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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Oct 23. 2018

내가 뭘 잘 하는데요?

남을 의식하는 나

저번에 선생님께서 잘 하는 거 생각해 오라고 하셨잖아요. 잘 하는 걸 생각해봤는데요. 얼마나 잘 해야 잘 한다고 할 수 있어요? 잘 하는 건 무척 주관적인 기준이잖아요. 저는 내가 그 공간에서 가장 잘하거나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내가 특출난 부분이 있으면 잘 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게 잘한 걸 찾으라면 그리고 그게 즐거운지 찾자면 거의 찾기 어려운 거 같아요. 그런데 주변을 보면 아주 쪼끔 잘했는데도 많이 잘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도 그사람들 기준이라면 잘 하는 게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조금 잘한 건데도 잘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내가 잘 하는 걸 찾아오라는 건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어떤 시기엔 그런게 명확했다. 성적, 학점, 등수 등 쉽게 비교할 수 있고 눈에 훤히 보였다. 내가 얼만큼 더 올라가야 하는지 목표도 분명했다. 물론 직장에서도 그런 성과표가 있고 줄세우기는 존재한다. 그러나 어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그 줄세우기가 공정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경쟁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도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언제나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어느정도 위치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나 말고도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이런 제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30살에 이정도 모으면 잘 모은 건가요?

보통 결혼준비자금은 얼마나 해가나요?

5년차에 연봉은 어느 정도가 평균인가요?

소개팅을 해주려는데 둘이 잘 맞는 조건일까요?

ㅇㅇ기업 다닌다고 하면 이미지가 어때요?

이정도 키에 이정도 몸무게면 날씬할까요?

제 나이에 이정도 차를 몰기엔 좀 그런가요?

결혼할 때 전세로 몇평정도 구해가나요?

부모님 생신 때 용돈은 얼마나 드리시나요?

취업은 보통 몇 살에 하나요?


내가 이런 화제에 관심이 있어서 더 잘 보이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이런 질문들이 수없이 쏟아져 내려온다. 그걸 아는 이유는 내가 이런 글이 올라올 때마다 클릭을 해서 확인하기 때문일 거다. 글쓴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어떤지, 댓글들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를 사람들이 평균으로 부르는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그 기준이 나보다 높으면 나 자신을 탓했고 나보다 낮으면 안심하는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 심지어 글이 올라올 때마다 그 기준이 변화하는 데도.


오래 전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가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등급표의 기준이 적절한지, 사람을 그렇게 등급을 놓고 봐도 되는지 여러 가지 문제를 차치해보자. 내가 어느 정도 등급이 되는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온 인터넷 공간을 휩쓸며 돌아다니진 않았을 거다. 나 또한 나의 위치를 궁금해 했다. 나의 낮은 사회적 위치에 실망하기도 했고 그래도 이정도면 낫지 합리화도 해봤다. 해본 사람들은 알테지만 못내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자기계발 서적을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런 류의 책은 내 마음 속 어떤 부분을 자극하고 화가 나는 버튼을 누른다. “너 이대로 살면 남들보다 뒤쳐질 거야. 좀 남들과 다르게 더 얻어보고 싶지 않니? 내가 말하는 대로 잘 따라하면 나중에 남들보다 훨씬 나아질 걸?”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지금 충분히 힘들게 사는 나를 어디까지 더 궁지에 몰아야 하나 의문이 든다. 글에 나온 논리대로라면 나의 인생 많은 부분을 갈아 넣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걸 안 하면 나는 남들이 얻는 걸 못 얻고 뒤쳐지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나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책들은 어느 순간 의식적으로 멀어지게 두곤 한다.


하지만 그런 책들을 뿌리치진 못해서 읽어볼 때면그리고 그 책이 원하는대로 나를 굴리고 보면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나는 이렇게 살 수 없는데 대체 누가 저렇게 자신을 갈아넣고 사는 걸까? 개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과 불공평한 부분이 왜 늘 개인의 노력으로 채워져야 할까?




내가 나에게 만족이 안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나는 잘 하지 못해왔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스스로 항상 부정해왔지만, 나는 남을 굉장히 의식하는 사람이었단 걸 깨달았다. 상담을 하며 나는 늘 내가 1등이 되어야만 잘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겨왔단 걸 알게 됐다. 심지어 1등을 해도 그건 그리 만족스럽지 않단 것도. 선생님께서 “어느 정도가 되면 잘 했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하셨다. 난 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다.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나는 늘 자신을 뒤로 보냈다. 잘 하는 것보다 부족한 것을 채워야 했다. 내가 즐거운 것보다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것들을 했다. 힘들고 고되도 지금을 포기하면 더 나은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들은 그러면 지금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노력해서 얻은 직업은 사실 내가 바라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꿈이었다. 노력해서 가지게 된 돈은 모으기도 무척 힘들었다. 많은 부분을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남들에게 괜찮아 보이기 위해 썼다. 모아놓은 돈은 남들과 비교하기에 늘 적은 액수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엔 아까운 순간들이 많았다. 모임이나 취미생활도 능력이 부족해보여서, 내가 부족해 보여서 시작했다. 그렇게 내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시도는 늘 끝이 안 좋았다. 몸이 좋지 않아 아프기도 자주 아팠고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만두기 일쑤였다. 남을 의식해서 한 행동은 결국 남의 기대도 채우지 못하고 나의 기대도 채우지 못했다. 고통만 있던 건 아니었지만 늘 마음 한쪽이 불편한 행동들이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감정일기를 써볼 것을 권했다. 의식적으로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일”인지 구분하고 나에게 물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의 만족이나 내가 얼만큼 잘 했는지는 남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보라고도 했다. 감정일기를 쓸 때는 그 상황에서 나의 기분은 어땠는지,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써보라고 했다. 그때 주의할 것은 내가 가진 감정이나 그 때의 선택들을 비난하지 말고 인정해 보라는 거였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만족하지 못해야 내가 발전하는 건데 그럼 발전을 그만두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시시때때로 나를 험하게 다루는 나 자신에 놀랐다. 남이 나를 칭찬해주는 것 만큼 나를 칭찬해준 적이 없어서.


사실 나는 상담실을 가면서 “ㅇㅇ만큼 하면 잘 했다고 만족해도 돼요.”의 답을 원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무척 실망했다. 그것조차 나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니. 하지만 결국 그런 마음조차 내가 아닌 남에게 판단 기준을 원하는 거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그런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가 나를 칭찬할 때면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도 못 한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도 속으로는 ‘왜 저 사람은 별것도 아닌 걸로 칭찬할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결국 그냥 기분 좋은 소리 하려고 그랬나보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건 좀 오글거린다. 그래도 어쨌든 한다고는 대답했으니 하기로 한다. 결과가 어떨진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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