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Sep 27. 2024

【소설】그랜드바자르 #9. 용기

 9. 

 람바 할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바람 소리가 거칠게 울리는 새벽 밤. 호롱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 스탄도 아직은 없던 그 시절. 베야는 할아버지 없이 홀로 밤을 보내는것이 두려워 그 날을 몹시도 무서워했다. 그래서 그날이면 잠들지 않으려 기를 썼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낮잠을 길게 자두었음에도 그날만 되면 잠이 쏟아졌다. 그래서 그 새벽. 베야는 람바 할아버지가 나서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잠들었다. 가게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호롱을 베야에게 건네며, 깨끗이 닦아 두라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중요한 호롱을 왜 어린 베야에게 아무렇지 않게 맡길 수 있었던 걸까? 그 질문의 답을 베야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호롱은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베야는 '닫힌 문'따위 관심도 없었고, 가게 밖을 나서는 것조차 귀찮다는 변명 아래 두려운 마음을 감추곤 했다. 람바 할아버지는 베야가 겁쟁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듣기라도 한듯이. 

 덕분에 베야는 호롱이 있는 곳을 잘 알고 있었고, 람바 할아버지가 호롱을 쓰지 않는 날도 알고 있었다. 램프 가게의 지하실. 베야는 그곳으로 내려갔다. 호롱은 역시나 같은 곳에 있었다. 호롱 주변에는 값비싼 장식이 된 램프가 가득 매달려 있었다. 행여나 도둑이 들더라도 초라한 호롱을 들 손은 없었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람바 할아버지가 세운 일종의 방어 작전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작전은 잘 통하는 편이었다.

 베야는 호롱이 든 장식장을 열었다. 팔뚝정도 크기의 호롱은 딱히 무겁지 않았다. 심지어 밝지도 않았다. 이정도 불빛이라면 세 걸음 앞 정도만 겨우 비출 것이었다. 그럼에도 베야는 작은 천을 호롱에 둘렀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비록 스탄이라 할지라도.


 "용기가 생긴 건가요?"


 지하실을 올라 문을 열었다. 그 앞에 휠체어를 탄 스탄이 있었다. 분명 잠들었을 시간인데. 어떻게 된 거지? 그보다 먼저, 스탄의 첫 질문이 이상했다. "뭐하는 거야?" 라든지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하는 거야?"가 아니었다.


 "왜 아직도 안 자고."


 베야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지하실 계단을 올라 문을 닫았다. 스탄은 자신을 지나치는 베야를 가만히 쳐다만 봤다. 베야가 창고 바깥 문에 도착할때까지도 스탄은 같은 자세였다.


 "자러 가자."


 베야가 말했다.


 "같이 잘 거에요?"


 스탄이 물었다.


 "... 아니. 오늘은 잠들지 않을려고."


 "꿈꾸고 싶지 않아서요?"


 스탄의 질문에 베야는 지난 꿈을 복기했다. 그리고 답했다.


 "꿈만 꾸고 지낼 수는 없으니까. 어서 침대로 가자."


 베야는 스탄이 나갈 수 있게 문을 잡아 두었다. 하지만 스탄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못들었어요."


 "뭘?" 


 "질문의 답을."


 스탄은 처음에 용기가 생긴 것이냐고 물었다. 베야가 말했다. 


 "스탄. 난 모르는 게 무서워. 그래서 피하고 싶은 것뿐이야. 용기 같은 건. 없어."


 베야는 문을 닫았다.


-계속

이전 08화 【소설】 그랜드바자르 #8. 이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