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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Apr 01. 2024

사랑은 때론 두렵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와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는 서로 자매지간이다. 핏줄의 힘은 참 대단하다. 둘이 공유한 건 문재뿐이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한 둘의 대표작 모두 고딕 로맨스라는 공통의 장르에 속한다. 주제 의식 역시 퍽 비슷하다. 둘 작가 모두 사랑의 아름다움과 두려움, 아픔을 동시에 다뤘다. 그리고 증오할 만한 상대에게서 장점과 사랑스러운 점을 찾아낸다는 점도 동일하다 『제인 에어』는 고딕 로맨스에서 로맨스에 보다 치중되어 있고, 『폭풍의 언덕』은 그 반대에 해당하지만 말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고딕로맨스란 장르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는 고딕과 로맨스라는 장르가 결합하여 탄생했다. 고딕이란 공포물의 시초쯤 되는 장르다. 자세히 말하면 복잡한데, 여기선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첫째, 고딕소설은 분위기를 통해 음울함과 공포감을 서서히 촉발시키는 장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인간의 내면적 주제를 다룬다. 이러한 고딕 장르와 로맨스 장르의 결합이 바로 고딕 로맨스라는 장르다.


 『제인 에어』 -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는 작품의 주인공이자 서술자다. 그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친척 집에 잠시 머물렀고, 이후 수녀원에 부속된 자선 학교로 쫓겨나다시피 떠나게 된다. 친척의 집에선 학대에 가까운 생활을 겪는다. 그녀는 자신을 때리는 사촌오빠에게 반격했는데, 그로 인해 자선 학교로 쫓겨나다시피 떠나게 된다. 그곳은 성장기의 아이들이 살기엔 척박하고 황량한 곳이었다. 운영자는 한창 커야 할 아이들에게 금욕주의를 강요하며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선 학교를 운영하는데 지출해야 할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기까지 한다. 그 때문에 전염병이 퍼져 수십 명이 죽기도 하는 등 참사가 터지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 제인은 꿋꿋이 견디고 살아가며, 친구인 헬렌과 템플 선생의 도움으로 정의롭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자라났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남들 못지않은 지성과 기품을 지녔으며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당찬 마음과 능력을 지닌 어른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제인에게도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일은 꽤 공포스러운 일이었을 터. 그녀가 처음 얻은 일자리는 한 소녀의 가정교사직이었다. 비록 고용주인 로체스터가 괴팍하긴 했지만, 소녀는 귀여웠다. 직장인 저택에서 숙식도 제공해 주니 썩 괜찮은 일자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제인을 가장 불안하게 만든 건 괴팍한 고용주나 학생에게 공부를 어떻게 시킬지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이따금 밤과 새벽에 발생하는 괴사건들이 원인이었다. 어디선가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가 들린다던가, 불이 날 뻔한다던가, 한 여인에게 로체스터가 공격당한다던가 하는 일 말이다.


 이런 고딕적 요소는 소설의 중요한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처음엔 샬롯 브론테가 독자들을 끌어당길 요량으로 이런 것을 작품 내에 차용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필자의 생각이 짧았다. 제인의 첫 직장, 즉 사회인이자 자유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는 곳에서 이러한 일이 생겼다는 주목해야 한다. 샬롯은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으레 겪는 불안함과 공포감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막 자유로워진 사람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책임감이 내포된 진정한 자유라면 더더욱 말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소설의 결말에서 우리의 사랑스러운 주인공은 로체스터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그는 결혼 상대론 결격사유가 꽤 많다. 사고 후유증으로 시력을 비롯해 중요한 신체적 기능을 몇 개 잃은 장애인이 되어있는 상태였고, 애 딸린 유부남이기도 했으며 자신에게 -비록 집에 불을 내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정신병자긴 하지만- 본처가 있었다는 걸 제인에게 들켜 결혼 직전 파투가 한 번 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일 줄 아는 다정한 남자였고, 남을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사람이기도 했다. 시력을 잃고 장애인이 된 이유가 이로 인한 화상 때문이었다. 제인은 그런 남자는 사랑하고 평생의 반려자로 삼기로 자유롭게 결정했다. 위에서 언급한 공포 상황이 지속되면서도 로체스터와의 로맨스는 지속된다.


 『제인 에어』는 본질적으로 로맨스 소설이다. 주인공은 스스로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 위해 필사를 다 한다. 그리고 결말에선 자신이 사랑할 사람을 '선택'하며 마무리된다. 저택에서는 여러 사건 때문에 공포를 느끼던 중에도 로체스터와의 로맨스는 진전된다. 그리고 그와의 연애 중 당혹스러운 일과 갈등도 꽤 생긴다. -연인들끼린 으레 그렇듯.- 이는 사랑은 때론 사람을 두렵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이렇듯 남과 결합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 때문에 마음고생도 하고 상처를 입거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도 제인은 로체스터를 사랑하기로 결정한다.


Reader, I married him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에밀리의 누이였던 샬롯이 평하길, 『폭풍의 언덕』은 읽으면 그날 잠자리가 뒤숭숭하다고. 필자 역시 밤에 스탠드만 켜고 이 작품을 읽었는데, -공포 소설이니 분위기에 빠져보겠다고- 실제로 잠자리가 영 뒤숭숭했다. 예술에 있어서 독자에게 불쾌함을 준다는 건 빼어난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렇듯 『폭풍의 언덕』은 뛰어나고 인상 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히스클리프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뺏기자, 대를 잇는 복수를 감행한다. 그는 린튼가와 언쇼 가문의 재산을 몽땅 가로채고 지속적으로 위협하며, 자식들을 학대한다. 여기엔 약간의 사연이 있다. 히스클리프는 본래 고아였는데 당시 가장이었던 언쇼-성만 언급된다.-의 손에 거둬져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된다. 언쇼는 친자식보다 히스클리프를 편애하였다. 이런 언행은 결과적으로 맏이였던 힌들리와 히스클리프의 갈등을 부추기게 된다. 실제로 언젠가부터 둘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집안은 냉랭해진다. 그런 탓에 언쇼가 죽고 힌들리가 가장이 되자 히스클리프는 종 내지 하인 취급을 받게 된다.


