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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안 Apr 16. 2022

운동은 미련하게 하는 것

스포츠의 진정성

마라톤 대회 메달이 도착했다. 처음으로 온라인 마라톤 대회를 신청했다. 라이트 패키지라서 15,000원을 지불했다. 이 돈이면 티셔츠 한 벌 가격보다 싸다. 덤으로 메달도 얻을 수 있으니 이득이다. 라이트 패키지는 메달, 아디다스 티셔츠, 라면 한 개만 준다. 비싼 패키지를 신청한 사람들은 라면 끓이는 팬, 아디다스 티셔츠 두 벌, 라면, 에너지 젤을 받는다.

마라톤대회 패키지

 메달은 영광의 상징이다. 스포츠 대회는 가장 기록이 좋은 소수에 사람들에게만 메달을 준다. 그러나 마라톤은 완주한 사람 모두에게 메달을 준다. 마라톤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뛴 사람 만큼이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사람도 찬사를 받는다.

마라톤 완주는 인생에 한 번 해보고 싶은 일로 손 꼽는 사람이 많다.  42.195km를 달리려면 헌신이 필요하다. 건강한 사람도 6개월 간 꾸준히 운동하고 마라톤에 도전한다. 마라톤을 달리고 나면 온 몸의 근육과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이 완전히 바닥난다. 몸을 혹사시킨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고 이겨내기 위해 끝까지 달린다.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에게는 기록이 2시간이던 3시간이던 4시간이던 5시간이던 중요하지 않다. 완주했다며 누구나 승리한 것이다. 마라톤에서 지는 사람은 없다. 나는 마라톤이 그런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메달의 영광을 훼손시키는 온라인 마라톤 대회. 온라인 마라톤 대회는 어디에서든지 자유롭게 달리고 소셜 미디어에 사진을 올리기 때문에 참가가 쉬워졌다. 다달이 온라인 대회를 열고 메달을 발송하는 전문업체도 생겼다. 메달을 소유하고 소셜 미디어에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다. 주최 측은 참가자가 달리는지 안 달리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달리기 인증을 하기도 전에 메달과 기념품을 배송한다. 참가자들도 메달을 돈 주고 사는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온라인 대회는 메달의 희소성과 가치를 떨어뜨린다.

혼자 달릴 때는 워치를 이용하여 기록을 잰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달리기 기록을 측정하고 저장하기 쉬워졌다. 문제는 기록 조작이 가능하다. 적극적으로 기록을 직접 수정하여 가짜를 만들 수 있다. 소극적으로 기록이 좋아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예컨대 21km를 달린다면 5km를 달리다가 쉬고 다시 달린다. 10km에서 쉬도 또 다시 달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 번에 달리는 것보다 훨씬 좋은 기록을 만들 수 있다. 좋아 보이는 기록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용도가 된다. 온라인 마라톤 대회는 메달을 남발한다. 스포츠의 진정성을 훼손시키는 경향이 있다.


운동은 영리하게 그러나 미련하게. 영리 한 사람은 요령을 부린다. 반면, 미련한 사람들은 정직하다. 건강을 위해 달린다면 두 발로 집요하게 달려야 한다. 재미를 위한 것이라면 땀 흘리며 달려야 한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다면 고통을 감내하며 포기하지 말고 달려야 한다. 마라톤에는 '벽에 부딪힌다'는 용어가 있다. 35km쯤을 달렸을 때 몸에 모든 연료가 바닥 나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는 시점을 말한다. 다리는 아프고 호흡이 가빠지고 공기에 저항을 온몸으로 느끼지만 참고 인내하며 달린다. 바로 여기에 마라톤의 감동이 있다.


온라인 마라톤 대회는 오늘과 내일이다. 메달도 받았고 티셔츠도 받았고 라면은 이미 끓여먹었다. 인증 의무는 없지만 달려야겠다. 인증이나 메달과는 관계 없이 재미와 건강을 위해서 달린다.


https://brunch.co.kr/@run-suffer/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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