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직업이 내 직업이다

흐르고 흘러서 여기에 왔을 뿐

by 새별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선 우리가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맡아 졸업을 시키는 학생들이기에 교직 생활을 하면서 절대 잊지 못할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재량 수업 시간도 열심히 준비하셨고, 모든 과목에 열심히 참여하기를 원하셨다. 졸업하기 전 3~4명씩 묶어서 면담 시간을 가졌는데, 1년 동안의 성적 결과의 흐름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셨다. 다른 친구들은 성적이 같거나 오르거나 떨어지는 하나의 흐름을 보여서 그에 맞게 조언해주고 계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내게는 솔직히 말해서 너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당혹스러움이 여전히 남아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예측 불허와도 같은 존재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생활 통지표에 이렇게 쓰여 있다. "파워포인트를 통해 생일 초대장을 잘 만들어 냄." 어렸을 때 내가 꿈꾸던 수많은 내 모습 중, 파워포인트로 내 앞가림을 한다는 모습은 없었다. 애초에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내 꿈은 선생님, 평범한 회사원이 전부였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야간 자율학습에 성실히 참여한 모범생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원을 다닐 수는 없으니 자율학습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목표로 매일 공부만 하는 그런 범생이, 그게 나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몹시 우울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대학에 오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고, 친구들은 거기에 재주와 재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나와 다른 세계에서 온 반짝이는 친구들을 마주하며 이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가,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친구들에게 나는 딱히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기자가 되는 것이 꿈', 'PD가 되는 것이 꿈',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고 있는 동기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20대 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찾지 못해서 끊임없이 방황했다. 물론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현재 누릴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며 살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미래와 연결하고 행동할 것인가 대해서는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게 어려웠다. 일종의 회피였다. 내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나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애초에 내 목소리가 무엇인지 구분하는 것도 어려웠다.


회사에서 오랜 시간 인턴을 하고, 동아리 활동, 대외 활동, 교환학생, 나 홀로 여행, 프로그래밍 언어 학습 등 다양한 경험을 하니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양보할 수 없는 건 무엇인가는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애초에 권력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이 과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남들에게 '나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느끼고 보내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남의 눈치를 보지만 그건 상대방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면 어떨까에 대한 우려일 뿐, 상대방이 나를 재산, 권위, 외모로 평가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 평가에 신경을 쓰는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남들이 가진 것을 반드시 나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지도 않고,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벌면 되는 사람이었다. 부조리함과 매일 마주하는 것을 극도로 좋아하지 않고, 늘 배움이 있는 일을 하며 나 자신이 성장할 수 있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지 모른다는 고민에 빠졌다.


고민에 빠져 홀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사람들이 내게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하며 들었던 나에 대한 말들이 문득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의 조언처럼, "너는 잘 모르겠다" 와도 같은 말들. "너 되게 특이한 거 알아?", "나는 네가 너무 부러워", "넌 남미에서 왔니?", "네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안 뽑았을 거야 (웃음)". 아무래도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보여주는 모습과 시간이 지나면서 보여주는 모습이 다르고, 애초에 가치관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들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 늦게 취업을 준비한 친구들도 취업이 됐고, 나보다 스펙이 더 좋지 않은 친구도 취업이 됐다. 그런데 나는 서류조차도 통과가 되질 않았다. 이러다 굶어 죽는 것은 아닐까,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일이 '블로그 구독자 1만 명 만들어서 책 내는 일'이었다. 나중에 책을 내고 나서 아는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내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고,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이걸 포트폴리오로 삼아서 평범한 회사원이 되려고 했는데 한 번은 면접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할 사람처럼 보인다고 하며 나를 탈락시켰다.


혼자서 일하는 게 무섭고 두렵고 책임져야 할 일도 많아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운명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은 때때로 나를 부러워하며, 자기 이름을 걸고 돈을 버는 모습이 대단하고 멋지다고 말하기도 한다. 막상 나는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훨씬 많다. 외롭기도 하고, 혼자서 뭘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많은데, 그래도 가끔 내 통장에 찍히는 돈이 혼자서 일궈낸 것이라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된 것도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솔직하게 '너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신 게 가장 정확한 미래 예측이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루를 묵묵히 사는 것뿐. 지금 하는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저 불투명하기만 하지만 오늘 하루를 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며. 불확실성이 주는 묘한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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