갈아가며 살던 그녀의 마음속에 '퇴사'와 '사업'이라는 단어가 움트기 시작한 건, 꽃을 배운 지 2년이 흐른 후였습니다.



'퇴사'. 직장인이라면 매일 가슴에 품고 사는 그 말을, 진지하게 현실의 무게와 저울질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쉽사리 답을 내지 못합니다. 매월 받고 있는 월급이 주는 안정감과 이 월급을 통해 꾸려가는 일상생활들이, 퇴사 이후에는 적어도 몇 년간은 경험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해 보이니까요. 직장 나가면 고생이라는 주위 지인들의 얘기, 기사에 매일 같이 나오는 자영업의 높아지는 폐업률까지, 퇴사 이후 직면할 현실을 두렵게 만드는 것 투성이입니다. 아내 또한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퇴사를 처음 떠올린 이후로 길고 긴 내면의 투쟁이 시작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또 한 번의 2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결혼도 하였고, 앞으로의 미래 계획도 세우며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의 오랜 고민은 우리가 부부가 된 이후로 결정해야 했던 문제 중,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안건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의견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아내가 사업을 해도 가정의 일상이 무너질 심각한 상황이나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내심 저는 아내가 꽃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이미 직장인이고, 그녀가 당시의 직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그녀의 자질이나 능력의 실현이 만들어 낼 가치가 더 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그녀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혹시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면, 우리 둘이 직장인으로서 벌어들였을 수입과 기회비용이 작지 않다. 미래에 집을 사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데 드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수 있다.' 라며 사업을 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 둘의 의견은 모두 틀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옳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아내의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에는, '그래, 결심했어. 퇴사 후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라고 외치며 잠자리에 들고는, 그다음 날에는, '아니, 솔직히 꽃집이 이 서울 바닥에 얼마나 많은데 내가 괜한 짓 하는 거 아닐까?' 라며 비관적인 미래를 상상하고는 했습니다. 결국 데드라인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22년 상반기. 그때까지 결정을 마무리 짓고, 그게 어떤 선택이든 그 길을 열심히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결정의 순간에 우리는 '최악의 상황'이 무얼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망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일까? 아니면 마음속에 품은 꿈을 접어두고 훗날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그때 도전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것이 최악일까? 하고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를 정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누군가가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업'이 무엇인지, 세상에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지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논의 끝에, 결국 아내는 ‘나'다운 삶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삶은 본인 스스로 내딛는 걸음들이 그녀의 길을 만들어줄 거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2022년 9월 2일,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늦여름. 마침내, 아내는 6년간의 직장 생활을 끝으로 퇴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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