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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Dec 02. 2021

콜센터 직원들이 그만두는 이유

콜센터 10년 차 만년 대리 이야기

콜센터에 10년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신입 팀을 담당하고 있을 때는 짧은 만남이 더 심했다.
웃으면서 내일 보자 인사하고 다음날 연락 두절인 경우도 많았다.
어제 나란히 앉아 콜을 받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함께 웃었던 동료가 오늘은 사직서를 내고 홀랑 가버리는  배신도 당해봤다.







 

콜센터는 입사하기는 쉬워도 견디기가 정말 힘든 곳이다.
작은 말 하나에도 상처 받는 예민한 나에게는 견뎌야 한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여기 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다.

 

그럼 왜 버티기 힘든 곳에 사람들은 근무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나는 잦은 이직 때문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이곳에서 못 버티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꾹 참았다.
바보 같았다.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되는데.








 

콜센터에 다니면서 만난 사람 중에 최소한 나처럼 생각하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다니는 사람, 할부로 결제해 놓은 명품 가방 때문에 다니는 사람, 생계를 위해 다니는 사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아서 다니는 사람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매일 상담하시는 분들이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다니는 회사인데 매일 듣는 욕과 실적 압박으로 나를 잃어버리는 경우다.
내가 행복해야 나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만삭의 임산부가 진상 고객 상대하다가 유산되었다는 이야기가 괴담처럼 떠돌아다닐 정도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폭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잊어야지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는 순간 내 마음속에 욕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 심리 상담을 지원해 줬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 기분은 나아지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스스로 마음을 잘 가다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다.





 

나보다 더 예민했던 한 동료는 상담할 때마다 전화기 너머에서 욕이 계속 들린다고 정신과 상담을 받다가 퇴사했다.
또 다른 동료는 급하게 결혼해서 신혼집을 회사와 최대한 먼 곳으로 구해 그만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콜센터를 그만둔 이유는 다양하지만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내 기억 속엔 도망치듯 회사를 벗어난 뒷모습만 남아있다.

 






정말 헤어지기 싫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잡을 수 없었다.
나도 힘든데 이미 마음 떠난 사람을 잡는 건 더 미안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들도 많고 퇴사하는 날 보고 연락을 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이 그때보다 많이 웃고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다.

 

급변하는 요즘 시대에 매년 직원들이 줄어든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까지 이 자리에 출근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그때가 언제가 되었든 웃으면서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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