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마주할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혼자 고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저절로 남들과 교섭할 필요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사람은 모두 닳고 닳은 거짓말쟁이라고 단정해버리고 처음부터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도 않고 마음도 주지 않으며 그 이면에 숨어있을 듯한 반대의의미를 가슴에 새긴채 그것으로 자신을 현명한 사람으로 여기며 거기에 만족과 마음의 안주를 찾아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사람은 자칫 오해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무서운 과실을 범할 각오를 처음부터 가정하고 덤벼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을 한결 같이 악인이라고, 또 한결 같이 선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 태도도 상대방에 따라 여러가지로 변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상대방에게 딱 들어맞아 한치의 틀림도 없는 미묘하고 특수한 선위를 무난하게 걷고 있는 것일까. 내 큰 의문은 항상 거기에 뒤엉킨다.
......지금의 나는 바보라서 사람들에게 속거나, 혹은 의심이 많아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 두가지 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투명하고 불유쾌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 만일 이것이 평생 계속 된다면 인간이란 얼마나 불가해한 존재들일까."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김정숙 역. 문학의 숲,2008 p122-p126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 사람과 마주하는 일은 고민과 사건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만도 마냥 나쁘다고 할 수 만도 없다. 다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보통의 또래보다 에너지가 많이드는 피곤한 일이구나 싶다. 내향인이라면 이 구절에 더욱 공감하지 않을까. 과하다 싶게 생각이 많다보니 한길 사람 속이 더욱 아리송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 사람을 볼때 서둘러 무엇이 옳바른가를 두고 그사람을 평가하기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를 먼저 아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은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물론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을 더 깊이 사귈때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나' 자신과 사귀는데도 도움이 된다. 자신의 '열등감'과 '방어기제'를 이해한다면 '나의 믿음'과 '상대의 믿음'의 관계를 잘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슴한 오후 유리문 뒤에 앉아 소세키의 에세이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