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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21. 2023

잡동사니들의 실존

토이스토리 4(2019)

   


    토이스토리 시리즈는 스토리도 ost도 훌륭하지만 천재적인 발상력이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장난감을 의인화하고 그들이 아이들을 갈망한다는 설정은 어마어마한 아이디어였다. 거기에 세심하게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구축하고, 이를 장난감들의 특성을 통해 설명하니 스토리 전개도 거침이 없었다. 그래서 아동들을 타겟으로 제작됐지만 어른들도 크게 감동하는 웰메이드 애니메이션 영화로 그 위상을 떨칠 수 있었다. 1~3편이 아동용으로 시작됐지만 범취향적인 메시지가 담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토이스토리 4편은 그 메시지의 프레임을 멋지게 깨부수고 당당히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토이스토리의 설정의 아쉬운 점은 ‘절제’였다. 토이스토리의 설정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잔혹 동화가 될 수도 있고, 철학적인 딜레마를 담은 서스펜스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근본인 아동용의 미덕을 지키기 위해 설정의 밸류를 제한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예를 들면 장난감은 언제부터 자아를 가지는가, 얼마나 파손됐을 때 죽음에 이르는가, 같은 제품끼리 만나면 정체성 논쟁은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인간형 장난감과 동물형 장난감의 권리는 동등한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이스토리 4는 전작들의 장점과 더불어 상술한 철학적 성과도 이룩해 냈다.


    1~3편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욕망의 방향성이었다. 장난감들은 자신과 놀아줄 아이들을 본질적으로 갈망하는데, 미래에 대한 관점에 따라 행동 지향점이 달라진다. 한 주인을 따르는 게 좋은 선택인가에 따라 우디 같은 일편단심 순애보 캐릭터가 나오거나 스팅키 피트나 랏소 베어 같은 회의론자가 탄생한다. 이 둘은 한 주인을 바라보는 것에 운명론적인 좌절을 겪고, 다른 방향으로 관심에 대한 갈망을 해결하려 했다. 스팅키가 원하던 박물관이나 랏소 베어가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던 어린이집은 모두 아이들의 성장에 구애받지 않는 공간들이다. 장난감은 물리적으로는 영생에 가까운 존재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명을 누리지 못한다. 장난감의 가치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주인의 성장에 따라 점점 관심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인 장난감의 삶은 주인이 나이를 먹으면 버려지고, 운 좋으면 다른 주인에게 양도되는 아주 불안정한 계약직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물관 유치는 연금이 탄탄한 공무직이고, 어린이집은 정규직이며, 놀이터 곳곳에 존재하는 장난감들은 프리랜서들이라고 연상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담론들도 장난감이라는 구속 자체에 물음을 재기하지는 못했다. 장난감들이 자신과 함께 놀아줄 주인을 찾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법칙처럼 묘사되지만, 그들은 의인화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결코 법칙이 될 수 없다. 즉 사람과 놀지 않는다는 선택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토이스토리 4편은 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보여줬고, 다른 대답에 대한 인정도 구현했기에 그 의미가 크다. 우디는 보와 함께 장난감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살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친구들과 하는 행동은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 빠진 장난감들을 구출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내려놓은 가치지만 그렇다고 강요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계몽사상마저 연상된다. 이 영화가 ‘선택’을 가장 큰 가치로 잡은 점을 유념하고 보면, 더키와 버니의 상상 계획도 인상적이다. 그들은 자꾸 작전이라면서 사람을 협박하자고 하는데, 이는 사람에게 움직이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는 장난감들의 불문율을 허무는 행위다. 즉 이것도 선택의 범주인 것이다. 둘은 재미는 물론이고 영화의 미덕인 은은한 연관성도 챙긴 훌륭한 씬 스틸러들이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부족한 포키의 사색이다. 포키는 철학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깊은 캐릭터고, 중요한 메시지도 표방하고 있다. 공장 출신 장난감이 아닌 포키는 잡동사니와 장난감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우디의 거듭된 정성으로 점차 자신을 장난감으로 인정하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분량 조절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포키가 머리 아파하는 씬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할 말은 없다. 딱 그 정도의 단점이었다.


    그리고 포키는 지금까지(1~3편) 등장인물들이 언제나 두려워하던 가치판단을 자극하는 캐릭터다. 그들이 무서워하고 치를 떨었던 것은 버려지는 결과이고, 그건 감정의 부재로 기인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 장난감과 잡동사니를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이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의 공정으로 잡동사니로만 장난감이 된 포키는 작중 캐릭터들이 줄곧 고민해 온 두려움의 표상이며, 그 극복은 완성도 있는 주제 던지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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