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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Sep 10. 2021

소년이 온다


아버지는 추장이었다. 아이들까지 다해야 3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씨족장이다. 아버지와 삼촌은 매일 동트기 전 이른 새벽에 긴 대나무 창을 들고 사냥을 나갔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드물지만 토끼와 꿩, 이름 모를 동물들이 검붉은 피로 얼룩져 우리 앞에 내 던져지는 날이면, 우리는 기뻐 펄쩍펄쩍 뛰었다. 기름기가 우리 속을 촉촉이 적셔 거친 내장 벽을 윤기 있게 덮으면, 어느새 기분 좋은 잠이 슬며시 찾아든다. 구수한 고기의 질감은 입속에 오래 남아 나도 모르게 되새김질 계속한다. 온몸에 힘이 솟구치는 희열이 찾아들었다. 심장은 더 활기차게 뛰고 살아있는 내 육체의 뜨거운 울림이 더 또렷이 들렸다. 가끔 찾아드는 이 행복을 다시 기다리며 우리는 배고픔을 이겨 나갔다.

어느 날 아버지와 삼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밤새 서성 거리며 공포의 눈빛으로 새까만 어둠만 밝히고 있었다. 아버지와 삼촌들은 모두 죽었다. 우리 것과 비슷한 죽창에 사정없이 찔렸다. 검붉은 피가 아버지 주검 옆 흙에 깊이 배어 있었다. 난 이토록 창백한 아버지 얼굴 본 적이 없다. 모든 피 다 쏫아낸 아버지 얼굴은 백지장처럼 희고 투명하다. 생명 혼이 떠난 살덩이 만이 거기에 놓여 있었다. 우리 움막집으로 내려오는 그 언덕 꼭대기에.

이제 모든 것이 내 몫이다. 남아있는 여자와 아이들 내가 먹이고 살려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저 너머에 모여 사는 동물들. 우리 움막으로 몰려온다면. 눈에 핏발이 선다. 대나무 창을 잡은 주먹이 팽팽하다. 여기 손가락에 몰려든 힘들. 대창 으스러 뜨릴 것 같다. 쥐가 나 굳어 버린 근육처럼 허벅지와 종아리가 딱딱해져 온다. 번갯불이 머리카락 위에서 번쩍거리며 소름이 닭살처럼 피부를 뚫고 나왔다. 그래. 이제부터 난 전쟁이다. 난 인간이 아니다. 아버지 죽인 동물들을 찢어 죽일 무기에 불과하다. 그것들 죽이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 여자들, 다 죽는다.

오랜만에 노루 잡았다. 동생과 나무에 올라 숨 죽이며 기다리다 죽창을 던졌다. 죽음 감지한 노루는 검붉은 피 쏟아내며 수풀 속으로 미끄러져 가다가 나무에 걸려 힘없이 땅바닥에 뒹굴었다. 몇 달만의 포식인가? 우리는 밤새 향기로운 고기를 먹으며 장작에 그을린 냄새에 취해,  춤추며 노래했다. 이 세상에서 즐길 최후의 만찬임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나는 오늘 죽었다. 내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 아직 나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난 그 두려움 잊을 수 없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두발로 뛰는 동물이  뾰쪽하고 긴 죽창을 들고 내 앞에서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핏발 가득한 붉은 두 눈에서 뿜어 나오는 살기는 뾰쪽하게 깨진 유리 조각이 되어 네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죽음과 경계한 자의 두려움과 공포. 온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며 정신은 나가 버렸다. 깊은 곳에서 터져 올라오는 동물의 괴기한 신음만이 내 입가에서 들썩 거렸다. 형언하지 못하는 고통이 찾아들었다. 내 팔뚝은 저기 떨어져 경련을 일으키며 떨고 있다. 사람이 동물이 되어 도살되는 고통과 두려움. 비명도 터져 나오지 않는 극심한 아픔 속에 나는 나 뒹글고 있다. 피로 검불 게 물들어가는 살덩이가 먼지 일으키며 땅바닥을 세차게 두드리며 떨어져 버린다.


작가 한강의 주인공들은 아마 이보다 더 큰 공포와 고통 느꼈을 것이다. 동물이 쇳덩이를 들고 사람의 살덩이를 무자비하게 찢어대는 아픔. 그리고 그것과 직면하는 표현할 수 없는 공포. 난 그걸 나타내고 싶고,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원시 구석시대의 잔인한 인간 동물들의 싸움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공포와 고통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최고의 공포도, 한강이 그리는 이 아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서로 죽창 들고 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꺼운 철갑과 투구 쓰고 구멍에서 불덩이 나오는 쇳덩어리 가진 동물 앞에 한없이 무력했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쇠 방망이로 내려치고 뼈까지 꺾어 버리는 무자비한 폭력들. 꽃 피어나는 어린 소녀 자궁을 30cm  나무자로 사정없이 쑤셔대는 잔악한 동물. 눈 돌린 다고 눈덩이를 배불로 지져대는 인간 동물들. 더 이상 나는 잔혹한 행위를 써 내려갈 수 없다. 내 영혼까지도 그 더러움으로 뒤덮일 것 같아서. 그 고통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나? 한없이 약한 몸뚱이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나? 지독한 공포. 내 모든 정신 세포들까지 다 죽여 버렸다.


난 싫다. 광주 우리 역사가 증오스럽다. 80년 5월. 잔혹한 살인이 만든 처절한 절망. 인간이 완전한 동물로 돌아간 그때. 그러나 세상은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돌고 있었다. 그 아픈 기억 속에 지금도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들. 육체 다 사그라져 깊은 통증 시달리고, 정신 병들어 트라우마에, 헛것 보며, 미쳐서 지금도 그때처럼 죽어가고 있다. 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드는 지금. 난 가슴을 쓸어내리는 찬 기운에 떨고 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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