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시즌이 돌아왔다!
우리는 친정에서 김장김치를 가져다 먹고 있어서 김장 때면 친정에 가서 함께 거들곤 한다. 지난 주말은 친정의 김장날이었고, 우리는 친정에 가서 김장을 돕고 우리 몫의 김장김치며 겉절이, 열무김치, 그리고 엄마가 싸주신 반찬들까지 한 보따리 챙겨 왔다.
김장 전날 엄마와 아빠는 아빠의 친구네 밭에서 배추, 무, 갓, 열무 등을 직접 뽑아오신다. 물론 친구분께 비용은 지불하지만 그래도 부재료들까지 한 번에 원하는 만큼 가져올 수 있으니 힘들어도 직접 밭에 나가 가져오시는 것이다. 그렇게 가져온 재료들을 밤새 다듬고 썰고 정리한 뒤에 배추는 소금에 절여 놓으신다. 우리가 친정에 도착하기 전에 이 모든 과정들은 끝나있는 상태다. 솔직히 양념에 버무리는 것보다 김장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 힘든 일이라서 내년부터는 하루 더 일찍 가야 하나 생각 중이다.
친정에 도착한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배추 버무리기에 돌입했다. 엄마네 김장은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먼저는 젓갈을 먹지 않는 제부를 위해 젓갈을 제외한 양념들로만 동생네 김치를 담는다. 동생네 김치통을 가득 채운 후에는 젓갈을 넣은 양념으로 우리 집과 엄마네 김치를 담는다. 그리고 양념을 조금 덜어 열무김치를 따로 담은 뒤, 남은 배추는 몽땅 겉절이로 만든다.
우리 가족은 김장김치보다 겉절이를 더 좋아해서, 김장을 담근 배추의 양만큼 겉절이도 만든다. 꼭지를 잘라내고 칼로 쭉쭉 찢은 배추를 나머지 양념에 싹 버무린다. 겉절이 양념에는 특별히 굴도 넣는다. 엄마의 지인들에게 담아줄 그릇들도 줄줄이 열을 맞춰 서있다. 엄마는 배달음식 포장 용기들 중에 깨끗한 것들은 따로 챙겨 두었다가 지인들에게 무언가를 담아줄 때 이렇게 유용하게 쓰신다.
엄마가 미리 수육도 삶아 두고 굴도 준비해 주신 덕분에 우리는 김장을 끝내자마자 수육과 굴과 김치를 함께 맛볼 수 있었다. 김치를 버무리면서 간본다는 핑계로 노랗고 연한 배추 속잎을 뜯어 양념에 묻혀 먹는 게 제일로 맛있긴 하지만, 모든 일을 마친 후에 수육과 굴과 새로 담은 김치를 함께 먹는 것도 꿀맛이었다. 이럴 때 술이 빠질 수 없다. 매실주도 한잔씩 걸치며 엄마는 아빠가 재료 다듬고 배추 절이느라 제일 고생 많이 했다고, 당신이 없었으면 김장 못 담았을 거라며 아빠를 치켜세워 주신다. 역시 엄마는 고단수다. 아빠는 힘들고 피곤하셨겠지만 엄마의 말 한마디에 금방 또 기분이 좋아지신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또 배운다.
아빠는 김장을 끝내고 한숨 주무시러 들어가시고 나와 남편은 근처 공원에 산책하러 나가려는데 엄마는 또 뭔가 바쁘시다. "이건 누구네 꺼, 저건 누구네 꺼" 하시며 통에 담긴 김치들을 배낭에 담는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며 겉절이 배달을 가신단다. 가방 한쪽에 와인도 챙겨가신다. 맛있는 와인인데 아직 맛을 보여주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며. 누가 최반장 아니랄까 봐.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김치전을 부치거나, 감자나 고구마를 삶거나, 팥죽이나 호박죽을 끓이면 으레 이웃들과 나눠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음식을 나눈다는 건 단순히 무언가를 전달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며 따뜻한 소통의 방식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이웃의 정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나부터도 지인들에게 내가 만든 반찬이나 음식들을 나눠줄까 생각하다가도 양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지, 괜히 부담만 주는 게 아닐까 망설이다가 결국 전해주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엄마는 생각만 많은 나와는 달리 늘 지인들에게 나눠줄 몫까지 미리 생각해서 음식을 넉넉하게 만들고 직접 가져다 주기까지 한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함도 아니고 어떤 의도나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정말로 그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정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나도 배우고 싶었다.
김장을 마치고 집에 온 나는 용기를 내서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네 집에서 김장해 왔는데 맛보실래요?"
모두들 흔쾌히 주면 고맙게 받겠다고 답이 왔고, 나도 엄마처럼 배달에 나섰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는 문자를 받고 나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도 큰 기쁨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에는 엄마의 김치로 생색을 냈지만 앞으로는 내가 만든 음식들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나누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다짐해 본다. 음식이 아닌 정을 나누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