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계획 하나쯤은 갖고 있을 텐데, 나 역시 그렇다. 지난 여름 작은오빠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난 뒤 남은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커졌다. 서로 가까이 지내자는 남편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10년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을 찾기란 예삿일이 아니었다. 친정 식구가 사는 동네는 우리 취향인 초록초록과는 거리가 먼 인구 밀집 지역으로, 퇴근하고 난 뒤 공연히 어슬렁대는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지 싶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보다는 친정과 가까우면서 구미에 당기는 지역을 찾아, 임장 삼만리를 시작했다.
곧 서울 중심지까지 단시간에 주파하는 전철이 생긴다는 신도시 예정지,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문설주부터 위압감이 넘치던 신축 대단지 아파트,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기 편하다는 장점 외에는 특별히 끌리는 구석이 없던 그 지역 대장 아파트, 대중교통이며 주변 편의시설이며 크게 두드러진 구석은 없어도 근처에 대규모 수목원이 있고 채광이 좋았던 외곽의 어느 동네. 각각의 장단점을 두루 늘어놓고 비교해 봐도, 그 중 독보적으로 매력적인 곳은 없었다.
지난 여름부터 꾸준히 이사를 하겠노라고 떠벌리고 다닌지라, 만나는 지인들마다 살 곳은 정했느냐고 이사는 언제 하냐고 묻는다. ‘아직’이라고 답하면, 하나 같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동네로 오란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실은 익숙한 동네 모두 후보군이었다. 그전까지는 지인을 만나러 대충 흘려봤던 동네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워낙에 친해서 한 때는 같은 동에 살자 했던 H가 사는 아파트는 시세를 알아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태 우리는 고민만 하고 뭐 하나 결정하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우리 동네보다 더 나은 곳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동네라고 부른 데에서 설명은 끝났다.
처음 이 동네에 왔던 날이 떠오른다. 대학 시절 친구의 웨딩 사진 촬영을 마치고서 이 근처 냉면집로 자리를 옮겨 우리만의 뒷풀이를 했다. 곧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의 달콤한 뒷모습을 배웅하고서, 나와 남편은 처음 와본 동네 구경에 나섰다. 그 전에 살던 곳과는 정반대 방향이라서 그랬을까.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미개척지에 들어선 모험가마냥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며 마구 호기심을 발산했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이거, 이 동네가 마음에 든다. 때는 여름이었다. 작은 육교를 건너니 더위 따윈 단박에 식혀버리는 강바람이 불고, 길게 늘어선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햇살 비추는 곳은 눈부시고 그늘진 곳은 멋들어진다. 남편과 둘이서 사계절 달리 아름다운 이 길을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그 길로 우리는 가까운 부동산에 들어가, 집을 보여 달라 청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고도 없이 선뜻 이 동네 주민이 되었다. 때 되면 서로 음식을 나눠먹고 내 이름을 반갑게 불러주는 이웃들도 생겼다. 그들은 아직 집도 내놓지 못했다는 내 말을 들으며, 안도의 숨을 쉰다. 이별하려고 보니 내가 떠남을 아쉬워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기왕이면 아예 이사 계획이 취소되면 좋겠다고 한다. 참 고맙다. 얼른 가라며 등 떠밀지 않고 서운해 하며 붙잡아주는 이들이 있으니.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풍경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정에 물들어, 자꾸만 다른 동네와 지금의 동네를 비교했던가 보다. 말로는 아직 여러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좋은 동네를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해가 바뀌었다. 우리가 약속했던 봄이 오고 있다. 영영 미룰 게 아니라면 우린 곧 새로운 곳을 찾아갈 것이 분명하다. 뿌리내리면 고향이라고, 물론 이사를 가서도 금세 애착이 생길 것이고 이곳에서의 기억은 흐려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조금 더 게으름을 부리고 싶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 겨울이라는 핑계로 다가올 봄을 보류하고 싶다. 우리 동네, 내 사람들과 헤어질 시간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