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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Jun 17. 2023

따뜻한 블랙커피와 마스터

공상과학

'따뜻한 거요?'

'따뜻한 걸로 주세요.'

'따뜻한 커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


미즈마루상은 동네의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는 마스터이다. 

많은 손님은 아니지만 동네에서 오래된 이 가게는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마스터는 항상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 아이스인지 핫인지를 묻는데, 대부분의 손님들이 마실 종류를 맞추곤 한다. 물론 가끔 틀릴 때도 있다. 


'따뜻한 거요?'

'아니요. 아이스로 주세요.'

'... 아.. 네..'


미즈마루상은 그 작은 커피숍을 40년가량 운영해 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이 선택하는 음료의 종류와 핫/아이스 선택에는 나름 원리가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에 대한 결과가 나올 때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미즈마루상이 좋아하는 손님은 달콤한 커피에 아이스를 선택하는 경우였다. 그는 달콤한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밝은 사람일 경우가 많고, 좀 더 순순하다고 믿고 있었다. 특히 그에 더해 아이스를 주문한다며 그것에 대한 믿음에 확실한 증거라 생각했다. 특히나 오전 첫 손님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바닐라 라테 달달하게 아이스로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손님의 주문과 동시에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만든다. 오늘 하루도 이 손님의 기운으로 자신도 조금은 밝게 생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커피 주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바닐라 라테요.'

'...'

'따뜻한 거요?'

'네.'

'아.. 네..'


손님의 주문과 동시에 표정이 굳어진다. 미즈마루상은 역시 따뜻한 것을 주문할 줄 알았다는 듯이 종이컵을 툭하고 내려놓는다. 물론 손님은 알아차릴 수 없게 행동한다. 아마 그는 오늘 별로 행복하지 않은 날이구나 하고 실망하는 듯했다.


이렇듯 손님의 주문 내용에 따라 자신의 하루 운을 점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언뜻 보면 그는 괴팍하고 고약한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 40여 년간 한 공간에서 그렇게 손님들을 상대하며 성실하게 일해오면서 나름의 철학이라 생각하며 그런 못된 버릇이 생긴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그런 어떤 한 포인트에 연연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 보면 가여운 사람이었다.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사람들 모르게 사람의 성격등을 재단하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미즈마루상은 항상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물론 찬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조금은 젊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격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는 달콤한 것을 먹지 못한다. 달달한 음료를 마시면 어지름 증세로 인해 하루의 일을 할 수 없기에 항상 블랙커피 차가운 것만 마신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인격체에 이르지 못함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어두운 성격 때문이라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도 그는 당연히 아이스 블랙커피를 준비하였다. 창밖에 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이곳 실내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문득 미즈마루상은 정말 한 번도 마시지 않던 따뜻한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이스커피를 한편에 두고 다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에 커피를 넣어 한잔의 따뜻한 블랙커피를 완성했다. 두 손으로 꼭 쥔 머그잔의 따뜻함이 그의 손에 전달되고,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그의 가슴과 마음을 모두 따뜻하게 했다. 


순간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차가운 것을 마실 때보다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러면 내가 점점 늙어 가고 있다는 증거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입가에 미소를 조금 지었다.

그는 따뜻한 블랙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한 분류를 더 추가했다. 중요한 건 블랙커피 따뜻한 것이다. 달콤한 커피 따뜻한 것은 아니다. 


블랙커피 따뜻한 것을 드시는 손님은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분류가 더 생겼다. 생각의 고려가 하나 더 늘었다.


조금 더 어떠한 마스터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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