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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Jan 15. 2018

벨리코 터르노보는 골목골목이 다 볼거리

벨리코 터르노보 3: 매우 불가리아적이면서 매우 보편적인 아름다움


벨리코 터르노보 마지막 날.

 
아침 일찍 호텔 체크아웃하고 나왔다.

이 날 계획은
"40인 순교자 성당"이랑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Самоводска Чаршия)

라는 수공예 동네 구경하고,
그 밖의 구시가 구석구석 구경하는 거였다.
 
이제 기온이 많이 올라,
쌓인 눈이 많이 녹았다.

그래서 날은 눈이 부시도록 맑은데,
지붕에서는 계속 "비"가 쏟아졌다.
 
덕분에 난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눈, 비(?), 맑은 날씨, 흐린 날씨
다 경험하고 가게 되었다.


우선 계획대로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Самоводска Чаршия)에 들렀다.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

벨리코 터르노보 구시가에 위치하고 있다.


아래 지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한 지역인데,

지난 포스트에서 둘러본

구르코 거리(주황색선)에서 멀지 않고,

구르코 거리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 말고도

노란색으로 표시한 그 주변 지역의 골목이

다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그밖에 이전 포스트에서 둘러본 지역은

지도에서 하늘색 밑줄로 표시했다.


출처: 구글 지도. 본문의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라는 글씨를 클릭하면 구글지도로 연결된다.


불가리아어로 чаршия[차르시야]

"시장"이라는 의미고,


самоводска[사모보드스카]는 사전엔 안 나오는데,


접두사 само[사모]는 "스스로, 혼자"

어간 водя[보댜]는 "이끌다, 운영하다"를 의미한다.


아마 "자생적으로 생긴 시장"이나

"수공예자들의 시장"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불가리아인들이 영어로 쓸 때도

번역하지 않고 그냥 

"Samovodska Charshiya"라고 쓰는 걸 보면,

의미가 중요한 건 아닌가보다.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

1860-1870년대에 형성된,

이 도시의 수공업상업의 중심지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아직도 이곳은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고,

그림이나 도자기, 조각 등 예술품을 파는 곳도 많아,

기념품을 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또한 19세기 후반 불가리아 르네상스 양식

건물들 자체도 구경거리다.


그래서 "건축-민족학적 복합공간(Архитектурно-этнографиски комплекс)"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벨리코 터르노보의 주요 관광명소다.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 입구에는

벨초 봉기(Велчова завера) 기념비가 있다.


1835년 벨리코 터르노보실리스트라(Силистра)

라는 도시에서 벨초(Велчо)라는 사람이

오스만제국에 저항하는 봉기를 계획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했는데,

그때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추모비다.


멋진 탑이고 하늘도 맑았는데,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아

옆에 검은 눈이 높이 쌓인 게 좀 야속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좀 더 가면

입구에 커다란 약도도 그려져 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이 약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 자체는 별로 크지 않다.


그래서 상점 수가 많지 않고,
뭔가 아기자기하고 예쁜 게 많긴 하지만,

예술품이고 관광지다 보니,
불가리아 물가에 비하면
대체로 다 물건이 비싼 편이다.
 
사실 이 날은 비시즌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상점들이 모두 문을 열지도 않았다.
 
밖에서만 보기에 내 맘에 드는 데가
두 군데 정도 있었는데
(하나는 그릇 가게였고, 하나는 액세서리 가게)
둘 다 문이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문 열린 곳은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었고

재미있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는 생각보다 짧지만,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도시 구석구석이 다 볼거리벨리코 터르노보에선

관광지 밖도 관광지다.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에서

좀 더 올라가면

또 다른 풍경이 나온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올라가다 보니,

이제 19세기적이지 않고,

그냥 20-21세기적인 평범한 주택가가 나오는데,

거기에선 전날 다녀와서 이제 친근한

"차레베츠(Царевец, Tsarevets)"

저 멀리 보인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 전날 차레베츠 쪽에서 봤을 때

저 멀리 보이던 언덕 위

주택가가 바로 여기였던 거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거기서 남쪽으로 가면,

또 다른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런 전망뿐 아니라

19C 불가리아 르네상스 건축뿐 아니라,

그냥 20-21세기 평범한 건축물도 예쁘다.


멋진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소피아에서 봤던

2색 혹은 3색으로 그린 올록볼록한 표면이 독특한

옛스러운 그림도 여러 벽에 그려져 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소피아에서 본 "전기박스 프로젝트"도 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냥 벽에도

여기저기 발랄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기둥 위에 이렇게 특이한 부조가 새겨진 거 보면,

여긴 뭔가 사연이 있는 집일 것 같은데,

결국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냥 흔한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를 구경하고,

그 전날 못간 "40인 순교자 성당"에 갔는데,
지난 포스트에 쓴 것처럼 입장에 실패했다.



