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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Oct 06. 2021

두 명의 친구

풍요이야기

장군이는 부처님이 맞았다. 

각각 사료를 따로 나누어 주면 풍요는 자기 몫은 그대로 두고 먼저 장군이 사료를 빼앗아 먹었고 장군이는 

아무런 저항 없이 뒤로 물러서서 자기 사료를 양보하곤 했다.

내가 보기에도 장군이의 행동이 너무나 초연해서 물욕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힘없이 그냥 물러서서 약자가 강자에게 아무런 대책 없이 당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지만, 장군이는 아마도 풍요의 행동을 예상하고 그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응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풍요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장군이의 선행도 지나치다고 생각해서 둘의 사료 접시를 멀리 뛰어 놓고 내가 그 중간에 서서 풍요가 장군이 사료 접시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도 했지만, 장군이는 사료를 많이 남겼다.


아내 이야기로는 장군이는 <있는 집 자식>이라서 부족함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풍요를 위한 배려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내의 답변은 이해하기가 쉬워서 명쾌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둘이서 매일 한 번 이상 우리 집에 왔고 그때마다 나는 사료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풍요가 장군이 사료를 빼앗으려는 행동도 없어졌고 둘이서 나란히 서서 사이좋게 식사하는 모습은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것은 그 둘만의 세계였고 나는 그 세계 밖에 있었지만,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한 것이었다.

장군이는 집고양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안단테네에서 목걸이를 달아주었다

우리 집 현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은 낮 동안에는 짙은 그늘이 만들어진다. 

그해 여름도 길고 더웠다.

어느 날 풍요가 그 계단 밑 그늘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앉아서 쉬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아내로부터 장군이가 풍요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할 즈음일 것이다. 풍요가 장군이를 늘 졸졸 따라다니면서 못살게 군다는 것이었다. 


둘째 딸이 풍요가 장군이 뒷머리를 때리는 것을 봤다고도 했다. 장군이 입장에서는 의식주를 다 내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나이 어린 녀석이 도가 지나치게 까불거리는 것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와 함께 풍요가 좀 고분고분 해지도록 버릇을 고쳐줄 필요성도 서서히 느끼면서 아마도 몇 가지 본때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 


아무튼 둘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세한 내막은 알 도리가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둘 사이가 예전과는 달리 서먹해지면서 풍요가 안단테네 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풍요는 얼굴에 애티를 띠고 크고 검은 눈망울로 우리를 쳐다보곤 했는데 사랑스럽고 귀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안단테네도 풍요가 참 잘생긴 얼굴이라고도 했다.


나는 특히 풍요가 앞 두발을 가지런히 세우고 꼬리로 그 두 발목을 감싸고 반듯하게 앉아있는 자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절제된 단아함이 내 눈에는 참으로 품위 있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풍요를 <신사>라고 불렀다.

신사 풍요

그날 나와 아내는 풍요를 본격적으로 우리 집에서 키우기로 합의를 했고 그 절차는 간단했다. 아내가 계단 밑에 스카치테이프로 보강한 종이 상자 하나를 놓아주었다. 풍요는 이제 풍요만의 개인 원룸이 생겼으며 우리 집 울타리 안의 공식적인 구성원이 되었다. 안단테네도 “언니. 고양이 한번 키워봐라. 참 좋다”라고 했다.


풍요는 그 종이 상자 집에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아내와 나는 그것을 보고 “와~, 풍요가 자기 집인 줄 알고 잘도 들어가네” 하며 좋아했다.


풍요는 그날부터 삼시 세끼를 우리 집에서 먹었고 잠도 계단 밑 자기 집에서 잤다. 배가 고프면 창고 카페 문 앞에서 “야옹! 야옹!” 거렸다. 

풍요에게 처음 제공된 계단 밑 종이 상자 집


장군이도 수시로 우리 집에 들락거리며 “야옹! 야옹!”거렸다. 그 무렵 풍요는 배를 채우기 위해서 사료를 요구했고, 장군이는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 본인의 입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로부터 사료 주는 행위를 요구했다. 둘에게는 서로 사료의 의미가 달랐다.


풍요가 우리 집에서 살기는 했지만, 장군이는 우리 집도 여전히 자기가 관리하는 영토였던 것이다.

배고픈 풍요는 항상 사료를 다 먹었고 영토를 순찰하는 장군이는 항상 사료를 조금만 먹었다.


둘이 “야옹”거리는 시간대가 달랐기 때문에 나는 사료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 횟수만큼 나만의 기억 속 부질없는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또한 장군이와 풍요는 나를 무료함에서 또는 우울함에서 꺼내 주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친근한 친구였다.

나의 친구는 호모사피엔스만 가능할 것인 줄 알았으나 ‘다른 종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내 가슴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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