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성큼 막다른 끝으로 다가서는 서늘함이다. 피사계 심도를 높일 수 있는 만큼 높여도 다다르는 2차원 스크린의 한계 처럼.이런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한 상념도 잠깐, 다가올 얼어붙은 겨울에 대비할 때가 온다. 수확의 시기에 우리는 모두 겨울을 날 양식을 늦기전에 거두기 위해 분주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순간 애써도 지나간 계절들에 대한 정산, 초라해지는 수확을 피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술렁이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는 수 밖에 없었다. 낮이었고 인도 위에는 가로수에서 떨어진 노란 낙엽이 흩어져 있었다. 방금 서점에서 산 책을 옆구리에 끼고 목적지 없이 걸었다. 어딘가 허전했지만 책을 뒤적일 마음은 들지 않았다.그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낙엽진 길을 한 장면으로 배경음악처럼 한 선율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기억 어딘가에서 턴 테이블 위의 레코드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어느새 내 몸이 시공의 블랙홀 속에 빨려가면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드럼 세탁기 안의 빨랫감의 심정이 이런가.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나의 마음은 시공을 무수히 가로질러 하얗게 빨아진다.하얀 마음. 그 위로 바람이 불어 붉고 노란 낙엽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