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글을 읽고 있나요?
나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에게는 애인이 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그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일상 곳곳에 스며있는 사람이기에 어떤 이야기는 그와의 일상을 포함하지 않고는 쓰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의 이야기를 공개된 공간에서 쓸 때면, 슬며시 그의 눈치를 보곤 한다. 그가 이 브런치를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기 때문일까? 내가 그의 옆에서 핸드폰을 보는 척 하며 슬며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가 글을 늘 읽고 있겠지. 라는 마음을 한 켠에 두고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면 유난히도 조심스럽다.
언젠가는 애인에게 가만가만 물어본 적이 있다.
"자기, 혹시 내 글 읽고 있어?"
"아니."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할 때면 그의 눈빛과 입술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곤 한다. 언젠가 내가 그에게 내 브런치 주소를 알려주었고 너무 민망해서 "읽어도 돼. 하지만 읽은 걸 티 내지 말아줘."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 때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켜보려는 건가? 하지만 다 들켰어. 그렇게 온 얼굴로 "응." 이라고 말하고 실속 없는 거짓말을 해 봤자 남는건 나의 놀림 뿐이다. 일기장을 훤히 들킨 건 나인데 왜 그가 부끄러워하는 지는 모를 일이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았다.
"내 글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어떤 기분이 들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며 읽지는 않아."
다시 나는 그의 표정을 살핀다. 내가 그의 일을 적은 글이라던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었다던가, 우리가 함께 한 이야기를 소재로 썼다던가.. 그에 대한 감상은 하나도 없는 깔끔한 표정과 대답이었다. 뭐야, 전혀 신경 안 쓰잖아.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다른 그의 단순한 답변에 안도감이 들었다. 앞으로도 마음 편하게 그와 함께 겪었던 일상이라던지 함께 이야기 나누었던 부분을 서로의 공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써도 기분 나빠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고맙기도 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었다면 이건 어떻고 저것 어땠어. 라며 입이 근질근질 나불나불 대고 싶어서 그를 은근히 찔러봤을텐데. 정말 나와의 약속을 곧이 곧대로 잘 지켜주고 있었다. 혹시나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크게 신경 안 쓰며 다른 작가의 글을 읽듯 나의 글을 감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내가 이 글을 쓴걸 발견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마침 글을 쓰고 있는데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화를 걸었다. 나 저번에 그 이야기 쓰고 있다고 했잖아, 그거 글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았어. 그가 푸스스 웃으면서 들어준다. 순간 무슨 충동이 들었는지 문득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있잖아, 방금은 자기 이야기 쓰고 있었어." 그러자 그가 파드득 놀란다. "혹시 어제 나 ㅇㅇㅇㅇ 한거 쓴 거 아니야?"라고 이야기해서 한바탕 푸하하하 웃었다. 요즘 뭔가 조심하려는 낌새가 보이긴 했지만 많이 생각하고 있었구나? 사실 난 그거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냥 너를 많이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
사랑한다는 말은 나에게 무척 어려운 말이다. 이 사랑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늘 의심스럽고 불안하다. 그를 믿어도 될까? 믿었는데 그 사람이 떠나면 나는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불안감을 내보일 때면 자신을 믿으라며 호언장담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내가 자기를 의심하는 거냐며 화를 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는지 바로 도망갔다. 팟캐스트를 듣다가 그놈도 잠수타고, 저놈도 잠수탔어. 그런 말을 듣고 까르르 웃었다. 이거 다 내 얘기잖아? 호언장담하고는 바람났던 사람도, 화를 내고는 잠수탔던 사람도 지금은 내 곁에 없다.
그 순간마다 수없이 무너졌지만, 지금 나는 살아있다. 이쯤 되면 못 믿을 만도 한데 또 살랑살랑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사실 상대방 탓을 하기에는 나 또한 자신에게 너무 걸리는 것이 많다. 왜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하면서 불안한지 정말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사랑이란 건 언제든지 거둬질 수 있다는 경험적 근거에 따라 살고 있으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사랑받을만한 일을 해도 조금의 틈이 있다면 돌아오는 건 폭언이나 너는 필요 없다는 경고. 나는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게되는 반복된 사건들. 애정을 준 상대에게 애정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일이 반복되는데 어떻게 내가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아, 글을 읽으며 감이 온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나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다. 부모 탓을 하기엔 나이가 먹어서 이미 비겁해 보이나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 사람들은 내가 최초로 애정을 경험한 상대고, 애정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된 상대고, 아직 혼자 힘으로 설수 없단걸 알면서 그걸 무기로 휘두른 사람들인 건 변하지 않는 걸요. 부모에게 "말 똑바로 들어. 저기 고아원 알지? 거기로 가 버리면 되는 거야. 너 필요 없어."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란 어린이가 어떻게 바르게 클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모르는 비상금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나를 버리면, 이 돈을 가지고 살아가자. 또는 나를 버리면 이 돈을 줄테니까 더 키워달라고 이야기할까? 라고 생각하면서. 참 귀여운 이야기죠? 그 돈이 몇 푼이나 된다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비참하니까 당신이 안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만 내가 사랑하고 있는 그를 생각하자. 요즘엔 사랑. 하면 그가 떠오른다. 서로를 안을 때면 따뜻한 체온, 말을 할 때 울리는 옅은 진동, 그의 옷에서 풍기는 섬유유연제 냄새, 다정하게 내 등을 쓸어내리는 그의 손길. 그런 따뜻함을 느끼자면 참 편안하고 노곤노곤한 기분이 된다. 그래서 그와 체온을 공유하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자면 조금은 눈이 감기고, 잠이 온다. 그러고 있자면 뭔가 민망한 기분도 들어서 슬슬 장난도 건다. 이런 평화로운 날이 항상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사랑이 다른 무언가로 변하는 날엔 우린 무엇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