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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Mar 25. 2024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투데이 위 리브』,『자기 앞의 생』,『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랑은 언제나 문제거리였다. 좋은 의미로든 반대로든 말이다. 이는 책의 첫 번째 주제로 사랑을 꼽은 까닭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도 사랑은 언제가 고심거리였다. 그래도 내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해본다면 다행스러운 것이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일찍이 알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저 질문에 평생 고뇌하기도 한다. 저 질문이 존재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거나, 답을 찾길 포기하기도 한다. 사실, 정답은 정말 별거 아니다. 사랑이다. 이 두 음절엔 특별한 울림이 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저 답은 실제적이고 실천적 삶 속에서 얻은 것은 아니다. 필자의 성미와 취향이 까탈스럽기 때문일 성싶다. 가리는 음식이 많은 편인데, 사람에도 그런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은 있느냐, 사랑했던 사람은 있었냐고 묻는 다면, 글쎄. 확신을 갖고 대답을 할 순 없다. 하지만 책으로 자신을 남긴 사람들이 내게 일러주었다. 그들의 글들은 내게 세심한 손길처럼 다가왔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다정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때 느꼈던 인상을 조금이라도 남들과 나눠보고 싶다. 비록 내가 느꼈던 것을 온전히 전해주진 못하겠지만, 허락해준다면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투데이 위 리브』 - 엠마뉘엘 피로트


 여기 민족의 배반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마티아스, 나치군의 일원이며 지금 동료와 함께 미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침투하는 중이다. 특수임무의 일환이자 나치의 마지막 발악이기도 하다. 마티아스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전쟁은 나치의 패배로 끝날 것이란 확신도 마음 속에 숨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둘은 목사를 한 명 만난다. 그 목사는 이들이 정말 미군인 줄 알고 자신이 데리고 있던 유대인 소녀를 한 명 위탁한다. 나치군은 10대 초반으로 소녀를 차에 태워놓고 깊은 숲 속으로 향했다. 유대인을 죽이라는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소녀는 무언가를 직감한 듯 보인다. 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얌전하였으며 떼를 쓰지도 않는다. 총구가 자신을 향했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에서는 야성이 느껴지는 그런 특별한 소녀.


 세 명 말고는 아무도 없는 야지, 유대인 소녀의 뒤통수를 향해 총구를 대고 있는 동료. 마티아스는 결국 동료의 머리에 총알구멍을 낸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를 안전한 곳까진 데려다주기로 결심한다.


 마티아스, 이 냉소적인 청년은 본래 미국에서 모피사냥꾼을 하며 먹고 살았다. 인생에 목적없이 공허하게 살아가던 그는 전쟁소식에 한달음에 독일로 달려간다. 동거동락하던 인디언들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지만 아쉽게도, 전쟁터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사냥꾼의 신발에서 군화로 갈아 신었다. 총구를 여우가 아닌 사람을 향해 조준해보았지만 마음까지 바꾸어주진 못했다. 심지어 유대인 청년을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한 후부터 전쟁 자체에 대한 깊은 환멸과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터였다.


 소녀의 이름은 르네다. 그는 르네를 인도하던 중 전선부근에서 고립된 프랑스인과 미군무리를 만나게 된다. 당장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르네에게 안전할 것이라 판단한 마티아스는 적과의 동침을 시작한다. 미군들은 그를 의심하며 몇 가지 질문을 -미국의 지리를 묻는다던가.- 하지만 완벽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실제로 오랜 세월 미국에서 살았던 마티아스를 가려낼 재간은 없었다. -특수임무에 배정될 정도로 능력있기도 하고- 그곳에서 마티아스는 자신에게 연심과 육욕을 가진 여성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기도 하고, 르네가 무대에서 등장한 성탄절 연극도 본다.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기간이었다.


