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한 걸음씩 올라보자
뒷산은 언제나 동네 어딘가에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대나무로 뒤덮인 뒷마당을 넘어가면 도라지 꽃이 만발하던 뒷산이 있었다. 도라지꽃을 뾱뾱 터뜨리는 게 신났다. 어느 여름엔 먹기엔 너무 작고 못생긴 딸기도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뒷산은 아니지만 산처럼 높은 곳에 자리한 어느 중학교를 등산 못지않게 힘들게 오르곤 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엔 도보 3분 거리에 진짜 뒷산이 있다. 이름하여 까치산.
까치산 입구, 잘 가꾼 화단이 날 반겨준다. 꽃길만 걸어요. 내 인생은 흔히 말하는 꽃길. 그러나 가끔은 '내가 걷는 길이 나의 길인가'하는 고민이 밀려온다. 그렇지만 알고 있지. 모든 게 인생이 주는 선물이야. 웃음도, 눈물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삶이 주는 꽃길 위의 선물이지. 다만 제게 용기와 여유를 주소서.
소나기가 내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꿈쩍도 안 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양이가 이곳 까치산의 문지기다. 언제 와도 산 입구를 고양이들이 지키고 있다. 언젠가 너와 함께 여기서 배드민턴을 쳤지. 그때 우리가 본 고양이들이 몇 마리였을까. 한 여름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고양이들. 뜨거운 여름이 몇 번 지나고 그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걸음을 옮긴다.
자, 이제 첫걸음을 떼보자. 걸어보자. 진득한 땀이 옷 속을 촉촉이 적시고 가볍게 숨이 가빠오는 이 느낌의 시작. 일단 여기까지 오면 머리는 상쾌하고 맑아진다. 그저 난 발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한 계단 한 계단, 매미 소리가 들려오고 산을 가득 채운 새소리가 머리를 비우게 한다.
흙, 솔잎, 나뭇잎. 어쩜 이리 조화로울까. 이 평화로운 산책을 방해하는 건, 오직 모기! 무더위가 가길 기다린 모기들이 떼를 지어 달려든다. 제발!
그저 서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예쁜 식물이 옷도 입혀준다.
아름다운 산책로. 이 아름다운 은행잎은 누구의 멋진 아이디어일까.
안녕, 나는 하트 서낭당이야. 마음을 열어 봐. 내 마음이 들리니?
내 마음이 저리 굳건하면, 작은 벌레들이 집을 짓겠지. 이끼도 덩굴도, 떨어지는 낙엽도 모두가 풍요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쉬어가겠지.
오후 5시 35분. 나의 까치산 등산은 가볍고도 편안하다. 어디에나 뒷산이 있다. 편한 바지를 입고 모자를 걸치고, 가장 편한 운동화를 꺼내 신고 문을 나섰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벌써 정상? 에 와 있다.
정성 들여 깔아놓은 길 위를 천천히 내려간다. 마음이 기쁜 날, 웃음이 입술을 밀어내는 날, 무기력한 그런 날, 모든 게 귀찮고 그저 그러한 날, 슬픔이 조용히 차오르는 그런 날. 그냥 모든 날 모든 순간, 뒷산으로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무 말없이 당신을 조용히 품어주는 동네 뒷산. 뒷산이 내 뒷배다.
by 강 성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