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프리랜서에도 계급이 있을까

틀에 나를 가두지 말 것

by 새별

나는 N포 세대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인간관계를 포기한 세대. 이제는 사전에도 등재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심리적 박탈감 극복이 우리 세대의 과제가 되었다. 부모님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내 삶. 나는 흙수저와 동수저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


나는 N포 세대나 수저론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안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올 때가 많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빠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반지하 집에 계속 살았다. 내가 일본에서 근무한 지 3년 차가 되던 해, 한국어 수업을 듣던 한 일본인 수강생이 영화 기생충을 보고 오더니 "한국에 그런 집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자기가 아는 한국인 지인이 요즘 서울에 그런 집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수강생 앞에서 내가 바로 그 반지하 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서울에 그런 집 꽤 많아요, 서울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라고 답했다.


일본에 가기 전에도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년 사이에 서울 부동산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그러다 보니 우리 세대 중에는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많다. 독립과 결혼이 가진 자에게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면 다소 억울한 마음도 든다. 나도 귀국 후 1년 동안 엄마와 함께 살았지만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공간을 경험하는 삶으로 관념을 바꾸기로 했다. 집을 소유하겠다는 생각으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부모 원망이나 하는 못난 사람이 될 것 같아, 얼마 전 독립했다.


사실, 중학교 1학년 때 아빠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어 11개월간 투병하는 모습을 보며 결심한 것이 있다.


1. 건강할 것. 내가 아프면 가족들이 나 때문에 삶을 희생해야 한다.

2.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 내가 경제적인 독립이 온전히 되지 않으면 가족들이 괴롭다.

3.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런 말은 제 때 할 것. 나중으로 미루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

4.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 것. 내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미루지 않는다.


이렇게 20대를 보내다 30대가 되어 새로이 추가한 다짐이 있다.

5. 심리적으로 독립할 것.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말 것. 마음이 가난하면 할 수 있던 일도 못하게 된다.


내가 만약 가난이 죽도록 싫어 금전적인 부유함을 원했다면 악착같이 돈이 되는 일만 추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나에게 가난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함께 왔다. 나의 아빠는 49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 해보고 싶었던 일도 보고 싶었던 것도 많았을 텐데, 내 졸업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할 수 없었던 아빠. 유언 조차 남기지 못했다. 나는 아빠의 죽음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세상의 잣대로 보았을 때 나는 흙수저와 동수저 그 사이 어딘가 일 수도 있으나, 세상의 필터가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잘 안다. 어차피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기에 가지지 못한 것이나 가질 수 없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기로 정했다. 그보다 나 자신에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나이가 먹을 수록 옳은 길이라는 생각은 든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집안에 돈이 좀 있어서 사업을 시작한 사람,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수입이 적어도 부담이 없는 사람, 직장 내 괴롭힘이 지겨워 프리랜서가 된 사람, 하는 업종의 속성이 프리랜서인 사람, 혼자서 일하는 게 편해서 프리랜서가 된 사람, 취업이 되지 않아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프리랜서가 된 사람.


사실 아버지가 사업을 도와주셨다는 말을 들으면 부럽다. 아마 모든 사람이 나보다 환경과 조건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현타가 올 것이다. 그러나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가졌는 가다. 나는 사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 아빠는 하늘에서 나를 돕고 있다고. 365일 24시간 아빠가 나를 쫓아다니면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고 (웃음)


나는 아빠가 없던 어린 나를 도와주었던 수많은 손길을 잊지 않고 있다. 아빠가 갑자기 쓰러져 울지도 못하는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큰 이모, 늘 맛있는 반찬을 나눠준 둘째 이모, 조카들을 생각해 늘 맛있는 과일을 챙겨주었던 셋째 이모,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빠 대신 알려주었던 외삼촌,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포기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온 우리 엄마,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게 뭔지 몸소 보여준 우리 언니. 가족들이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사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잊고 '어떻게 하면 될까'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도와준 건 가족뿐이 아니었다. 불리한 조건에서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학생들 대신 EBS 수업을 밤새가며 듣고 필기해서 나눠주던 선생님, 밥 먹는 시간을 쪼개며 수업을 준비하던 담임 선생님. 모든 것이 수월한 환경에서 자랐으면 이런 사람들의 귀함과 감사를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높이 향상하지 못한다. - 크롬웰

열등감이나 박탈감에서 벗어나 순수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때,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가 보인단 생각이 든다. 출발점의 불공정함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불공정함에 갇혀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가진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일 아닐까.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를 바란다. 어렸을 때 읽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묵묵히 오늘 해야할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원한다. 쉽게 규정 짓고 말하는 사람들에 굴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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