그래서 그 주변 얀트라 강변을 거닐며,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이날은 날씨가 맑아,

태양빛을 흠뻑 머금은 얀트라 강은

그 빛을 다시 반사하며,

또 신비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차레베츠 서쪽 얀트라강 위엔

다리가 두 개 있는데,

남쪽의 차가 다닐 수 있는 석조다리는

딱히 이름이 없다.


구글지도엔 이름이 아예 안 나오고,

신문기사에선 "성 40인 순교자" 옆 다리

(мост до „Св. 40 мъченици“)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만약 그게 이름이라면

이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좀 더 북쪽에 있는 다리는 나무다리,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상판이 나무인 다리다.


첫눈엔 그냥 허름한 다리 같아 보였는데,

불가리아 사람들에겐 이게 더 중요한 다리다.


블라디슈키 다리(Владишкият мост)라는

이름도 있다.


자그마치 1774년에 지어진,

250살이 다 되어가는 다리인데,

아마도 그 옆에 이름 없는 석조다리가 생기기 전엔

차레베츠(Царевец)트라페지차(Трапезица)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고,


또 주변에

성모탄생 성당(храм "Успение Богородично"),

성 게오르기 성당(храм "Свети Георги"),

성 드미트리우스 성당(храм "Свети Димитър")

등이 있기도 해서,

종교적으로, 관광산업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걸 알고 보니,
투박한 이 나무다리가 괜히 "있어보인다".


그리고 나무라 그런지,
계속 볼수록,

지나다녀 볼수록 정감 있다.
 
그 위를 걷는 느낌도 좋고.
그리고 거기서 보는 풍경도 좋다.


나무다리라
여름에 오면
거기 앉아서 바람에 더위를 식혀도 좋을 것 같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래서 그 다리 위를 한참을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구시가로, 수공예 거리로 향하는데,
그 전날 구경했던 차레베츠 밑에

무슨 통로가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 전날은 그냥 거기에

 
"버스"라고 쓰여 있고,

화살표가 --> 이렇게 있어서,

'버스 주차장인가',
'이 좁은 데를 버스가 어떻게 지나가나'

하며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보니
그냥 버스가 들어가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곳은 다른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좀 더 내려가니,
 
그 전날

차레베츠 남동쪽의 탑에 올랐을 때 보면서,


'저기도 마을이 있네.
저기는 어떻게 가지?'


생각했던 곳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다.
 
아, 이것이 바로 여행의 매력.
 
잘 모르는 곳으로 갔는데
그 곳에 길이 있고
신세계(?)가 펼쳐졌다.


우선 눈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넜는데,

거기서 본 얀트라 강의 풍경이 예술이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원래는 그냥 흘끗 보고 구시가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 다리에서 멋진 풍경을 보니,

왠지 이 동네에 뭔가 다른 게 숨겨져 있을 것 같다

생각이 들며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리고 날씨도 좋고,

하늘도 맑고 푸르러

자꾸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는 스베타 고라(Света гора),

즉, "성스러운 산"이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아래 지도에서 붉은 색 테두리로 표시된 지역이다.

지도의 파란네모가 차레베츠,

녹색네모가 구시가니,

주요 관광지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구글지도)


처음엔 그냥 주택가가 눈에 들어오더니,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가다보니

성삼위 성당(църква Св. Троица“)이 나온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성삼위 성당 너머로 멀리

차레베츠의 대주교 대성당이 보인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리고 점점 더 올라가니,

"벨리코 터르노보에서는 흔히 그렇듯이",

"또"

 멋진 도시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렇게 가다보니

언덕 위에 무슨 거대한 동상이 보이길래,
거기까지 올라갔고,


가서 보니 거기는
"벨리코 터르노보 대학(Великотърновски университет "Св. св. Кирил и Методий, Veliko Tarnovo University")이었다.
 
멀리서 볼 때,

손을 들고 있는 저 동상은 뭐지 생각했던 그건

성 에프티미(Св. Евтимий)

제2불가리아 왕국의

마지막 불가리아 정교회 대주교였으며,

터르노보 인문 학파(Търновската книжовна школа, Tarnovo literary school)를 만들어

불가리아 문화도 진흥한,

불가리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주교라고 한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리고 그 옆에는

9C 슬라브어를 위한 문자를 만들었던

키릴메토디우스 형제의 동상도 있었다.


벨리코 터르노보 대학의 정식 명칭이

"성 키릴, 메토디우스 벨리코 터르노보 대학"

이기도 하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벨리코 터르노보는 어디를 가나 그렇긴 하지만,

높은 데라서 전망이 엄청 좋다.
 
순간적으로
 
'만약 내가 여기 이런 줄 일찍 알았으면
소피아 말고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불가리아어 연수 했을텐데...'
 
