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동네도 온대!"
유튜브를 보던 앵두(내 딸, 7세)가 갑자기 흥분하더니 내게 소리 지른다. 이번에는 또 어디를 가자고 하는 걸까 걱정되는 맘과 주말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리란 희망이 뒤섞인 채 앵두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려 귀를 기울였다.
앵두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은 꽤 여러 개가 있다. 급식왕, 급식걸즈, 웃짜가족, 뚜식이, 오마이비키, 민쩌미, 캐리 TV.... 등등등. 그중에서도 몇 개의 채널에서는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하는 모양이다. 예쁜 외모에 맑은 목소리는 꼭 공주 같다는 환상에 빠지게 하고, 콘서트는 흥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십 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끄는 가수가 있듯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에게는 이들이 바로 그 우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한 팀이 작디작은 우리 동네에도 온다는 것을 앵두가 발견해 냈다.
급식왕의 콘서트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앵두의 흥분은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것에 견줄 수 있을 만큼 강렬해 보였다. 앵두는 내게 와서 영상의 아주 짧은 부분. 배우들이 우리 도시의 이름을 부르는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부분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어서 티켓을 예매하라는 무언의 압력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네이버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콘서트 정보가 검색이 되지 않는다. 다른 도시에서 이미 끝나버린 콘서트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 급식왕과 급식걸즈가 사실상 같은 채널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식걸즈 콘서트를 검색했다.
'빙고!'
찾았다. 역시 급식 걸즈 콘서트였다. 다만 급식왕 채널에서 광고를 해주고 있던 거였다.
어느 자리에서 봐야 배우들을 잘 볼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앞에서 3번째 줄, 정 중앙 두 좌석을 택했다. 배우들의 얼굴이 보일 만큼 가까운 3번째 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정중앙 방향. 아직 감각이 죽지 않았다고 자화자찬하며 자신 있게 클릭질을 하고 예매를 마무리했다.
콘서트 당일. 아빠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당당함. 딸이 원하는 것을 꼭 해주는 아빠라는 우쭐함에 취해 딸을 차에 태우고 콘서트장으로 향한다. 프로 걱정러로서 주차 걱정을 조금 했는데 다행히 마지막 남은 한 자리에 안정적으로 주차했다. 콘서트장 밖 넓은 공간에는 아이들이 광선 응원봉을 하나씩 쥐고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맞다. 급식 걸즈가 온다는 소식에 우리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인 듯싶다. 콘서트 시작 40분 전에 도착했는데 급식걸즈 언니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앵두는 콘서트장 안으로 들어가자고 보챈다. 좌석 위치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앵두의 표정이 안 좋다.
"아빠, 제일 앞에 앉으면 안 돼?"
"안돼. 너무 앞은 목 아파."
"아빠, 저 쪽 끝에 앉으면 안 돼?"
"안돼 끝에서 보면 배우들 잘 안 보여. 가운데서 봐야 좋은 거야. 아빠가 일부러 한가운데 자리로 예매했어."
내 선택이 얼마나 센스 있고 앵두를 위해 고민했는지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곧 그 가치를 알게 될 거란 확신에 자신만만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앵두는 1분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시작하냐 물었고 난 조금만 참으라며 앵두를 달랬다.
드디어 시작 시간. 스크린에 배우들의 얼굴이 나온다. 그리고 뭐라 뭐라 중얼거린다. '설마 온라인으로 공연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는 찰나 스크린 속 배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관객들이 가득 찬 콘서트 장으로 향한다.
'어?, 여기잖아?'
셀카봉으로 자신을 비추며 무대로 입장하는 배우들. 그 모습이 스크린에 나온다. 스크린에 나오는 배우가 바로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 스크린에 나오는 관객들은 바로 우리들이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소리를 지르며 그들을 맞는다. 이 정도면 서태지와 아이들과 동급의 인기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의 환호성에 나도 흥이 오르며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 콘서트 장에 사람들이 오는가 싶고 다음에도 또 와야 되나 싶다. 그렇게 콘서트는 시작됐다.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한다. 싸우고 놀리고 웃긴다. 그렇게 연기가 이어지며 조금 지루해지는 시점. 급식걸즈 배우들은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었는지 무대에서 객석으로 내려와 아이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은 더 신나 하고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그런데 정작 앵두의 표정은 시무룩하다.
"아빠, 왜 우리한테는 안 와?"
아뿔싸. 무대 위의 배우들을 볼 생각만 했지 배우들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하이파이브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인터뷰도 할 거란 생각은 못 했다. 그 소중한 기회는 통로 쪽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만 주어진 선물이었던 것이다.
거의 울기 직전의 앵두. 밖에 나가면 배우들과 사진 찍을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의 숨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별도의 포토타임은 없었다. 앵두는 아쉬운 마음만을 가득 채운채 콘서트 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맘에 옆에 있는 작은 미술관에 들르려 하는데 아이를 혼내는 어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쟤도 사진 못 찍었고, 쟤도 하이파이브 못했고! 자리가 안 좋으면 그럴 수 있지."
엄마의 조금은 날이 선 목소리에 아이는 기가 죽었는지 더 이상 대꾸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우리 앵두처럼 우울한 애들이 보였다.
정작 앵두는 일상을 벗어난 신발 한 켤레에 맘이 풀렸다. 자석이 붙어 있는 신발을 신고 커다란 자석판 위를 걷는 체험이 그렇게 신기하면서 신나는 모양이다. 앵두의 신난 모습을 보며 나의 실수가 덮어졌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다음 콘서트는 꼭 통로 쪽 좌석을 예매할 것을 기억하며 이렇게 아빠 경험치를 1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