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요즘 oo는 좀 괜찮아?"
큰아이 사춘기로 한동안 힘들어했던 나에게 엄마가 물었다.
"응. 아직 왔다 갔다 하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 요즘은 괜찮아."
-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다 알 것이다. 그 사춘기 특유의 눈빛을. 눈빛이 순해졌다가 사나워졌다가 하는 걸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한 것이니 오해는 마시길...
"그래. 다행이네. 요즘 애들은 다 그렇더라. 너희 키울 때랑은 완전히 달라."
동생네 아이들을 돌봐주는 엄마도 가까이에서 우리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조카의 사춘기를 겪었으니 우리 아이만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나의 상황과 마음을 잘 이해해 주신다.
"그래도 공부를 너무 안 해서 걱정이야.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공부가 부족해서 못하면 안타깝잖아. 커서 뭐가 될랑가 모르겄어."
걱정하는 나에게 엄마가 말한다.
"요즘 애들이 뭐 하란다고 하니? 혼자 걱정하며 맘고생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뭐라도 되겠지."
나는 엄마의 '뭐라도 되겠지'라는 말에 빵 터져서 숨이 차게 깔깔거렸다. 한참 웃다 보니 그래 정말 뭐든 되긴 하겠지, 뭐라도 되긴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풍파를 초월한 존재가 알려주는 듯한 이 말은 순식간에 나의 깊은 한숨과 걱정을 아무것도 아닌 한 줌 종이조각으로 만들어 저 멀리 날려주었다. 엄마의 말에는 강력한 위로가 담겨있어서 세상 어떤 근심도 별거 아닌 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그렇게 엄마랑 통화를 하고 나니 갑자기 아이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뭐든 될 것 같은 믿음 말이다. 그래서 학원도 안 다니고 시험 점수도 엉망인 아이에게 잔소리나 윽박지르는 말 대신 차분하고 조용한 어조로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네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이 느껴지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착실하게 공부 열심히 하고 성실히 학교 다니는 것만이 꼭 인생의 정답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것을 정답처럼 생각하고 살았지만 요즘 시대는 나 때와는 다르니까. 나는 내 아이가 성공하기를, 돈을 많이 벌기를, 세상에서 인정받는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자기 앞가림은 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러니 이 아이가 무엇이 되기만 한다면, 그것이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달관 섞인 '뭐라도 되겠지'라는 말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이다. 뭐가 되든 되기는 한다는 것이니까.
아이가 어릴 때는 아직 뒤집기를 못한다고 걱정, 많이 안 먹는다고 걱정, 밤에 오줌을 못 가린다고 걱정, 별 것이 다 걱정이었는데 지나고 보면 아이는 잘 자랐고 결국에는 다 해냈다. 나만 혼자 쓸데없이 걱정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었던가. 엄마는 나보다 더 오래 자식을 키워봤으니 더 오랫동안 그런 것들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보며 걱정하는 나에게 시간이 지나면 네 아이도 잘 자라 뭐라도 하는 어른이 될 테니 혼자 애태우고 맘고생하지 말라고, 너의 걱정이 아니어도 네 아이는 잘 자랄 거라고 말해주시는 것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문득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들겠지만 엄마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믿어주고 바라봐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믿어주고 바라봐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