 본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는 사랑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캐서린은 판사 집안의 아들인 에드거 린튼과 결혼한다. 그녀이 말하길, 에드거 린튼과 자신은 영혼이 정반대이기 때문에 언젠가 사랑이 변할 테지만 자신과 동일한 영혼을 가진 히스클리프와의 사랑은 불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에드거와 결혼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속물적인 이유부터 나열해 보면, 돈이라던가 품위 등의 문제다. 하지만 이따위 것들은 부차적인 이유일 뿐이다. 캐서린은 에드거의 재산으로 히스클리프를 언쇼가에서 빼내리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하인 꼴로 고생하는 모습을 그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두 가문과 히스클리프 사이에 거대한 비극이 시작된다. 둘의 결혼을 알게 된 히스클리프는 집에서 탈출, 사라진다. 사랑해 마지않았던 캐서린 언쇼마저 복수 대상에 올린 것은 물론이다.


 히스클리프는 부자가 되어 나타나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복수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캐서린 언쇼는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복수가 진행 중임에도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애틋한 감정을 유지했다.-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복수에 성공했다. 에드거의 동생을 유혹하며 린튼가에 침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내를 학대한 것은 물론이다. 합법적으로 두 가문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의 자식들인 헤어튼 언쇼와 캐서린 린튼을 자신의 밑에 묶어두며 인격적으로 망가트리기 시작한다. 네메시스와 디오니소스가 보았다면 아마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을 성싶기도 하다. 하지만 『폭풍의 언덕』은 악의 승리로 마침표를 맺지 않는다. 사이가 본래 좋지 않았던 캐서린과 헤어튼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히스클리프의 왕국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단 한 번, 캐서린은 헤어튼과 자신의 관계가 개선된 것을 믿고 히스클리프에게 반항한다. 헤어튼과 사전에 이야기된 것도, 합이 맞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 사건은 한차례의 소동으로 끝난다. 그는 타성적으로 히스클리프에게 대적하길 꺼렸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이 광경을 보고 회의감 내지 허무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굶기 시작하였고 둘을 사납게 대하지도 않았다. 결국 겨울날 창문을 열고 자다가 동사했다. 의도된 사고사, 자살에 가까운 죽음이었다. 그가 차지하고 있던 재산들은 본래의 주인들에게 되돌아갔고, 캐서린과 헤어튼은 백년가약을 맺는다. 히스클리프는 이 둘이 사랑에 빠질 거란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캐서린과 헤어튼 앙숙이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은 헤어튼은 히스클리프의 밑에서 자랐다. 그는 헤어튼을 교양도 없고 성깔도 더러운 사람으로 키웠다. 그 결과 알파벳을 읽지도 못하는 일자무식에 남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피해의식을 가진 예민한 남자로 자라났다. 캐서린과의 갈등도 이런 성향이 발단이었다. 강제적으로 히스클리프의 집에 갇혔던 그녀는 아주 예민한 상태여서인지 -본래 아주아주 선한 인물이었으니까- 헤어튼과 말다툼을 하게 되며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물론 이 다툼에는 캐서린이 먼저 가시 달린 말을 내뱉은 책임도 있긴 하지만.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니다. 이 갈등은 그녀가 먼저 헤어튼에게 글자 읽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화해를 청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회복된다. 캐서린은 이미 첫 번째 사랑이 비극으로 끝난 경험이 있었다. 히스클리프의 아들과 반강제적인 결혼을 했던 것이다. 물론 둘은 사랑하는 사이긴 했다. 하지만 그는 아주 병약했으며 예민한 구석도 있었다. -아마 애정결핍이었으리라- 예상대로 캐서린과 결혼한 남자는 일찍 죽었고, 히스클리프는 그렇게 린튼 가문의 재산도 차지하게 된다. 히스클리프의 아들이 린튼의 피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히스클리프의 아들답게 린튼 역시 영 선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었기에 연인에게 꽤 상처를 주었다. 아마 캐서린에게 사랑은 아픈 무언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다시 한번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작품의 문장에 따르면 한 사람이 상대를 사랑하고 인정해 주려고 마음을 먹었고, 상대방 역시 같은 결심을 했다고 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캐서린은 사이가 나빴던 헤어튼을 사랑하고 인정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헤어튼 역시 이에 응답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결국 완벽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마음속에 있던 사랑을 막지 못했고, 오히려 그 때문에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갔으니. 그는 자신이 아주 오래 살 거라고 하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복수를 위해서 그런 것도 있었을 성싶다. 하지만 그토록 열망하던 복수가 자승자박이 되어버렸다.




 독자들이 브론테 자매의 소설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은 자유다.'라는 명제를, 예술을 통해 훌륭히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제인과 로체스터, 캐서린과 헤어튼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소설은 보여주지 않는다. 두 작품 모두 결혼식 이후의 일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두 커플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경을 딛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로 선택했으니까. 즉 자유롭게 사랑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랑은 때론 두렵고 혼란스러우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는 필연적인 일이다. 본래 사람은 자유를 지향함과 동시에 두려워한다. 진정한 자유에는 책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허나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지 않는가? 이들은 힘겨웠던 만큼 굳건한 사랑을 이어갈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참, 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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