생각을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근데 여기 있었으면 공부는 못했겠다.'
 
생각이 들면서
 
그 "만약에"를 미련 없이 접었다.

그리고 이제 오던 길 말고

안 가본 길로,
얀트라 강이 흐르는 그 길을 따라

가던 길로 계속 걸어갔다.

이건 대학 입구.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이건 대학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던

찻길의 난간인데,

자세히 보니 돌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렇게 계속 가다보니,

눈 앞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전날 갔던 그 옛 수도원 입구 계단

동쪽 옆에 도착했고,
곧 눈 앞에 아센왕조 동상
미술관 건물이 나타났다.
 


아~~ 이렇게 또 연결되는구나.~~


새롭고 놀라우면서 기분 좋은 발견.


마치 오랫동안 끙끙 앓던 수학문제를 푼 것 같은,

뭔가 마지막 퍼즐을 맞춰넣은 것 같은 느낌에,

누군가 아는 사람에게

이 길을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싶다.


그리고 마치 이제 내가

벨리코 터르노보를 다 알게 된 것 같다.


이제 누군가 아는 사람이 오면

자신 있게 가이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여러번 봐서 반갑지만,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얀트라 강변 풍경을 또 한참동안 카메라에 담고,

구시가로 갔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이제 특별히 급하게 해야 할 것은 없으니,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야" 입구의

전망 좋은 카페에 들어갔다.
 
근데 그 날은 햇살은 눈부신데다,

또 일요일이니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바깥 테라스에는 

자리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어두운 실내로 들어가
커피와 케잌을 주문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메뉴판에 케잌이 300g이라고 써 있었는데
무게가 좀 무거운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얼마나 큰 건지 모르겠어서

그냥 주문했더니,

엄청난 크기의 케잌이 등장했다.
 

사진에서 그 크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조각케잌치곤 크기도 정말 크고,

맛도 처음 한 입을 베어물자,

세상의 모든 단맛을 담은 듯,

눈물 나올만큼, 안도의 탄식이 나올만큼 달콤했다.


워낙 크다 보니
먹다가 중간에

단맛에 질리는 지점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래도 뭐 좋았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불가리아에선 카페에서 커피 줄 때

Lavazza에서 나온 쪽지를 하나 돌돌 말아

곁들여 주는데,
거긴 뭔가 명언이 적혀 있기도 하고,
웃긴 농담도 적혀 있기도 하고,

그냥 단어가 하나씩 적혀 있기도 하다.


근데 이 날은 그 쪽지에
"luck / Щастие"라고 적혀 있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근데 정말 그 순간

그 말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듯,
나도 모르게 내가 환하게 웃고 있는 걸 느꼈다.


계속 좋은 풍경 보고,

눈부신 햇살에,

달콤한 케잌에,

익명의 덕담까지,

뭐 더 바랄 게 없는 순간이었다.



 
아직 소피아행 버스 출발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옆에 있는 수공예 상점들을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다들 예쁘긴 한데,

마땅히 선물로 살만한 걸 못 발견하고
그냥 소피아에 가야되나 하고 있을 무렵,
 
한 상점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나와서
들어와서 구경하고 가라고 불렀다.
 
벨리코 터르노보 2박 3일동안 있으면서,

그리고 소피아에 6-7주 있으면서,

이런 적극적 호객행위는 만난 적이 없는데,
그리고 난 워낙 그런 거에 끌려 들어가지 않는데,
그 날은 그냥 나도 모르게

그분을 따라 상점에 들어갔다.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하며
얼마인지까지 덧붙이는데
딱히 뭐 사고 싶은게 없다.
 
그러던 차에 마침 불가리아 로즈 에센스가 있길래
그걸 몇 개 샀다.
 
그런 건 아마 소피아에도 있겠지만,
아주머니가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셔서,
아무것도 안 사고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더러 뭐하냐 뭐 물어봐서
여기서 불가리아어 공부한다고

불가리아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아주머니는 더 밝아진 얼굴로

반갑게 이것저것 얘기하더니,

나중에는

저런 그릇 한국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자기가 만든 듯한 접시를 사라고

은근히 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첫눈에 확 "예쁘다" 싶진 않은 소박한 문양이라

한국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그릇 디자인

같지 않았는데 말이다.
 
62살이라고 하셨는데,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젊고 예쁜 아주머니는
(수술이나 그런 것의 혜택은 아닌 듯

자연스러운 주름이 얼굴에 자리잡고 있다)
정말 이 동네에서 보기 드문 영업을 하고 있다.

구르코 거리에 집도 있다고 하더니,

이런 사업 수완 덕분이었나 보다.
 
나더러 지금 시즌이 아니라서
특별히 가격 깎아준 거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다른 가게에서도

아주머니가 나한테 판 그 가격에 팔고 있었다.