 결국 마티아스는 나치군임이 들통난다. 무심코 경례를 하던 중 발 구름을 쳐버렸기 때문이다.-나치식 경례에 발 구름이 포함되어 있어서 실제로 이런 방식을 통해 나치군을 가려냈다.- 총알세례 속에서 그는 말을 한 마리 훔치고 르네를 찾아 함께 떠난다. 마음이 상대방을 지향했던 것은 르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티아스만은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으며, 소동이 난 후 스스로 그를 찾아 나선다. 작품 초반부 자신을 향하는 총구를 덤덤히 받아들이던 모습과는 퍽 대조된다. 에필로그에서 마티아스는 르네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횡단한다. 한 벨기에인이 그에게 물었다. 전쟁 속에서 어떻게 둘이서 살아남을 수 있었냐고. 마티아스는 대답한다. 지금 살아있는 데 이유 같은 게 뭐가 중요하냐고.


『자기 앞의 생』 - 로맹 가리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10대의 모모는 똑똑하고 인자한 이웃인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그는 머뭇거린다. 하지만 결국은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그렇단다"라는 말에 소년은 울음을 터트렸다.


 2차 세계대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 모모는 파리의 빈민가에 산다. 이 곳에 순수한 프랑스인은 살지 않는다. 그의 이웃들은 유대인이거나, 아랍인이거나,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다. 모모 역시도 회교도로 자랐으니 아랍인의 혈통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년은 로자라는 노년의 여성 밑에서 자랐다. 모모의 설명에 따르면 95키로의 할머니인데, 왕년에는 몸을 팔았고 쉰이 되어 은퇴를 한 후부터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창녀들의 아이들을 맡아주며 살고 있단다. 당시의 프랑스는 매춘이 불법이었으며, 매춘부들은 아이들을 키우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모모를 비롯하여 아이들은 사고를 치고 다니며 로자를 골아프게 하고 -관심을 받기 위해 집에 똥을 싸고 다니기도 할 정도로- 돈도 환경도 좋진 않지만, 그 주변에는 다정한 이웃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나이가 많았던 로자 아줌마는 나이가 들며 빠르게 죽어간다. 주변 이웃들은 발벗고 나서 그녀를 도와준다. 유대인 의사 카츠는 역시 노년인 몸일 이끌고 7층 아파트까지 왕진을 왔다. 이삿짐 옮기는 일을 하는 청년들은 그녀에게 바깥공기를 쐬게 해주기 위해 95키로의 몸을 들고 아파트를 세로지른다. 여장남자이며 역시 몸을 팔는 롤라는 자신의 벌이를 모모와 로자를 위해 떼어주곤 한다. 아프리카에서 온 이웃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주술을 이용해 로자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악령을 쫓는다고 그녀를 중심으로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며 전통 악기로 노래를 했다. 뭐, 로자는 그걸 보곤 아연실색하긴 하지만.


 카츠는 로자를 병원으로 옮기자고 한다. 하지만 모모는 그녀가 그런 요양생활을 결단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안락사는 불법이었기에 병원에 간다면 영락없이 식물인간 행이었다. 그 소원을 지켜주기 위해 모모는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그녀를 아파트의 지하실로 데려다 준다. 지하실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생긴 ptsd때문에 로자가 조성해놓은, 일종의 피난처인 곳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한다. 모모는 죽어 탁해지는 피부와 냄새를 지워주기 위해 색조화장을 해주고 향수를 퍼붓는다. 3주 후, 이웃들에게 지하실이 적발당하게 된다. 모모는 자신을 귀여워해주었고, 이미 두 명의 자식을 가진 나딘에게 맡겨지게 된다.


