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희 Jul 25. 2022

누군가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작년 동학년 부장님이 나를 보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 같았다. 학기 초에 처음 부장을 맡아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던 때 두어 번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고, 마지막에는 대답이 없어서 알아서 처리를 했다. 내가 부장을 맡기 전, 그러니까 그 부장님 밑에서 같은 학년으로 지낼 때는 부장님 반에 가서 식후에 손수 내리신 커피도 얻어 마신 적이 여러 번인데 어떻게 갑자기 이럴 수 있나싶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너는 그것도 모르면서 부장을 한다고.'

 라고 왠지 뒤에서 수군거릴 것 같은 자격지심이 들었다. 처음 부장을 맡자마자 어떻게 이 자리를 해 나가야 할지 일부러 찾아가 조언을 구했을 정도로 닮고싶은 부분이 많은 분이라 괴로움의 정도도 심했다.


 하지만 '왜 갑자기?'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었다. 굳이 대놓고 인사를 하지 않을 정도의 일인가 생각해보면 그럴 만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초보 부장에 능력이 없어 보인다 한들 작년 1년을 같이 보낸 동료 교사이기도 했으니까 말이었다.

 "나는 그럴 때 뭘 사서 매겨."

 남자 친구가 조언을 주었다. 그런 어려운 사람일수록 괜찮은 먹을 걸 사다 줘보라고,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 학교 같은 교과실에 마녀 같던 한 늙은 샘도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그럼 뭘 드리지?"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신경 쓴 티가 많이 안 나고, 그러면서도 고급스러운 뭔가가 필요했다. 나는 그 부장님이 커피를 손수 내려 드시는 걸 기억해냈다.

 커피에 문외한인 내가 원두를 사 드리기는 너무 어려웠고, 같이 드시던 솔트 초콜릿처럼 커피에 곁들일 간단한 다과가 좋을 것 같았다. 너무 달지 않으면서 맛있는 외제 초코 크래커를 쿠팡에서 주문했다. 세 박스가 번들이라 하루 만에 받아 내가 먼저 한 입 먹어보았다. 너무 달지 않고 우유 맛이 진한 게 괜찮았다.




 "그냥 부장님 생각이 나서 제 거 사면서 조금 가져왔어요."

 정말 지나가다 주웠다는 듯 무심하게, 부담스럽지 않게 드렸다. 그제야 부장님은 예전의 그 미소 띤 얼굴을 보여주셨다.

 "제가 여기 ooo 선생님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아요. 그래서 이쪽 잘 쳐다보지도 않잖아."

 부장님께서도 내가 그분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걸 아셨을까? 먼저 이렇게 말씀을 꺼내셨다.

 "예전에 동학년 하면서 안 좋았던 일이 몇 번 있어서..."

 '아... 나에게 무슨 감정이 있으셨던 건 아니구나.'

 

 다음날 점심, 풀린 마음으로 급식실로 가는데 부장님이 보였다. 올해 같은 4학년 선생님들께 앞쪽 상황을 알려주시느라 나는 또 못 보고 지나가신다. 그래도 그날 이후로 내가 싫어서라느니, 일부러 그런다느니 하는 추측은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분은 그냥, 자기가 챙기는 사람이 아니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보아야 맞을 것 같다.


 나중에 부장회의에서 뭔가 같이 의논할 일이 있을 때 우리 학년을 알게 모르게 편들어 주시기도 하고 의논할 일이 있으면 서로 도움도 주고받으며 1학기를 마쳤다. 우연히 방학식 날 퇴근하며 마주쳐

 "방학 잘 보내세요."

 라는 기분 좋은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만약 여러분이 직장에서 누군가 나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내가 해본 이 방법을 슬며시 추천해 드리는 바다. 그 사람의 입맛과 선호를 어느 정도 맞춰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 작은 선물을 내밀며 이야기해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경우 상대는 의외로 나를 싫어해서 피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달콤한 뇌물 앞에서는 조금은 누그러지는 게 사람 마음이 아니겠는가. 예전 우리 부장님들이 회식을 하며 소주 한 잔에 마음을 풀었다면, 이제는 이런 소소한 작은 선물이 특히 여자 동료에게, 그리고 코로나로 모이기가 어려운 지금 같은 시기에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의 자격지심에 잡아먹히지 말자. 직장 생활 하는 모두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다.

이전 16화 부장님, 우리 부장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