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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Sep 27. 2021

네 동생을 사랑해라

아빠가 나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것

"만두 좀 쪄주라. 오늘 막걸리 한잔 하게."


아빠는 오늘도 술이다. 나름의 규칙이 있어서 하루 걸러 하루 마시는 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고집 센 아빠를 말려봐야 부실한 안주를 꺼내서 어쨌든 마실 것이기 때문에 토 달지 않고 비비고 진한 고기만두 한봉을 몽땅 쪘다. 아빠가 술을 마실 때 턱받이에 앉아있으면 아빠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빠는 비비고 만두 한봉을 다 먹고 안주가 부족해지자 참치캔을 땄다. 남동생이 얼마 전에 PX에서 공수해온 것이다. 아빠는 참치캔을 따면서


"아들이 사 온 거니까 한번 먹어봐야지."  


뭔가 애틋한 말투로 말했다.


"아빠랑 같이 살고 밥 차려주고 챙겨주는 건 난데 아빠는 왜 맨날 아들은 안쓰럽고 나한테는 따뜻하게 말하지 않는 거야? 나 섭섭해."


아빠는 이상하게 나에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남동생에 대해서는 가엽고 안타깝게 여기는 듯이 말하는 경향이 있다.


"네 동생은 오랫동안 군생활을 해서 단순해. 걔 말투가 메시지 할 때랑 만날 때가 다르지. 군생활에 최적화돼있는 놈이야. 고생해서 번 돈으로 사 온 거 보면 비록 몇백 원짜리 참치캔이지만 몇만 원의 가치가 있는 거야."


참치캔 하나에 이렇게 감성적인 생각을 하다니. 아빠는 남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가 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나는 딸인데 나의 노력도 예쁘게 봐주지.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살자니까.


"아빠가 죽으면 세상에 너네 둘 뿐이야. 인연이 그렇게 된다는 건 로또 맞을 확률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야. 걔가 단순하고 말투도 투박할지 몰라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네가 걔하고 싸우지 말고 많이 도와줘. 누나 기도 하고 걔는 지금 고민이 많을 때인데 잘 모르는 게 많아 항상 걱정이니까."


아빠는 내 동생에 대해서 세상에 믿을 건 나밖에 없는 듯이 부탁하고 당부했다. 남동생과 싸우지 말고 무조건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몇 번이나 거듭하며.


"아빠, 그 얘기는 왜 나한테만 하는 거야? 나는 걔가 지 부하직원한테 말하듯이 이래라저래라 말하면 정말이지 화가 치밀어."


아빠는 말했다.


"세상에 걔가 말투가 좀 그런 건 나도 인정해. 그런데 걔가 마음이 그런 건 아니라니까. 네가 좀 거슬려도 넌 좀 더 걔보다 똑똑하고 배운 게 많으니까 항상 도와줘야 한다."


나의 부모님은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늘 내게 남동생을 가엽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에게는 논리와 상식으로 얘기하면서 남동생에 대해서는 늘 뭐가 그렇게 안타깝고 애틋한지. 그런 아빠 엄마의 말이 항상 납득이 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나와 너무 다른 남동생한테 가끔 열 받고 자주 짜증을 낸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 말처럼 남동생을 내가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엄마가 죽었을 때 장례식 장에 들어선 나를 말없이 안아주던 남동생은 든든했고 따뜻했다. 그때 알았다. 엄마 아빠 죽으면 너네 둘 뿐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른 집 부모님들도 남매간의 우애를 우리 집처럼 강조하는지는 모르겠다. 내 부모님처럼 남동생을 늘 도와주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교육시키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남동생은 서로 시행착오가 참 많다. 그래도 아빠가 막걸리 두 병을 걸치고 신신당부를 하는 마당에 나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남동생을 이해하고 받아줘야 할 것 같다. 아빠가 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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