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pr 23. 2024

그림자 지우개


“죽기 전, 나의 흔적을 정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흔적을 남기고, 또 어떤 흔적을 지우시겠습니까?“ 


삶을 마무리 하기 전, 죽은 후에도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은 이들은 악어빌딩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딜리터라 불리는 탐정 구동치를 만나죠.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


의뢰인은 구동치를 만나 누구에게도 꺼내 놓지 않은 자신의 비밀을, 그래서 자신이 죽은 후에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비밀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이건 어디서건 찾아볼 수 없도록 지워달라 의뢰하죠. 


의뢰를 받으면 구동치는 움직입니다. 의뢰인과 자신만이 아는 비밀을 안고서. 그리고 비밀의 흔적을 하나씩, 또 성실히 지워냅니다. 그렇게 한 건의 의뢰를 해결한 구동치는 궁금해졌습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죽은 후의 일까지 이토록 신경쓰는 것일까? 왜 조금의 그림자도 허락지 않고, 빛을 껴안으려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구동치는 스스로 답해봅니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림자를 지우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삶이 끓는 온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