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56 - 일상이 들리는 곳, 공원으로 가자

그곳엔 오늘이 재생되고 있지

by 생강

56.


사람 소리.

바람 소리.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운동 기구가 낡아서 발길질하며 굴릴 때마다 삐긱 삐긱, 새소리처럼 들리는 소리.

모두 공원의 소리.


그런 것을 듣고 싶었다.

일상이 흐르는 소리를.

사람이 북적거리는 공원을 천천히 헤집고 다녔다. 나는 실내의 소음에 푹 절여져 있다가 바깥의 소리에 마음을 정화하고 있었다. 공원 안의 소리는 사람 소리와 동물 소리, 자연의 소리의 혼합이었는데 아무리 큰 소리여도 소음 같지 않았다. 나의 발소리를 견딜 수 있는 건 공원뿐이었다. 무질서하게 퍼져 있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새들, 강아지나 고양이가 발 닿는 대로 걷고 있는 게 좋았다. 내가 아무렇게나 걸어도 지적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가고 싶은 방향대로 걸었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은 만큼 보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 보면, 모르는 이의 일상을 듣게 된다. 일상을 굴리는 타인의 하루치 열정, 그런 것들이 내 귀로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타인을 응원하고 있다.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 알고 있다. 알아서 더 어렵고 더 아쉽다.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나를 꽤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판단했으므로 '나쁘지 않은 지금의 나'로 한동안 살았고, 발전하지 않은 나로 굳는 것을 무시했고, 나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나를 방치했다. 그러니까 나는, 생각과 행동은 너무나 다른 결과를 데려온다는 것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작은 잡음이나 일상적인 소리를 깊이 좋아하고 있다. 나는 자주 포기하는 사람이라 결과에 못 닿은 것을 아쉬워만 하는데, 성실한 타인은 또다시 부지런하게 시도하고, 부지런하게 실패한다. 더 나은 하루에 가닿기 위해.

사람 소리는 소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백지 같은 하루의 배경음악이 되기도 한다. 볼륨을 낮춘 라디오 소리처럼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일상을 듣고서 나는 나름대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저 사람은 하루를 사는구나. 저 사람과 나의 하루는 공평하게 주어졌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과거에 머물러 있지는 않나?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흘려보낸 그 상태 그대로 고여있지는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 그저 오늘을 살고 싶어 진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그런 현실을.


공원은 이 사람의 일상과 저 사람의 일상이 느슨하게 엮인 공간이다.

나는 현실감이 없을 때, 공원으로 간다.

공원에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하루가 둥실둥실 떠 다닌다.

모두의 일상이 서로 다른 주파수로 재생되고 한 데 모여 하루치의 음악이 된다.


사람 소리.

바람 소리.

옷깃이 스치듯 이파리가 이파리에 스치는 소리.

그 밑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사람의 소리.

공원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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