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칼럼니스트의 진짜 아름다움에 대한 썰 3
한 번은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미국 화장품 브랜드의 CEO가 방한했을 때, 한국의 여배우를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콘셉트로 화보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진행 기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현장에 두 명의 거물급 인터뷰이가 있었던 셈이죠. 물론 두 사람 모두가 소중했지만, 현장의 흐름은 어쩔 수 없이 방한한 CEO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배우에게 대기 시간을 비롯해 몇 가지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죠. 배우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당시 제가 느끼기에 배우는 “이런 후진 대접은 처음이야” 혹은 “이거 괜히 했네”라고 생각하는 듯했어요. 그는 카메라 앞에서는 미소 지었지만, 뒤돌아 서면 싸늘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은 그 촬영이 끝난 이후 누군가 “그 배우 만나 보니 어땠어?”라고 물으면, “실망스럽더라. 태도가 너무 별로였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소위 ‘주인공은 나 이어야 해’라는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거고, 어쩌면 그건 열등감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스스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우를 받더라도 현장 상황을 이해하며 ‘그럴 수도 있지’라고 아량을 베풀어야 맞는 게 아닐까? ‘어딜 가나 늘 주인공이던 사람이 현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으니 삐친 거다’라는 프레임으로 상황을 이해했던 저에게 그 배우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저 역시 참 못났었다 싶습니다. 나의 허물은 보지 않고 그 배우에게 서운했던 감정을 바탕으로 그의 태도를 깎아내린 셈이니까요. 또 그렇게 편향적인 저의 주관적 잣대로 평가한 상황을 사실인 양 함부로 비난하고, 또 말을 옮겼으니 참 후회되는 부끄러운 순간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저에게도 연륜이 쌓이니 이제야 보이는 게 있습니다. 만약에 당시에 그 누구도 대기 시간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끄럽게 시간 조율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대기 시간이 발생한 것에 대해 배우에게 정중히 사과했다면 배우도 흔쾌히 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배우의 감정까지 살필 여력이 없었습니다. 좀 더 현장 경험이 쌓인 현재의 저라면 그런 상황에서 배우가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밀려난 듯한 기분이 들어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짐작했을 텐데 말이죠. 또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당신을 기다리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 부탁한다”는 식으로 현장에서 그의 감정을 헤아려주고 양해를 구하는 게 진행자에게 필요한 센스였을 겁니다.
어쩌면 넓은 아량이라는 내면의 아름다움은 상대의 감정 상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 공간에서 비롯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감정 상태가 편안하지 않으면 타인에 대한 배려는 뒷전일 테니까요. 내면의 평온함을 지켜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지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지금 주변에서 마음이 불편한 누군가가 떠오르시나요? 따뜻한 위로를 표현해야겠다는 의지를 낼 만큼 당신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