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단골 도서관
나는 도서관 덕후다.
도서관이란 공간을 원래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는지,
내가 공부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
유난히 좋아하는 건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도서관 가는 걸 좋아한다.
나에게 도서관은
높은 천장,
커다란 유리창,
적절한 온도와 습도,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장서,
그 책 하나하나를 거쳐간 사람들의
가시적, 비가시적 흔적,
거기에 축적된 그 이름 모를 다수의
영혼과 정신의 무게,
가끔씩 책 속의 메모나 메모지를 발견할 때 느끼는 낯선 누군가와의 연계감,
집중하게 하지만 억압하지는 않는 기분좋은 엄숙함,
다들 비슷한 걸 하지만 또 각자 다른 걸 하는
집단적 개별성,
사람들에게서 뿜어나오는
치열한 지성과 무심한 멋스러움
뭐 그런 것들 같다.
최근 몇 년간은 외국에 갈 때
1-2달 가량 꽤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어김 없이
그 외국 도시의 도서관에 등록해서 다니곤 했다.
사실
1-2달을 낯선 도시에 머물면
장소를 옮긴 일상 생활을 함과 동시에
이방인인 나는 어쩔 수 없이 관광객이 되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 사이엔
자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특별한 걸 하는 관광객이 될 것인가?
원래 하던 걸 하는 생활인이 될 것인가?
도시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돌아다닐 것인가?
도서관에서 책 속 세상을 돌아다닐 것인가?
2013년, 2016년
바르샤바에서도
나는 자주 그런 선택의 딜레마에 빠졌고,
바로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이 원인 제공자였다.
다른 낯선 도시의 도서관도 자주 다녔고,
또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더러 그 중에 어떤 곳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현재의 나는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을 선택할 것이다.
우선
건축물이 매우 다층적이고 다면적이고
인테리어가 모던해서
도서관 건물 자체가 안팎으로 매우 매력적이고,
유리천장과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자연광이 유독 많이 들어오고,
내부 공간이 널찍널찍하고,
개개인에게 할당된 개인 열람 공간의 종류가
다양하고 널따랗고,
여름엔 사람도 많지 않고,
공기도 쾌적하고,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개가식으로 운영되는 부분이 있어
자료접근이 용이하고,
자료도 많고,
온라인 및 오프라인 자료 검색과 도서 이용도
매우 편리하다.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Biblioteka Uniwersytecka w Warszawie)은
줄여서 약자로 BUW라고 쓰고
폴란드 사람들은 '부프'라고 읽는다.
BUW라는 이름은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이
나의 생활의 영역에 들어오고 나서
알게 된 약어이므로,
이번 포스트에서는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 대신 BUW를 사용하겠다.
그리고 이제 그 BUW의 안쪽을 둘러볼까 한다.
BUW 건물 안쪽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BUW의 서쪽이자 바깥부분,
즉
도서관에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상업적 부분 전관(gmach frontowy)이고,
다른 하나는 BUW의 동쪽이자 안쪽부분,
즉, 책을 보관하고 빌리고 읽는,
도서관 본래의 기능을 하는
본관(gmach główny)이다.
이 전관과 본관은 파사쥬(Pasaż)라 불리는
유리천장으로 덮힌 통로가 연결하고 있는데,
파샤쥬 또한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고,
북쪽과 남쪽에 있는 두 개의 두꺼운 유리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이건 북쪽 입구인데,
북쪽, 남쪽 입구 모두
유리창에
새가 그려져 있다.
여기뿐 아니라 폴란드 고속도로에서 가끔씩 만나는 반투명 가림막 위에도
새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히지 않게
유리창에 무서운 새를 그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 여기도
그런 이유로 새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새가 날아와서 부딪히는 장면은
한번도 목격한 적이 없다.
2016년 8월 어느 날인가는
여기에서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었다.
이 공간이 우리 눈에만 특별해 보이는 건 아닌거다.
이건 남쪽 방향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아래 사진 왼쪽에 보이는 헌책 가판대는
낮에 설치되었다가 일찍 문을 닫곤 했는데,
여기서 책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지
팔려고 진열한 책이 계속 좀 달라졌다.
여기 말고도
바르샤바 시내 곳곳에서
이런 헌책 가판대를 자주 볼 수 있다.
