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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Sep 24. 202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The me in thee

The me in thee. Now you go for us both. Truly. We both go in thee now.  As long as there is one of us, there is both of us. Do you understand? I am with thee now. We are both there. Go!


Roberto가 Maria에게 하는 말이다. 전장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으로 고하는 작별 인사다. 며칠간 이 대사가 내게 머물고 있다. 해피 엔딩이 아니어서, 가슴이 아파서가 아니다. 대체 이 말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너 안에 있어. 네가 가는 것은 우리 둘 다 가는 것이야. 우리 둘 중 한 사람만 남아 있어도 그건 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 둘이야. 나는 너와 함께 하니까. 우리는 거기에 함께 있는 것이야." 젊은이의 사랑의 고백이라고 그냥 지칭 하기엔 너무 애절하고 감동적이다. 실제 삶에서 이런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감동이란 것은 쉽게 발생하지 않는 일이 극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정신을 감전시키는 일이지 않나?


개체가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희한한 현상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여기는 지구가 아니다. 본능이 작용하는 육체의 집단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다. 헤밍웨이는 정말 이런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었을까? 노인과 바다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 결국 꿈꾸는 것은 나와 네가 합일되는 이상의 사랑이었을까? 세상의 대부분의 이치를 깨달은 최고의 문인이 이런 몽상 같은 꿈을 이루려고 했나? 일상에서 이룰 수 없는 그것을 꿈꾸며 희망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그는 역설하는 것인가? 성경에서 원수까지 사랑하고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 진정한 사랑을 하라고 한다. 불가능을 희망하는 것이 인간 사는 최고의 지혜인가?


세상을 조금 많이 살다 보니 세상은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여태까지 이기고 생존하기 위해서 애쓰며 겨우 겨우 여기까지 왔다. 힘들게 살아 내느라 지치고 힘들다. 어디에서 위로도 받고 상처도 치료하고, 쉬고 싶지만 그런 곳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외롭다. 만나서 토해내고 싶지만 사람이 없다. 좋은 친구는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도 없다. 다 쏟아붓고 싶어도 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실제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집중할 수 없다. 인간의 본능은 절대 자기 위주이지 타인 중심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상대를 수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이해, 자비, 사랑이라는 거짓 옷을 걸치며 마음과 다르게 쇼를 즐긴다. 세상 사는 것이 이런 것일까?


The me in thee. I am with thee. We are both there.


세상에서 불가능한 얼마나 감동적이고 환상적 말인가? 헤밍웨이의 젊음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가 거짓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고 존재하지 않지만, 눈 지긋이 감고 희망하라고 말하는 것인가? 도저히 이루기 힘든 사랑을 배우려 아침마다 묵상하며, 그것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는 착각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감격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인가? 수없는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 채 빼앗은 큰 문인의 말을 나는 받아 들일수 없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바로 나를 위해, 아픈 마음을 위해 울릴 뿐이다.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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