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와인 모임에서 딱 한 번 만난 한 언니에게서 갑자기 메시지가 왔다.
주희님 잠시 시간 되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생각나는 분이 주희님이어서 연락드렸어요.
혹시 잠시 통화되세요?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몰라도 애정사에 관한 일일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게 없나 빠르게 복기에 들어갔다. 내가 모르는 사이 뭔가 또 상처 준 건 아닌가 싶어 전화기 앞에서 긴장이 되었다.
그분 전화번호도 없던 터라 톡으로 번호를 드리고 통화를 했다.
다행히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니었다.
함께 만났던 와인 모임을 주최한 오빠에게 마음이 있는데
그쪽은 그게 아닌지 연락이 뚝 끊겨버렸다고,
자신을 차단한 건지 알고 싶다고 하셨다.
상대가 나를 차단했는지 알려면
전화를 걸어보면 된다.
이 당연한 일을 실행하지 못하는 건
그게 사실일 때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언니의 마음에 비해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내 마음에 불을 지폈던 그 분과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가도
어쩌면 또 특별한 이유란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한다.
나와 그의 관계가 이렇게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지금
순간순간 전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말하지 않고 끝끝내 참았던 걸 칭찬한다.
뒤돌아서 후회할 말을 하지 않았다는 데 대하여.
그가 나를 만나는 일이 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내내 기억하려 애썼다.
오지 않을 사람이라면 보내주자는 다짐도 계속했다.
아이들과 면접 교섭을 다녀오고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힘든 일이 터졌던 그 밤
그가 그때 아무 일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무리 그에게 호감이 있다 해도 이렇게는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없다고 인정해버렸다.
어제 소모임에서 정말 맛있는 해물찜을 먹고 왔다.
그런데 매 모임마다 한결같이 같이 있던 C가 어제는 없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고,
함께 있는 동안 마치 내 것인 것 같았던 C가
단지 하루 안보였을 뿐인데,
내 눈이 내 마음이 그 애를 찾았다.
짜증이 났다.
나는 어찌하여 이리도 쉽게 누구를 원한단 말인가.
얼마 전 C와 둘이 가서 찍은 전시회 사진을
처음에 그 전시를 알려주었던 동생에게 보여주었다.
"근데 언니 누구랑 갔어요? 사진 너무 예쁘게 잘 찍어줬어요."
혹시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
"아... 같이 간 사람이 잘 찍어줬어."
라고만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저쪽 테이블에서 늦게라도 자리에 들린다는 C 소식이 들렸다. 귀가 쫑긋해졌다.
그랬다. C가 없는 그 자리가 나는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오늘 무슨 일 있어서 못 오는 거야?
라고 한마디 물어보지 못하는 내가 싫다.
어느새 마음을 많이 내어 준 나도 싫다.
C가 없어서 서운한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내 조언대로 전화를 걸어본 그 언니에게서 답장이 왔다.
통화음은 가는데 연결은 안 됐어요. 알 수 없네요.
주희님 늦은 시간에 도움주어서 고마워요.
그녀의 마음이 카카오톡 창을 넘어 전달되었다.
그녀는 지금 많이 아플 것이다.
누군가 좋아하고 그 마음이 저쪽에서도 이어진다면 그건 기적과도 같다. 하지만 그렇게 기적적으로 이어진 마음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는 건 그 우연보다 훨씬 어렵다.
두려움을 딛고 사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언젠가 있을 상실에 맞서 우리는 사랑을 키워가는 만큼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기울이니 말이다.
해결책은 나를 믿고 사랑하는 것뿐이다.
알면서
나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괴롭게 생을 산다.
요즘 많이 듣는 노래입니다.
황금별을 찾아 떠나야 하는데, 이미 많은 상처를 받은 제가 자꾸 움직이지 않고 안전한 자아의 껍데기에 안주하려고 하네요.
편안한 휴일 보내세요.
https://youtu.be/_vDI2Ul7KCM (황금별-모차르트 ost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