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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20. 2023

신랄한 즉위식

코미디의 왕(1982)



    이 영화는 하나의 물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만약 악한 약자, 정확히는 악행에 성공한 약자가 있다면, 그 사람의 약함과 악함 중 무엇이 더 두드러질까? 영화는 이 물음에 악행의 성공뿐만 아니라 진짜 성공까지 부여해 아이러니를 극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루퍼트 펍킨은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자기 망상에 깊이 침식된 인물이다. 영화의 결말부로 인해 밝혀지지만, 그 망상은 자기 평가에 대한 드높은 믿음으로도, 자기 위치에 대한 맹목적인 확답으로도 그 연유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논쟁거리들을 둘째 치고, 확실한 사실은 루퍼트는 부정행위를 일삼았다는 점이다. 


    루퍼트의 약함은 그의 스탠드업으로 추측할 수 있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시작된다. 가난과 폭력, 음주에 갇힌 그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정신질환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악영향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믿는 척하며 자기 존재를 믿지 못해 정상적인 꿈의 도약을 시도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악함은 제리라는 인간의 자아를 말끔히 부숴버렸다는 점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루퍼트라는 캐릭터는 원초적인 악으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나는 그 애매한 부분을 제리와 그의 비서의 행보에서 파악해보려 한다. 



제리와 비서가 루퍼트의 테이프를 들어본다는 것



    일단 루퍼트가 제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처음 알리게 된 방법부터 글러먹었다. 악개들을 막아줬다는 명분으로 악개짓을 하는데, 제리 입장에서는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고, 제리가 이를 따뜻하게 바라봤더라도 루퍼트의 횡설수설한 자기소개는 전혀 신용이 느껴지지 않았다. 루퍼트는 제리에게 자신과 자신의 꿈을 설명하면서, 너무 이른 자격지심과 동일시 욕구를 보였다. 루퍼트는 자신에게 코미디언의 꿈이 있다고 말하자마자, 제리의 반응도 살피지 않고 제리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단정 짓고 말을 이었다. 이 흐름을 탑급 코미디언이자 mc인 제리가 못 읽었을 리 만무했고, 이를 통해 제리는 루퍼트를 무시하기로 합당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실제로 제리가 노력을 한다고 해도, 제리는 너무 바쁜 사람이고 그의 테이프를 듣는 것은 상당한 시간 소모에 속한다. 그도 그럴 것이, 루퍼트 말고 정상적인 루트로 제리의 관심을 받고 무대에 서고자 하는 이도 많을 것이지 않은가? 제리가 루퍼트의 테이프를 듣지 않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비서는 어떤가? 비서도 여러 사무 및 연락 업무로 바쁘지만, 제리보다는 루퍼트의 테이프를 들을 개연성이 높았다. 물론 루퍼트와의 피곤한 대화는 비서와도 충분하리만큼 이루어졌지만 말이다. 여기서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비서는 루퍼트의 테이프를 들었을까, 듣지 않았을까? 



1.     듣지 않았다.


    영화의 흐름상 이 쪽의 확률이 훨씬 높다. 루퍼트의 언행을 보고 미친놈으로 간주해 들을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루퍼트가 마지막에 펼친 코미디와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이 동일하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비서에게 일말의 책임이 생기게 된다. 루퍼트의 개그는 훌륭했다. 자학 개그도 서슴지 않았고, 사회적인 문제도 승화했기 때문이다. 만약 루퍼트가 정상적인 지망생이었다면, 비서와 제리는 훌륭한 인재를 하나 놓치는 셈이다. 


2.     들었다. 


    만약 듣고도 거부했던 거라면, 첫 번째 근거로 정신병자에 대한 우려를 들 수 있다. 아무래도 tv쇼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문제를 일으킬 게 뻔한 사람을 캐스팅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여기서 또 다른 궁금증이 들었는데, 과연 언론(방송의 제작자 측)은 루퍼트의 개그를 받아들였을까? 영화의 결말부에서 결국 루퍼트의 분량이 tv를 타고 전국에 틀어졌으니 받아들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건 생생한 라이브를 본 직후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의 개그를 심사숙고하는 차원, 즉 비서가 처음 테이프를 받을 때는 다른 고민의 영역이다. 만약 언론이 그의 개그를 거부했다면, 이는 사회적인 약함이 거부당했다는 뜻이니 영화가 더 두꺼워진다. 



    이 영화는 성공이 얼마나 비일관적인 결과인지 강조한다. 성공할 만한 사람이었든, 성공할 만큼 노력했든 그런 고전적인 조건들보다 중요한 성공의 결과론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제리 입장에서는 루퍼트의 성공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전면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치관의 좌절까지 합해서 말이다. 루퍼가 왜 코미디의 '왕'일까? 루퍼트의 스탠드업 대사들을 되짚어보면, 무시받고 인정받지 못한 지금까지의 자신을 바보로, 계획에 성공한 그날 자신의 모습을 왕으로 비유했다. 왕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손에 피를 얼마나 묻혔든, 명분이 얼마나 적확하든, 일단 왕위에 오르고 시민들이 이를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루퍼트의 결말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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