 저 3주 사이, 모모는 하밀할아버지를 한 번 더 만난다. 그 역시 치매가 점점 심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전과 같은 질문을 한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하밀은 처음엔 횡설수설하였지만 모모의 다음과 같은 말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한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래, 그래, 정말이란다. 나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둔하긴 커녕 예리한 아이였던 모모는 할아버지의 속 뜻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몸이 아프면 부모가 얼굴이라도 비춰주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슨 짓을 해도 부모의 얼굴을 볼 수 없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낙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낙담하던 모모는 이제 없다. 나딘에게 맡겨진 모모가 회상하길, 하밀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리고 로자를 여전히 사랑하며, 추억한다. 사랑해야한다는 말과 함께 소년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천사 중 한 사람인 미카엘은 하나님의 명을 어긴 대가로 숙제를 하나 받는다. 그는 여자 한 명을 천국으로 데려가야 했는데, 갓난아기가 둘 딸린 것을 보곤 결국 행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사는 지상으로 미카엘을 보내며 세가지 질문의 대답을 구해오라고 지시한다. 그 질문들은 총 세가지로 첫째,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였다.


 미카엘은  차디찬 러시아, 교회 앞에 맨몸으로 떨어진다. 미카엘은 첫 번째 질문은 오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딱 봐도 궁핍해 보이는 남자가 자신에게 외투를 벗어주며 집으로 데리고 와 대접해 준다. 아내의 구박과도 싸워가면서 말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세몬으로 착실한 구두 공이다. 시몬의 가정은 미카엘이 예상했던 대로 정말 궁핍했는데, 자신이 건네받은 외투도 부부 둘이서 돌려서 입고 다니던 것이었다. 심지어 시몬은 당장 돈이 없어 외상값들을 받으러 떠났다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카엘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시몬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날 도와주겠어? 하지만 세몬은 자신들이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주었고, 아내 역시 처음엔 툴툴거렸지만, 미카엘에게 동정심을 느껴 결국 집 안으로 맞아준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이라고 천사는 깨달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고급 가죽을 들고 시몬을 찾아온 무례한 부자와 함께 찾아왔다. 그는 세몬에게 아주 오래도록 신을 수 있는 튼튼한 장화를 만들어달라고 하면서 성공하면 큰돈을, 실패하면 감옥에 가두겠다고 오만하게 선언한다. 그런데 미카엘은 부자의 말을 듣는 채 마는 체하며 씩 빙긋 웃어 보였다. 그게 불만이었는지 부자는 그에게 장화를 만들라고 주문하며 떠났다. 그런데 웬걸, 미카엘은 장화가 아닌 슬리퍼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본 세몬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순간 급사가 한 명 뛰어와 부자가 죽었다며 장화 대신 슬리퍼로 주문을 바꾸겠다고 말한다. 곧 죽음을 맞이할 부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장화가 아닌 슬리퍼였던 것이다. 미카엘은 부자가 장화를 만들어달라고 한 순간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지 않았다.


 미카엘이 시몬 밑에서 일을 한 지 몇 년이 지났다. 그의 솜씨가 뛰어났던 탓에 시몬도 어느 정도의 재정적 여유가 생긴 상황이었다. 그러다 한 여인이 한 쪽 다리를 저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자신들을 찾아와 신발 두 켤레를 맞추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며 말한다. 두 아이가 쌍둥이라 치수가 똑같다고. 그 여인은 사실 친어머니가 아니었다. 미카엘이 만든 신발을 받으며 그녀가 밝히길, 두 여자아이는 본래 고아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을 하던 중 사고로 죽었고, 어머니는 출산후유증으로 죽었기에 옆집에 살던 자신이 키웠다고 말이다. 그 순간 미카엘은 깨닫는다. 자신이 데리고 와야 했던 여자가 바로 그 여자임을, 그리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말이다. 친어머니는 죽었더라도 이렇게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지 않은가? 미카엘 몸에서 빛을 발하며 천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여기에 온 사연을 설명하며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소설에 빌어 세 가지의 진리를 우리에게 일러준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이 있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능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역시 사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제와 『투데이 위 리브』, 『자기 앞의 생』의 주제는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은 어쩌면 저 두 작품의 각주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렇다, 답은 사랑이다. 삶이란 총구로 조준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동력 없이 굴러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능력이 미천한 탓에  알지 못한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사랑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굴 사랑하든 큰 상관없다. 생면부지의 유대인 꼬마든, 다 죽어가는 할머니이든. 나도 어쩌면, 당장 내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쓰고보니 실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한다.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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