폴란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긴 읽는 것 같다.
BUW 파사쥬(pasaż)의 명물 중 하나는
한쪽 벽에 전시된 포스터다.
2008년에 처음 갔을 땐
그냥 한시적인 전시인줄 알았는데,
2013년에도, 2016년에도 그 자리에 계속해서,
하지만
계속 다른 종류의 포스터가 전시되고 있었다.
찾아보니
폴란드 포스터 갤러리(Galeria Plakatu Polskiego, Polish Poster Gallery)라는
이름까지 있고,
홈페이지도 있는
일종의 포스터 상점이다.
http://www.poster.pl/polish_poster_gallery.html
포스터는
실용적인 것도 있고,
미학적인 것도 있고,
풍자적인 것도 있다.
이건 폴란드 자유연대노조(Solidarność)에 대한 패러디다.
아마도 1980년의 그 자유 정신이
이제 소비주의에 의해 많이 퇴색된 걸
풍자하는 것 같다.
이건 "퀴리부인"으로 알려진
폴란드 출신 과학자
마리아 스크워돕스카(Maria Skłodowska)의
사진인데,
남자들도 과학을 할 수 있다.
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당시 여성 과학자로서 겪었을 차별과
현재에도 지속되는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조롱인 것 같다.
2016년 8월 어느 날인가엔
BUW 파사쥬 중간에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장치도
서 있었다.
근데 하루 그렇게 세워져 있더니
다음에 갔을 땐 없어졌다.
하지만 이 장치의 유무에 관계 없이,
바르샤바는
자전거 사용도 많이 권장하며,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많은 도시인 것 같다.
파사쥬엔
카페와 식당도 몇 개 있다.
여긴 1층의 Fenomenalna Crepes & Cafe,
이건 Rewers인데,
바르샤바 시에서 만든 여행안내책자에도 나오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의
꽤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밖에 BUW 전관(gmach frontowy)에는
서점이 있고,
Rewers 입구 앞에는
지하로 통하는 철계단이 있는데,
지하에는 헌책방,
우체국,
어린이 놀이방,
대형 오락실 등이 있었다.
여기도 일반인을 위한 공간인데,
지하 상가는 장사가 잘 안 되는지
2016년에 갔을 때는 빈 곳이 꽤 많았고,
인터넷 검색해보니
그 빈 매장들을
BUW 도서관의 서고로 전환하려 한다는
2015년 신문기사도 발견된다.
다음에 가면
지하는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 있을수도 있을 것 같다.
BUW 서쪽
본관(gmach główny)의 입구도 유리벽인데,
그 유리벽 위쪽에는
대형 책 조형물 위에
라틴어로
HINC OMNIA (모든 것이 여기로부터)
라고 쓰여 있다.
"모든 것이 있는" 이 곳에서부터는
도서관에 등록된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도서관 카드를 카드리더에 가져다대고
화면에
녹색의 '통과' 표시가 뜨면 입장할 수 있다.
출입구 오른쪽 벽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옆얼굴 동판이 보이고
그 밑에
1999년 6월 11일 이 건물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축성을 받았다.
고 쓰여 있다.
1999년 12월 15일 이 건물이 개관되었으니,
개관 6개월 전에 축성받은 거다.
입구 앞 바닥에는
바르샤바 대학 당국의 74년 동안의 노력 끝에
1994년 대학도서관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라고 쓰여 있다.
원래는 BUW가
평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조금 짧게 문을 여는데,
7-8월
여름 휴가철에는
단축근무를 한다.
2013년과 2016년에는
이런 단축근무 공지가 도서관 앞에 붙어 있었는데,
여름 휴가철 동안
월, 화는 늦게 열고,
수, 목, 금은 일찍 문을 닫는다.
처음엔 헷갈리게
왜 이렇게 개관 시간을 다르게 하나 싶더니,
익숙해지니
별로 헷갈리지 않았다.
BUW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2017년 현재도 7월 1일부터 9월 1일까지
여는 시간이 똑같다.
언젠가 월요일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서관에 간 적이 있었는데,
문은 그 이전부터 열어두고,
딱 정각이 되면
도서관 이용자들을 들여보내기 시작한다.
그 개방시간 전 사람들은 이렇게 서 있다.