그렇게 기념품을 얼떨결에 사고 나오다 보니

다른 상점에
벨리코 터르노보 풍경이 담긴 자석이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게 예쁘길래 몇 개 집어서
계산해달라고 가게 안에 들어 갔는데
이번에는 나이 많은 아저씨가 주인이다.
 
그 안에 같은 그림이 담긴 엽서도 있는데
자석보다는 엽서가 더 나을 것 같아
자석을 버리고 엽서를 사기로 했다.

가격도 거의 비슷했다.
 
그 엽서의 그림은 그 아저씨가 직접 그린 거란다.
그러고보니 그 안에 다른 그림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도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 묻고,
자기 친구 중에 일본애들 몇 명 있다면서
이름을 읊는데
다들 여자이름이다.
 
그러면서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가 대답하면
호탕하게 웃으면서

내 볼을 꼬집는다.

마치 꼬마한테 하듯이.
 
처음에 그 아저씨 손이 내 볼 쪽으로 올 때는
내 볼에 뭐가 묻었나 했었다.
 
순간 이게 뭐지 싶긴 했는데,
그 밝고 좋은 에너지로 가득한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가 선의로 그러는 거 같아서,
그리고
눈이 나쁘셔서

내가 많이 어리다고 생각한 거 같기도 해서,
그냥 기분 좋게 그 괴이한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더군다나 아저씨가
거기서 산 엽서에다가

선물이라며 한 장을 덤으로 더 얹어주기도 했다.

 
이게 그 라바짜 쪽지가 말한 "Luck"인가?
 
나도 기분 좋아서,
만화 속 캐릭터처럼 생긴 아저씨에게

사진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흥쾌히 좋다고 하시며

손으로 V자까지 해주셔서

아저씨 사진까지 한 장 찍어왔다.


그리고 그 때 거기서 산 작은 기념품들

나중에 한국에 와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나눠주니,

다들 좋아했다.


그 때 그 예술가 아주머니, 아저씨

다들 지금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나 모르겠다.



 
이제 마지막으로
구르코 거리를 거닐면서
얀트라 강
예쁜 집들을 보기로 했다.


이렇게 괜찮은 벨리코 터르노보가

왜 한국에는 안 알려졌을까 생각하며 걷는데,

눈앞에 갑자기 예상치못한 한국어가 등장했다.


"민""박"이라는 두 글자다.


이런!

벌써 한국인이 하는

혹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민박집도 있나보다.


시간이 좀만 많았으면,

들어가서 어떤 사연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그러고는 계속

구르코 거리를 걸어가는데,

떠날 때가 되니,

이 길이 더 예쁘다.


그렇지 않아도 가기 싫은데,

발길이 더 떨어지질 않는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터미널이 구시가에서 아주 가까와서,

그렇게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터미널에 도착했다.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2014년 2월, Veliko Tarnovo, Bulgaria)


버스는 예정된 시간대로 6시 20분에 출발했고,
소피아에 9시 30분에 도착했다.




불가리아 민족시인 이반 바조프(Иван Вазов)가 

벨리코 터르노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단다.


"И като гледам този невероятен, невъзможен град, аз мисля, че пред мен стои видение, сън, измама на очите. (내가 이 믿을 수 없는, 도저히 가능할 수 없는 이 도시를 볼 때면, 나는 내 앞에 환상이, 꿈이, 환각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나도 사실 그랬었다.


처음에는 한눈에 들어오는

벨리코 터르노보의 아름다운 모습이,


다음엔 세세한 부분부분이,


그니까

차레베츠의 거대한 규모,

서울의 길게 뻗은 강과 뾰족뾰족 산과 달리,

구비구비 흐르는 얀트라 강과

완만한 산이 조화를 이룬

이국적이면서도 또 친근한 자연,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오밀조밀 예쁜 골목골목이,


그리고 나중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알게 해준,

믿을 수 없이 좋은 나의 운이


진짜같지 않고,

왠지 꿈만 같이 황홀했다.


그 때는 그 카페 쪽지의 위력인지,

내가 운이 너무 좋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뭐 그렇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행중 계속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중에 보니

내 기억 속에 담긴 그 때의 난

운이 무지 좋기만 한 사람이었다.


어쩜

내가 뭔가 생각지도 못한 삽질을 하고,

계획했던 걸 끝내 하지 못했어도,

벨리코 터르노보라는 낯선 도시에 가보고,

그걸 보고,

그걸 경험한 것만으로 운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여기 다녀와서는

이 좋은 데를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생각했는데,


여행 다녀오자마자

페이스북에 사진 몇개 올리다가

바빠서 그만두고 말았고,

언젠가 블로그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그것도 오랫동안 시작 못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 좋은 데를

아직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다음에 갔을 때,

"그 때 그 벨리코 터르노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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