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한 햇빛 아래
총천연색들이 나뒹군다
광택 나는 빨간색
고춧가루를 연상한다
피가 아니어서 다행이구나
어리벙벙한 파란색
열대 바다 물고기 비늘마냥
결이 살아있구나
지고지순한 초록색
불변할 것 같다는 생각
생각에 그치지 않는구나
우중충한 남색
막 딴 블루베리처럼
사실은 달콤하구나
통통 튀는 주황색
건강한 사막의 한 줌 같구나
거기는 살 만하겠구나
동 떨어진 보라색
어느 성운의 끄트머리
언젠간 만날 수 있겠구나
노려보듯 명확한 노란색
널 보면 뭘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것도 다 나를 위한 것이겠구나
너는 혼자구나?
너는 어두운 갈색을 부득불 표백한 것 같구나
너는 원래 색을 연신 내어 버린 것 같구나
너만 죽음을 연상 짓는구나
시들어 부서지고 있는 꽃아!
옆에 친구들을 본받아야지!
너만 재활용이 안 되잖니
다른 친구들이 수십 년 수백 년 자리를 지킬 때
너 혼자 조용히 사라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