BUW 본관(Gmach główny) 앞에는
도서관 단축근무 시간 뿐 아니라,
기타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알리거나
임시휴무를 알리는 공지도 붙어있곤 했다.
BUW 본관(Gmach główny)은
원칙적으로 도서관에 등록된,
도서관 카드를 가진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데,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 BUW의 바깥 공간이
도서관 이용객 이외의 사람,
대학 바깥의 사람,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쪽 공간도
가끔씩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된다.
이런 행사가 여름에만 있는 건지
아님
다른 때도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7월마다
2번씩
BUW 본관(Gmach główny)안 작은 콘서트홀에서
무료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이것에 대해서는
BUW 본관 내부와 외부에 공지되고,
나도 그 공지를 보고
2013, 2016년에 콘서트에 갔었다.
이건 2016년 공지와 브로셔, 입장티켓,
이건 2013년 티켓과 브로셔다.
콘서트는 3층의 작은 콘서트홀에서 열리는데,
콘서트 시작 30분인가 1시간 전에
BUW 본관 앞에서 선착순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고,
콘서트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면,
콘서트 티켓을 가진 관람객이
도서관 소장 도서에 접근할 수 없는 동선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곧장 올라가
콘서트홀에 입장하게 한다.
2013년, 2016년 공연 모두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비교적 짧은 공연이지만,
관객과 연주자 모두
수준 높은 공연과 관람 태도를 보여줬다.
난 3번 가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2013년 공연이었다.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100주년 기념으로,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그리고 "봄의 제전" 파리 초연에 대한 글을
폴란드 배우가 나와서 낭독하고 난 후,
체코 출신의 연주자들이
전통 악기로
스트라빈스크의 음악을 연주한 콘서트였다.
바로 아래 사진의 왼쪽이 체코 전통 악기 연주팀,
오른쪽 중년 남성이 그 폴란드 배우다.
BUW 홈페이지에 가보니,
올해도 어김 없이 콘서트가 개최된다.
http://www.buw.uw.edu.pl/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2324
BUW를 바깥에서 들어다 볼때도 가장 눈에 띄고,
BUW 본관에 들어섰을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하늘 높이 기둥 위에 올라 있는
4명의 동상인데,
이들은 20세기 폴란드 출신 유명 철학자
Kazimierz Twardowski, Jan Łukasiewicz, Alfred Tarski, Stanisław Leśniewski 다.
이 중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타르스키(Alfred Tarski)밖에 없어,
나머지 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철학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누구도 아닌
철학자들의 동상을 세웠다는 게 매우 인상적이다.
철학,
더 나아가서는 인문학을
학문의 근간으로 여기는 태도가 반영된 것 같다.
아무튼
여기 이 기둥 넷은
도서관 밖과 도서관 안의 실제적 경계로서
기둥 모양이 무언가
그리스건축물 기둥의 고전적 인상을 부여하며
그 위의 4명의 철학자는
그냥 기둥만 서 있었다면
조금 밋밋해보일 수도 있었을 풍경의
특별한 반전 요소다.
이 출입구부터 동쪽 끝까지 계속
유리 지붕이 길게 펼쳐진다.
맑은 날엔 이렇게 파란 하늘이 보이고,
흐린 날엔 이렇게 회색 하늘도
그대로 담아내면서.
그 유리 지붕 동쪽 끝에는 열람실이 있는데,
그 열람실에 가려면
1층 정도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정면에 왕좌처럼 보이는
등받이가 높은 나무 의자가 나타나고,
그 뒤로 둥근 빈공간이 등장하는데,
위로는 BUW 옥상 정원의 유리 돔이,
아래로는 1층 서고와 열람실이 보인다.
유리 지붕 아래
중심 통로는 대체로 비어 있었는데,
2016년 여름엔 작은 전시도 펼쳐졌다.
뭔가 싶어 가보니
책 앞쪽에 새기는
Ex Libris 문장전이었다.
Ex Libris는 찾아보니
한국어로 "장서표"라고 번역되는데,
라틴어를 직역하면 "책들로부터이고"
이 뒤에 책 소장자의 이름을 붙이면
"--의 책들로부터"가 된다.
우리가 책을 사면
앞에 책 주인의 이름을 적듯이,
예전에 유럽 귀족들과 학자들은 자신의 책에
Ex Libris 표시를 했는데,
그게 발전하면서 그림과 장식으로 다양화되었다.
