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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Apr 08. 2024

에리히 프롬과의 첫 만남

『사랑의 기술』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잠에 들기 위해선 항상 약을 먹어야만 한다. 흰 쪽은 수면유도제 -의사는 도저히 수면제를 처방하지 않으려고 한다-, 붉은 쪽은 항불안제. 항불안제는 수면의 질을 높여준다. 그러기 위해 붉은 약은 생각을 줄이는 기능도 수행한다. 약을 먹으면 이내 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몽롱해진다. 자기 통제력이 떨어지고,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생각이 완전히 멈추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나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 생각'도 그런 상황에서 부상해 온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자주 음울해한다. 자주 고독감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우울이란 불가항력적이고 불가해적이다. 나 스스로를 무기력한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태도에는 중독성과 의존성이 있다. 스스로를 아무런 잘못과 책임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무언가를 위해 노력할 필요도 사라지게 해주니까. 이것은 심리적 방어기제의 일종이다. 물론 감정이란 현상이 호르몬과 신경계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는 건 그런 시시한 게 아니다. 나는 사랑 때문에 두렵고 불안하다.’ 깨닫고 싶지 않았던, 날 부숴버릴 수 있는 진실.


 이게 다 『사랑의 기술』 때문이다. 아프다.

 나는 왜 하필 이 책을 고른 걸까……,




 에리히 프롬에게 사랑이란, 단순한 육욕이 아니다. 치졸한 소유욕도 아니었고. 그는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자주 착각한다고 지적한다. 사랑은 받는 것이며, 자신의 매력에 대한 교환물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는 곧 사랑은 소유라는 사고로 이어진다. 이런 사고방식은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역으로 삶의 질을 떨어트릴 뿐이다. 소유는 상대를 억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관계의 주도권을 가지는 측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실상은 전혀 다르다. 지배자는 피지배자 없이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피지배자는 오히려 새로운 지배자를 찾으면 될 뿐이다. 저런 방식의 사랑은 서로의 자유를 제한하며 삶을 더욱 권태롭게 만들 뿐이다. 이런 점에서 소유로서의 사랑, 교환물로서의 사랑은 유익하거나 성숙하지 않으며, 진정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다.


 프롬에게 사랑이란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자유이며, 태도이다. 또 훈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술이라 불릴만하다. 이것이 책의 제목이 『사랑의 기술』인 까닭이기도 하다. 상대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동시에 성장을 진심을 다해 돕는 것. 이것이 바로 프롬이 정의한 사랑이다. 단절에 대한 불안. 이것이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지닌 실존적 불안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훈련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만약 사랑을 '받는 것'으로 전제한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교환물로 전제하더라도 크게 다름은 없다. 그러한 전제에서 사랑을 훈련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매력을 부풀리는 행동만을 지칭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롬에게 있어서 사랑은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집중력과 주의력,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또, 홀로 있는 것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이 필요 없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랑은 필연적으로 소유욕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나는 무정한 사람이다. 타인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야만 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생각을 정신병적 징후라고 진단할 것이다. 상관없다. 논리학적으로 볼 때 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하는 주장의 타당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정신병은 사회부적응자에게 내리는 지식인 계층의 선언일뿐이다. 그런데 에리히 프롬은 200쪽도 쓰지 않고 나의 수십 년을 산산조각냈다.


 프롬의 말 중에 나에게 밀물처럼 와닿고 냉기처럼 사무치는 말들이 있었다. 사랑은 특정 대상을 향하는 게 아니라 삶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활동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애는 악덕이 아니라 성숙한 사랑의 기본조건이자 결과라는 말이었다. 스스로를 무정한 인간이라 정의하는 것은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사실만을 표상해 준다. 프롬은 사랑은 사람에 대해 끊임없는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라고 하였다.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일말의 관심과 애정을 주길 포기한 미성숙에 갇혀있다.


 『사랑의 기술』은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프롬과 대화를 나누고 사흘 후의 00시 30여 분 즈음 난 눈을 감았다. 카뮈는 삶이 부조리하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실존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참으로 진지한 삶의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나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프롬이 내게 대답한다. 충분한 노고만 들인다면……., 빨라진 맥박, 가슴의 통증, 편두통. 공황발작은 수면제와 함께 융해되며 시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경험은 무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전 03화 사랑은 때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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