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어느날, 내가 볼 수 잇게 된다면
내가 보고 싶은 것들
만약에 내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기쁠까? 아니면 막상 보게 된 세상 속 풍경에 놀라고 겁을 먹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눈을 떴을 때,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일상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싶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글로 이야기 해보려 한다.
첫 번째로 보고 싶은 건 엄마의 얼굴이다.
나를 위해 늘 애쓰고, 지켜 봐주신 엄마의 얼굴. 엄마는 흰 머리가 늘고 주름도 많아졌다고 하는데 과연 어떨까? 내가 볼 땐 가장 아름답고 멋진 얼굴이 바로 엄마의 얼굴이다.
두 번째로 보지 못했던 애니메이션들을 실컷 보는 것이다. 나는 상당한 애니 덕후인데, 더빙판 애니도 좋아하지만 일본판 애니도 상당히 좋아한다. 그래서 넷플릭스에 올라온 애니는 거의 다 체크하고,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보는 편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없는 애니는 보기도 어렵고 자막을 읽어주지 않아 그림에 떡이다. 그래서 볼 수 있게 되면 그 동안 보지 못한 애니를 실컷 보고 싶다.
세 번째로 멋진 풍경을 보고 싶다. 그 동안 여행을 가면 사람들의 감탄사에 감흥이 들지 않았다.
모두가 ‘우와!’ 하고 감탄할 때도 나는 그저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면서 ‘그렇게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래서 어딘가를 가는 것에 대해 별 감흥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집순이인 건 아니다. 시각장애인 사진 클럽인 상상 클럽에도 들어가 사진도 찍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떻게든 가려고 한다. 그래서 볼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이 멋지다고 한 풍경들을 엄마와 함께 가서 눈에 담고 싶다.
얼마나 멋진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없었기에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가슴 속에 새로운 힘을 심어 줄 것이다. 여행지에서 혼자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 눈으로 풍경을 담으며 멋지고 근사한 여행을 즐기고 싶다.
네 번째로 웹툰을 보고 싶다. 요즘은 여러 웹소설들이 웹툰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유명한 웹툰은 드라마가 되기도 하는데, 나는 여태 웹툰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멋있다고 하는 캐릭터도 나에게는 그저 그런 존재였고, 예쁘다고 하는 캐릭터 역시 와 닿지 않았다. 그저 상상으로나마 그 캐릭터를 그려볼 뿐이었다.
그런 웹툰의 캐릭터들을 직접 보며 나 또한 멋있다, 예쁘다는 말을 해보고 싶다.
다섯 번째로 궁금했던 색깔을 보고 싶다. 그 동안 지식으로 알고 있던 색을 직접 보며 색을 알고 싶다.
연분홍, 진파랑, 연하늘, 붉은색, 금색, 회색, 진노랑, 연노랑 등등 …보고 싶은 색은 무궁무진하다.
그 색깔들을 보며 색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고 싶다.
여섯 번째는 이모티콘을 보고 싶다. 나는 이모티콘을 무척 좋아하고, 많이 쓴다. 그런데 정작 이모티콘을 볼 수 없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어서 늘 답답했다.
요즘은 TTS가 이모티콘을 잘 읽어줘 쓰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안녕’ 이라는 이모티콘을 찾아 보내려고 찾아보면 ‘안녕, 리틀 어피치’ 같이 읽어줘 보내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어피치가 어떻게 안녕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손을 흔들고 있는지,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이는지 등 다양한 제스쳐는 그저 상상으로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모티콘을 보고 거기에 맞는 걸 보냈는지 늘 궁금했다. 그런 이모티콘을 직접 보고 맞는 걸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모티콘의 귀여움을 나도 직접 느끼고 싶다.
마직으로 혼자 카페에 가 보고 싶다. 그 동안 어딘가를 갈 때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볼 수 있게 되면 혼자 카페에 가 허브티와 케이크를 주문해 먹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느끼며 평화로운 시간을 느껴보고 싶다. 케이크를 직접 보면서 고르고, 허브티의 색을 보고, 노트북에 일상을 담담히 기록하는 것. 이런 사소한 것을 혼자 해보고 싶다.
내가 썼지만, 너무 많은 걸 보고 싶어하는 걸까? 어쩐지 이것이 큰 욕심인 것 같아 망설여진다. 태어나서 보고 싶은 것들을 적는데도 한참 고민을 했다. 그 동안 보지 못했으니까 화려한 것들을 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답이 아님을 곧 알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내가 보고 싶은 걸 솔직히 인정하자, 담담해질 수 있었다.
예전에 어떤 뉴스에서 미국에서 개발한 기기 하나가 소개된 적이 있다. 그건 바로 안경이었다. 그 안경을 쓰면 나처럼 빛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빛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정말 커다란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빛을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많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빛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렇지만, 때때로 ‘내가 더 잘 보였다면’ 하는 생각을 하다 우울해질 때가 있다.
여기에서 만족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안쓰럽게 느껴져서 좌절감을 맛본 적이 많았다. 이제는 그 좌절감이 덜하지만, 성우 학원을 다닐 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보지 못하는 내가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기에 더 그랬다. 대본을 파일로 받으며 따라잡으려 했으나 그걸로는 부족했다. 더빙 수업을 할 때 화면을 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큰 건지를 깨달았다. 그러면서 점차 지쳐 갔던 것 같다.
이제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지만, 그 때의 나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진행 중으로 나는 여러 가지를 도전하고 있다.
때로는 지치고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보지 못한다는 것에 ㄹ개한 스트레스와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막막함이 나를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님을 알게 됐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힘들어 하고, 좌절한다. 그러면서 일어 서기도 하고 주저 앉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나는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되리라. 그러면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벽에 부딪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힘들어 하고 때론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눈물들이 언진가는 보석처럼 빛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며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더 단련 되는 것. 그게 내 인생의 길이다.
오늘도 나는 인생의 길을 한 발 한 발 걸으며 앞으로 걸어간다. 내가 단련 되기 위해 오늘도 힘껏 기합을 넣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