처음에 이 전시를 보기 시작할 때는
'정말 보기 드믈게 범생스러운 전시'라고
가볍게만 생각하고 웃었는데,
보다 보니,
괜히 혼자 설득되어
나도 멋진 그림이 들어간 Ex Libris 도장을
하나 새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충동구매를 하나보다.
다행히 여기선 나의 그런 범생스런 욕망을
상업화해주는 이가 없어서
그 충동이 구매로까지는 연결되지 않았다.
이전 포스트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난 BUW가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이니
당연히 그 대학에 소속된 사람들만
입장 가능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바르샤바 대학 사람이 아니어도,
바르샤바 주민이 아니어도,
폴란드인이 아니어도,
등록할 수가 있었다.
일정한 양식의 서류의 빈칸을 채우고
10즈워티(약 3,000원)를 내면,
2년간 유효한 출입카드를 받을 수 있다.
개별 ID와 password도 부여된다.
그걸로 BUW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고,
검색한 책을 개가식 서가에서
자유롭게 빼서 볼 수 있다.
개가식 서가에 없는
비공개 서가에 있는 책은
사서에게 신청해서 몇 시간 후에 받아볼 수도 있다.
단, 바르샤바대학 학생이나 교직원이 아닌 경우에는
책을 대출할 수가 없다.
그 안에서만 봐야한다.
내 입장에서 그건 좀 불편했지만,
소위 말하는 "먹튀"를 예방하기 위한
매우 타당한 이유를 가진
적절한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에 BUW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 검색은
이렇게 중앙통로 쪽에 있는
철제 서랍 속 오프라인 도서 카드로 하거나
도서관에 비치된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중앙통로 양쪽으로는 3층의 개가식 서가가 있는데,
분야별로 정리되어 있다.
빙글빙글 도는 철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된다.
사실 내가 찾는 자료들은 다 1층에 있었지만,
그 계단이 신기하고,
거길 오르내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괜히 윗층에 올라가보곤 했었다.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만,
2013년에는 여름 단축근무 기간동안
3층도 개방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2016년엔 2층까지만 개방되고,
3층으로 가는 통로는 폐쇄되어 있었다.
자료를 읽다가 복사를 하고 싶으면,
복사카드를 사서
복사기에 꽂고 쓰면 된다.
복사카드는
직원에게서가 아니라 자판기에서 사야 한다.
2013년엔 3즈워티(900원 정도)였는데,
BUW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아직도 가격은 동일하다.
도서 카드 자판기 옆에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쓰여 있다.
복사기 옆에는 스캐너도 있는데,
이것도 복사카드 넣고 사용하는거다.
A4 복사 한장에는 35 그로시(약 100원 정도),
스캔 한장에는 10그로시(약 30원 정도)다.
한국과 비교하면 비싸게 느껴지지만,
유럽 도서관은 대체로 복사비가 비싼 편이다.
그런데
이 복사기나 스캐너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서관 밖에 나가면
훨씬 싸게 복사해주는 곳이 많으니까,
난 처음엔
바르샤바 학생이나 교직원들은
여기서 복사 안하고
책 대출해서 밖에서 복사하나보다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사람들이 도서관 구석에서
필요한 부분을 자기 사진기로 찍는다.
워낙 그렇게들 많이 하기 때문에
다른 이용객들도 그렇고
직원들도 그걸 말리거나 금지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게 도서관 내부에서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나도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고
BUW 내부사진을 이곳저곳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BUW의 개가식 서가는 보통은 어두운데,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진다.
그러다 움직임이 없으면 또 다시 꺼진다.
개가식 서가 중간중간에 1인용 열람석이 있어서
찾은 책은 거기 앉아서 읽으면 된다.
서가 중간의 열람석도 보통은 불이 꺼져 있지만,
앉아서 위에 달린 스탠드를 켤 수 있다.
(이건 자동으로 켜지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건 내가 BUW를 좋아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인지도 모르는데,
BUW엔 이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열람석이 있고,
그 열람석이
각자 나름대로 매력이 있으면서,
다들
너무 편안하고
아늑하고
널찍하고
휴가철에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자연과 가까운 느낌에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이
어느 쪽을 봐도 나름대로 근사하다.
