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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Nov 30. 2023

두 번째 단상

우울은 특권이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려서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을 먹고 외출 준비를 하기 전, 먼저 한 일은 책상 위에 놓여진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었다.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 위의 온수로 팔을 뻗었다. 아래팔이 따끔 했다. 시야를 내리자 새벽에 냈던 상처가 보였다. 아......, 그 순간 뇌는 순식간에 기억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른다. 일단 새벽이었고, 하늘엔 녘이 틀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잠들기 위해 먹은 약의 기운에 아직 취해있었다. 비몽사몽 한 채 비척비척 책상 앞으로 걸어가 서랍장을 열었다. 거기엔 커터칼이 들어있다. 평소랑 달리 아무런 제동장치 발동하지 않는, 무력화 상태였다. 이성이라던가, 사회화된 자아라던가......, 그리고 다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진짜 싫다. 이제 우울할 나이는 지났는데도 이런다. 우울은 낫지 않는다. 이미 손쓸 도리 없이 망가진 신경계는 시간이 지난다고 원상복구되진 못한다. 나는 평생 우울할 것이다.







 우울은 특권이다.

 그래야만 한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우울이 틈입되는 걸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우울을 향유할 수 있다. 이것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다. 내면이라는 심연 속에는 그것만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이 있다. 무엇이든 좋으니 취해있어야 한다. 우울이라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삶을 견딜 수가 없다.


 가라앉고 싶다. 그 어느 곳보다 깊은 곳으로. 춥고 어두운 곳으로. 나는 발버둥 치지 않을 것이다. 왜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날 감싸고 있는 냉수와 새벽이 온화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남과 같다는 것은 대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은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시장의 상품만이 공급과 수요의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아니, 모든 것의 가치는 저 경제학적 가치로 정해진다. 오히려 시장 밖의 모든 것마저 시장의 원리를 따른다. 그러므로 나는 우울해야 한다. 때론 권태롭고 때론 격정스럽게. 방황하며 숙고하고 혼란스럽고 음울해야 한다. 남과 같을 바엔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은 도저히 우울할 줄 모른다.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우울이 침투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성찰은 필연적으로 우울을 수반한다. 사람들은 성찰할 줄 모른다. 하루에 8시간씩 일을 하고 사람이 바글거리는 대중교통을 통해 집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쌓여있는 집안일 거리와 유혹적인 문명의 이기들이다. 성찰하지 않는 것은 꼭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나는 남들보다 조금 우쭐하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대상의 가치는 공급과 수요의 가치를 통해 결정된다. 이것은 시장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렵시대엔 사냥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수요가 높았고 공급이 환영받았을 것이다. 정신적인 인간의 공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가치 있다.


 가라앉아 있고 싶다.

 심해 속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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