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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Sep 03. 2021

솔직히 우리 아빤 고집이 세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아빠 설득하기

<아빠의 독립>은 영원할 것만 같은 뜨거운 감자다. 어제저녁 식사를 하면서 또다시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우리는 잠정적으로 합의를 본 상황이었지만 내 마음엔 여전히 아빠의 독립을 수긍하기엔 걸리는 부분이 있다.


<합의내용>

독립을 존중하되 일산만 고집하지 않고 내 직장에 따라 이사하는 곳의 지근거리에 집을 얻어 생활할 것


<내 마음에 걸리는 부분>

아빠 밥은 어떻게 하려고?


아빠는 주방 살림에 문외한이라 간단한 찌개도 끓일 줄 모를뿐더러 배달 국이 있어도 차려먹지 않고 컵라면을 먹는다. 컵라면을 일주일에 주 7일 아침식사로 먹다가 함바집으로 방향을 튼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남편과 내가 외출하느라 집에서 밥을 안 챙기면 그날은 또 라면을 먹은 흔적이 있다. 지겹지도 않은지 편의점에서나 한 번씩 먹을 컵라면에 계란 한 알을 넣어서 늘 먹는 것이다. 아침마다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기 때문에 염분 있는 음식이 당겨 그렇다는 핑계를 대지만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젊은 사람도 컵라면만 먹다가는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저렇게 끼니마다 컵라면을 고집하니 내 속이 안 터질 수가. 식사에 워낙 진심이라 나에게 같이 사는 조건으로 찌개 다섯 가지 밑반찬 다섯 가지를 해내면 더 말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선 내가 막상 해내니 또 말을 바꾼다. 음식은 독립하면 몽땅 사 먹겠다는데 아침은 그렇다 치고 하루 두 끼라고 해도 매일 사 먹으면 그 음식을 어디 가서 먹을 것이며 얼마나 물리겠는가.


어제는 아빠에게 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서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들어 설득했다.


"아빠, 따로 살면 정수기 값, 인터넷 값, 관리비며 오만 잡다한거 다 이중으로 들잖아. 지금은 아빠가 전세자금 대출이자만 대고 월세준 우리 집에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하니 서로 돈 안 들고 얼마나 좋아?"


현실적인 돈 얘기를 앞세워 합리적인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니 약간, 아빠 마음이 움직였는지


"서로 윈윈이라는 얘기지?" 수긍하는 반응을 보인다.


내가 보기엔 아빠도 막상 독립을 갈망하면서도 두려운 점도 있는 것 같다. 친구가 많으니 자주 지금처럼 놀러 나갈 것이라 심심한 게 걱정되지는 않는데 당장 밥을 어찌 먹을지 고민스러워 보인다. 또한 엄마가 죽고 간신히 이제 평상 생활을 찾아가는데 또 이사를 하면서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너랑 같이 사는 거 불편해. 팬티만 입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맨날 어디냐 뭐하냐 전화해줘야 하고."


"아빠, 우리가 같이 살면 일단 경제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아빠가 막걸리 마실 때 나라도 있어야 김치전이라도 부쳐주지."


끄덕끄덕. 한참을 말이 없다가,


"너 전직한다며. 학교 합격하면 광명으로 이사 가야지. "


"그건 합격하고 나서의 일이잖아. 광명으로 같이 이사 가면 나는 통학할 수 있고 너무 좋지. "


"그럼 모든 것은 상황이 닥치면 그때 제일 현명한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그러면 되지?"


"응. 알았어."


나는 아빠랑 같이 살면서 좋은 점이 더 많다. 남편은 가끔씩 둘만이 보내던 시간들이 그리울 때도 있다고 하지만 아빠 곁에 있어서 안심을 찾는 나를 보며 회사 출근을 해도 불안하지 않다고 한다. 아빠가 있음으로써 부지런하게 살림도 하고 집에 혼자 있는 심난함을 느끼지 않는 것도 좋다.  매 끼니 밥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보다 아빠와 함께 있으면서 오늘 하루 아빠 컨디션이 어떤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더 감사하고 기쁘다. 아빠는 한편으로는 혼자 살면 누릴 수 있는 약간의 자유함과 사생활을 갈망하는 것 같지만 나랑 살면서 생활의 흐트러짐 없이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장점이 있다.


우리의 대화 <아빠의 독립>은 앞으로도 수도 없이 반복될 것 같다. 이미 수도 없이 반복해 왔지만 앞으로 이 집의 전세계약이 만료가 되고 내가 복직을 하는 과정 속에서 가족 개인이 느끼는 편의와 불편이 있을 것이고 그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바뀌어 끝없이 이 대화를 계속해 나가게 될 것 같다.


아빠를 조금 설득하긴 했지만 우리 아빤 솔직히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다. 언제 다시 "나 불편해"를 외치며 나와 대화인지 사투인지 모를 치열한 토론회를 거칠지 모른다. 그래도 내 입장은 똑같다.

아빠, 웬만하면 그냥 지금처럼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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