그래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고,
오래 앉아 있고 싶고,
거기 앉아서 그렇게 책을 읽는 게 좋고,
그래서 자주 가고 싶고 뭐 그랬다.
그래서 공부하기 전에,
공부하면서,
또 공부 마치고 나오면서,
괜히 한번씩 사진을 찍곤 했다.
우선 위 사진에 나오는 서가 중간에 있는 자리에도 여러번 앉았었고,
BUW 북쪽의 정원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 옆 개인석에도 자주 앉았었다.
이 자리의 장점은
푸른 자연 속에서 공부하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담쟁이 넝쿨이 창문에 붙어 있는 자리도 있었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유리창에 붙은 잠자리까지도 보였다.
특히 이 자리는
나뭇잎이 무성해서
마치 숲속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곤 했다.
내가 갔을 때는 항상 여름이라
냉방 때문에 꽁꽁 닫혀 있었지만,
창문 손잡이가 달린 거 보니
봄가을에는 창문을 열어둘 수도 있나보다.
그러면 냄새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도서관은 도서관 이용자가 방치한
개인 물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라는 작은 안내문도 세워져있다.
또다른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도서관 남쪽에,
한쪽 창과 지붕이 모두 유리로 된
천장이 높은 커다란 방이었는데,
이 방은 세상의 모든 빛을 다 흡수한 듯
항상 눈부시게 밝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방에서
책 복사 대신 사진 찍는 폴란드인들이 많았고,
나도 주로 여기서 그런 폴란드인을 목격했다.
이 방에 자주 갔었는데,
특히 2013년 8월엔 거의 이 방에 있다시피 했는데,
찍어 둔 사진은 하나 밖에 없다.
아마 매우 집중해서 책을 읽었나보다.
근데 이제 막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찍었는지
사진 속의 실내가 내 기억보다 훨씬 어둡다.
또다른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북동쪽의 경사진 유리 지붕이 있는 자리다.
밖에 보이는 풍경으로 추측해보았을 때
아마도 BUW의 옥상정원으로 오르내리는
그 계단 사이의 공간인 것 같다.
2013년엔 이 옆에
빈백(bean bag) 소파가 여러개 놓여 있어서,
항상 사람이 많고
좀 더 어수선한 분위기였는데,
2016년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좀 더 조용했다.
내가 이 자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경사진 유리 지붕인데,
유리 지붕을 통해
자연광을 듬뿍 받으며 앉아 있으면,
마치 자연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형적인 바르샤바 여름의
높고 푸른 하늘이 보이는
대부분의 맑은 날도 좋았지만,
언젠가 한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유리 지붕 위로 빗방울이 떨어질 때,
그 빗방울 소리와
비 내리는 풍경도
정말 근사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비내리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 있을 정도로 좋았다.
전화사용금지 표시 밑에
라틴어로
침묵(Silentium)
이라고 쓰여 있다.
BUW의 지붕은 유리로 덮힌 부분이 많고
자연광을 많이 활용하니까,
자연광이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것도
금방 티가 난다.
즉 실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바깥 날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폴란드는 한국보다 더 위도가 높은데다가
서머타임으로 여름엔 한 시간씩 앞당겨지니
여름에 한국보다 해가 더 늦게 지는데,
폴란드엔 여름에만 있던 나에게
BUW 도서관은
거의 항상 "햇살 가득"이었지만,
그래도
8월 중순쯤 되면
해가 많이 짧아져서
도서관을 나올 때는 어두컴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때의 BUW도 또 멋있었다.
BUW 인터넷 홈페이지엔 virtual tour도 있다.
사실
BUW가
바르샤바에서 가장 크거나,
가장 장서가 많은 도서관은 아니다.
바르샤바 남서쪽
폴레 모코토프스키에(Pole Mokotowskie)라는
지역에
국립 도서관(Biblioteka Narodowa)이 있는데,
이름에 걸맞게 그곳은
바르샤바뿐 아니라
폴란드에서 가장 장서가 많은 도서관이다.
"좋은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충족하는
가장 좋은 도서관인거다.
하지만
아직 난 아직 거긴 이용해보지 않았고,
그런 객관적인 기준에 상관 없이
나에게 가장 좋은 폴란드 도서관은 BUW다.
그리고 사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바르샤바에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